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의 毛나리자(모발 나려면 이것부터 알자)
탈모 상담을 하다 보면 가족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할아버지는 탈모였지만 아버지는 머리숱이 많고, 정작 본인은 서른이 되기 전부터 이마 선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 대개 비슷한 질문이 나온다.
“탈모는 한 대 걸러서 내려오는 것 아닌가요?”
가족 안에서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경우는 있다. 할아버지에게 탈모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고, 손자에게 다시 탈모가 나타난다. 유전자가 한 세대쯤 쉬었다가 다음 차례를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탈모가 세대를 하나씩 건너뛰어 나타난다는 규칙은 없다. 남성형 탈모는 하나의 유전자가 우성이나 열성으로 전달되는 단순한 유전질환이 아니다.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은 여러 유전적 요인이 조금씩 영향을 보태는 다유전자 형질이다. 여기에 나이, 남성 호르몬에 대한 모낭의 민감도, 탈모가 시작되는 시기와 진행 속도가 더해진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결과가 제각각인 이유다.
쌍둥이 연구에서는 사람마다 탈모 정도가 다른 이유 가운데 약 80%가 유전적 차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고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80%의 확률로 탈모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탈모가 생길지, 언제 시작될지, 얼마나 진행될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것과 한 사람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어떤 집안에서는 탈모가 한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보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탈모 관련 유전자가 있어도 60대가 돼서야 정수리가 조금 가늘어질 수 있다. 반면 아들은 다른 유전적 요인까지 함께 물려받아 20대 후반부터 앞머리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중간 세대에 탈모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눈에 띌 만큼 강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탈모의 형태가 세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할아버지는 정수리 탈모가 뚜렷했으나 아버지는 M자만 조금 진행됐을 수 있고, 손자는 앞머리와 정수리가 함께 가늘어질 수 있다. 가족마다 탈모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다. 머리카락이 많이 줄어야 탈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마가 넓어진 정도는 그저 얼굴형을 닮은 것이라고 넘기기도 한다.
여성 가족의 탈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여성형 탈모는 헤어라인이 뒤로 밀리기보다 가르마가 넓어지고 정수리 볼륨이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가족들이 탈모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 겉으로는 한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중간 세대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던 셈이다.
형제자매라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같아도 자녀가 물려받는 유전자 조합은 서로 다르다. 형은 탈모가 있고 동생은 머리숱이 많을 수 있으며, 같은 형제라도 한 사람은 앞머리부터, 다른 사람은 정수리부터 진행할 수 있다. 유전은 복사기보다는 카드 섞기에 가깝다. 같은 카드 묶음에서 나왔어도 손에 들어온 조합은 다르다.
탈모의 유전을 설명할 때 외가 쪽 가족력이 함께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남자는 X염색체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고, 이 염색체에는 남성형 탈모와 관련성이 큰 안드로겐 수용체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탈모가 외가에서만 온다는 뜻은 아니다. 탈모 관련 유전자는 X염색체뿐 아니라 여러 상염색체에도 넓게 분포하며, 이 유전자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에서 물려받는다. 실제 연구에서도 아버지의 탈모 가족력은 남성형 탈모 위험과 뚜렷한 관련을 보였다.
따라서 탈모 가족력을 볼 때는 특정 가족 한 사람만 지목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외삼촌, 형제자매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편이 낫다. 다만 가족력은 어디까지나 위험을 가늠하는 자료다. 진단서도 아니고 예언서도 아니다.
유전자 검사 역시 미래를 정확히 말해주지는 못한다. 고위험 유전자가 있어도 탈모가 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가족력이 뚜렷하지 않은데도 탈모가 진행되는 사람이 있다. 유전자는 가능성을 높일 뿐 결과를 확정하지 않는다.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결론은 말해주지 않는 친척과 조금 닮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조상 중 누가 탈모였는지를 끝없이 추적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내 머리에서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예전보다 앞머리가 잘 갈라지는지, 관자놀이 선이 올라가는지, 정수리 두피가 더 비치는지, 굵은 모발 사이에 가는 모발이 늘어나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같은 조명과 각도에서 6개월이나 1년 간격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억 속 머리숱은 생각보다 믿을 만하지 않다. 사람은 지난여름 날씨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몇 년 전 가르마 폭을 또렷하게 기억하기는 더 어렵다.
