[약문약답]스테로이드, 정말 무서운 약일까

  • 정재훈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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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7.04.05 14:34 | 수정 : 2017.04.05 14:45

    2012년 겨울 캐나다의 온타리오주가 발칵 뒤집혔다. 라이언 기븐스라는 12세 된 초등학생이 천식 발작으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라이언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학생이 천식 발작에 사용하는 흡입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을 금지했고, 그래서 이 학생의 흡입기는 교장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쉬는 시간 갑작스런 호흡곤란을 느낀 라이언은 흡입기를 가지러 교장실로 가던 길에 쓰러졌고, 결국 손을 쓸 새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 비극적 사건 이후, 온타리오 주의 모든 학교에서 학생의 천식 흡입기 소지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반대로 대한민국에서는 천식환자들이 흡입기를 기피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사용상의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고, 먹는 약이 더 효과적일 거라는 한국 특유의 막연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다른 OECD회원국에 비해 국내 천식환자의 입원율이 두 배가 넘는다. 천식에는 먹는 약보다 흡입제가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도 적다. 무엇보다도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규칙적으로 사용하면 천식 발작이 일어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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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치료제’ 스테로이드

    천식에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쓰는 게 좋다는 말에 의아할 수 있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스테로이드에 대해 찾아봐도 부작용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눈에 띈다. 외국에서 스테로이드를 과용한 운동선수가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식의 뉴스가 들리면 두려움이 더 커진다. 하지만 둘을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스포츠 경기 전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하는 스테로이드와 병원에서 처방되는 스테로이드는 다른 약이다.
    약으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로 생식선에서 만드는 성호르몬과 비슷한 약이고, 다른 하나는 양쪽 콩팥 위의 부신피질에서 주로 만드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비슷한 약이다. 병원과 약국에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약성분은 대부분 후자다.
    이들 스테로이드 약물은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뛰어나다. 천식 환자의 기도 염증을 줄여서 발작을 줄여주는 효과도 탁월하지만, 관절염, 아토피성피부염, 건선 등의 다양한 만성 질환의 치료에도 효과적인 약이다. 지금은 스테로이드하면 부작용부터 걱정하지만, 사실 스테로이드는 항생제와 더불어 현대 의약 치료의 혁명을 일으킨 약물로 꼽힌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르티손의 질병 치료 효과가 발견된 1949년에만 해도, 이 약은 ‘기적의 치료제’로 불렸으며 이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연구한 두 명의 의사 필립 쇼월터 헨치와 에드워드 켄들은 바로 다음해인 1950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적당량 사용시 부작용 거의 없어

    스테로이드에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에 따라 단기간 적당량을 사용하면 그 부작용은 그리 크지 않다. 천식에 사용하는 흡입약은 먹는 약과 달리 폐와 기도에만 주로 전달되므로 전신 부작용 걱정 없이 써도 된다. 피부발진에 사용하는 연고제에 스테로이드가 들어있는 경우도 전신으로 흡수되는 양은 미미하다. 물론 부작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올바른 사용방법을 따라 쓰는 게 중요하다. 피부에 바르는 스테로이드 연고는 혈관이 드러날 정도로 피부를 얇게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되도록 적은 양을 쓰는 게 좋다. 강낭콩 하나 분량이면 손바닥 면적만큼 넓게 펴서 발라야 한다. 넓은 부위나 상처가 난 부위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용하면 약제가 전신으로 흡수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먹는 약의 경우에도 장기간 계속해서 쓰면, 골다공증이나 백내장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고 면역 저하로 감염 위험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부작용이 두려워 스테로이드 약을 갑자기 중단했다가는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천천히 약을 줄여서 몸이 적응하고 자체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만들 여지를 마련해줘야 한다. 다른 모든 약과 마찬가지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때도 의사, 약사와 협의하여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호르몬 역할을 하는 스테로이드도 약으로 쓰인다. 노년기에 남성호르몬 수치가 지나치게 낮은 경우,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호르몬을 약으로 보충하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이 오남용하여 문제가 되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도 남성호르몬과 유사한 약물이다. 사춘기 소년의 남성호르몬 분비가 늘면서 목소리가 두꺼워지고 근육이 발달하듯, 단백동화 스테로이드 약물은 근육을 부풀리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매우 위험한 약물이다. 특히 심장에 치명적이다.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HDL 콜레스테롤은 감소시키고,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LDL 콜레스테롤은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혈관이 막히기 쉽고 이로 인해 심혈관계에 무리가 오게 된다.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간을 손상시킬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남성호르몬이므로 여드름이나 피부문제가 악화되기도 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인공적인 스테로이드로 인해 몸에서 더 이상 남성호르몬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가 생기거나 여성형 유방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한다. 머리가 빠지거나 성기능이 저하되는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여성의 경우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를 잘못 사용하면, 남성처럼 목소리가 굵어지거나 얼굴과 몸의 다른 부분에서 체모가 발달할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는 스테로이드 남용으로 조기에 성장판이 닫혀서 성장이 멈출 수도 있으니 특히 주의해야 한다.


    설명 부족이 스테로이드 공포 키워

    “모든 약에는 효과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 주의해서 사용하면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 올바른 약의 사용을 위해 약사와 상담하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막상 병원과 약국에 가보면 질문 하나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뒷줄의 압박을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는 제대로 쓰면 ‘기적의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약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상담에 의사, 약사가 시간을 충분히 사용해도 되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서, 스테로이드에 대한 환자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저조한 천식 흡입약 사용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라이언 기븐스의 비극이 있고 나서 3년 뒤, 캐나다 온타리오 주가 일명 ‘라이언 법안’을 통과시켜 학생들의 천식치료 흡입제 소지 권리를 법적으로 확립한 것처럼, 환자들이 충분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 환경과 제도의 변화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


    정재훈 약사

    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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