탈모가 한 대 걸러 내려온다는 말은 절대적인 유전 법칙이라기보다 가족 안에서 관찰된 몇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유전자가 세대를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에서 서로 다른 강도와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유전자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변화를 발견하는 시점과 대응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탈모가 몇 대를 건너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 머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
“탈모는 한 대 걸러서 내려오는 것 아닌가요?”
가족 안에서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경우는 있다. 할아버지에게 탈모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고, 손자에게 다시 탈모가 나타난다. 유전자가 한 세대쯤 쉬었다가 다음 차례를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탈모가 세대를 하나씩 건너뛰어 나타난다는 규칙은 없다. 남성형 탈모는 하나의 유전자가 우성이나 열성으로 전달되는 단순한 유전질환이 아니다.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은 여러 유전적 요인이 조금씩 영향을 보태는 다유전자 형질이다. 여기에 나이, 남성 호르몬에 대한 모낭의 민감도, 탈모가 시작되는 시기와 진행 속도가 더해진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결과가 제각각인 이유다.
쌍둥이 연구에서는 사람마다 탈모 정도가 다른 이유 가운데 약 80%가 유전적 차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고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80%의 확률로 탈모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탈모가 생길지, 언제 시작될지, 얼마나 진행될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것과 한 사람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어떤 집안에서는 탈모가 한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보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탈모 관련 유전자가 있어도 60대가 돼서야 정수리가 조금 가늘어질 수 있다. 반면 아들은 다른 유전적 요인까지 함께 물려받아 20대 후반부터 앞머리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중간 세대에 탈모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눈에 띌 만큼 강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탈모의 형태가 세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할아버지는 정수리 탈모가 뚜렷했으나 아버지는 M자만 조금 진행됐을 수 있고, 손자는 앞머리와 정수리가 함께 가늘어질 수 있다. 가족마다 탈모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다. 머리카락이 많이 줄어야 탈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마가 넓어진 정도는 그저 얼굴형을 닮은 것이라고 넘기기도 한다.
여성 가족의 탈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여성형 탈모는 헤어라인이 뒤로 밀리기보다 가르마가 넓어지고 정수리 볼륨이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가족들이 탈모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 겉으로는 한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중간 세대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던 셈이다.
형제자매라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같아도 자녀가 물려받는 유전자 조합은 서로 다르다. 형은 탈모가 있고 동생은 머리숱이 많을 수 있으며, 같은 형제라도 한 사람은 앞머리부터, 다른 사람은 정수리부터 진행할 수 있다. 유전은 복사기보다는 카드 섞기에 가깝다. 같은 카드 묶음에서 나왔어도 손에 들어온 조합은 다르다.
탈모의 유전을 설명할 때 외가 쪽 가족력이 함께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남자는 X염색체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고, 이 염색체에는 남성형 탈모와 관련성이 큰 안드로겐 수용체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탈모가 외가에서만 온다는 뜻은 아니다. 탈모 관련 유전자는 X염색체뿐 아니라 여러 상염색체에도 넓게 분포하며, 이 유전자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에서 물려받는다. 실제 연구에서도 아버지의 탈모 가족력은 남성형 탈모 위험과 뚜렷한 관련을 보였다.
따라서 탈모 가족력을 볼 때는 특정 가족 한 사람만 지목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외삼촌, 형제자매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편이 낫다. 다만 가족력은 어디까지나 위험을 가늠하는 자료다. 진단서도 아니고 예언서도 아니다.
유전자 검사 역시 미래를 정확히 말해주지는 못한다. 고위험 유전자가 있어도 탈모가 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가족력이 뚜렷하지 않은데도 탈모가 진행되는 사람이 있다. 유전자는 가능성을 높일 뿐 결과를 확정하지 않는다.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결론은 말해주지 않는 친척과 조금 닮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조상 중 누가 탈모였는지를 끝없이 추적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내 머리에서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예전보다 앞머리가 잘 갈라지는지, 관자놀이 선이 올라가는지, 정수리 두피가 더 비치는지, 굵은 모발 사이에 가는 모발이 늘어나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같은 조명과 각도에서 6개월이나 1년 간격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억 속 머리숱은 생각보다 믿을 만하지 않다. 사람은 지난여름 날씨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몇 년 전 가르마 폭을 또렷하게 기억하기는 더 어렵다.
탈모가 한 대 걸러 내려온다는 말은 절대적인 유전 법칙이라기보다 가족 안에서 관찰된 몇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유전자가 세대를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에서 서로 다른 강도와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유전자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변화를 발견하는 시점과 대응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탈모가 몇 대를 건너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 머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