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치료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우울해요. 약이 효과가 없는 건 아닐까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치료를 시작하면 우울한 기분이 눈에 띄게 줄고 의욕도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회복은 기분이 단번에 밝아지는 것보다는 생각과 행동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우울증의 회복은 기분이 완전히 달라지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에 휩쓸렸을 만한 상황에서 ‘아, 내가 지금 또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회복의 신호다.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곧장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 걸음 떨어져 자기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울할 때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현실과 구분하기 어렵다. 업무에서 실수하면 ‘나는 이 일에 맞지 않아’ ‘상사는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할 거야’라고 단정한다. 한 번의 실수를 자기 능력 전체에 대한 평가로 확대하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치료 초기에는 한참 뒤에야 ‘내가 실수 하나를 너무 크게 받아들였구나’라고 깨닫는다. 회복이 더 진행되면 알아차리는 시간이 짧아진다. 나중에는 실수한 순간에도 ‘지금 한 번의 잘못으로 내 능력 전체를 판단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린다. 이어서 ‘이번에 잘못한 부분과 내 능력 전체는 별개의 문제’라고 다르게 해석한다.
치료는 ‘나는 쓸모없어’라는 생각을 ‘나는 최고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한 번의 실수는 인정하되 그것을 자기 존재 전체에 대한 평가로 확대하지 않는, 현실적인 사고를 되찾는 과정이다. ‘요즘 많이 지쳐 있어서 내가 무능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모든 일을 망친 것은 아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전에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적이 있다’라고 생각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다.
감정과 행동의 관계도 달라진다. 기분이 좋아야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고, 그날의 감정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경향을 ‘기분 의존성’이라고 한다.
진료 중에 운동이나 외출을 권하면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마음이 나아지면 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환자가 많다. 우울하면 약속을 미루고, 의욕이 없으면 침대에 계속 누워 있고,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할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지가 약하거나 게으르다는 뜻이 아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행동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줄고, 행동한 뒤에 느낄 즐거움과 성취감도 미리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환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기분 의존성이 우울증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라는 데 있다. 활동하지 않은 채 의욕이 저절로 생겨나기를 기다리면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 하루를 허비했다는 자책까지 더해져 몸을 일으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산책 한 번으로 우울증이 낫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도 밖에 나갔다는 경험은 ‘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확신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행동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한 경험, 미뤄둔 일을 10분이라도 해낸 경험, 잠깐이나마 기분이 나아진 경험은 모두 회복의 재료가 된다. 기분 의존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뜻이 아니다. 우울한 상태를 인정하되 모든 결정을 기분에 맡기지는 않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씻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혼자만 있으면 더 가라앉으니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자”고 판단한다. 행동의 기준이 ‘하고 싶을 때 한다’에서 ‘나에게 중요한 일이므로 한다’로 점점 옮겨간다.
기분과 상관없이 행동하기 시작하면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회복된다. 우울증이 심하면 사소한 문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걱정만 반복한다. 상태가 나아지면 문제를 작게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일과 지금 손댈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좋은 일에는 조금 더 반응하고 힘든 일에는 덜 압도된다. 음식 맛이 전보다 선명해지고, 대화를 나눈 뒤 답답함이 줄어들고, 일을 마쳤을 때 작게나마 만족감이 생긴다. 무엇을 했을 때 상태가 달라지는지도 알게 된다. 회복이 저절로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에게 도움이 된 행동을 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치료가 남이 건네는 처방에서 자신이 활용하는 기술로 바뀐다. 우울증 치료에서는 단지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다루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는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고 검토한 뒤 필요하면 거리를 두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핵심이다.
기분은 파도와 비슷하다. 인간의 힘으로 파도를 멈출 수 없듯 우울한 기분이 찾아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치료의 목표도 바다를 늘 고요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파도가 치는 날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노를 젓는 법을 익히는 데 있다.
우울증의 회복은 기분이 완전히 달라지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에 휩쓸렸을 만한 상황에서 ‘아, 내가 지금 또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회복의 신호다.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곧장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 걸음 떨어져 자기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울할 때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현실과 구분하기 어렵다. 업무에서 실수하면 ‘나는 이 일에 맞지 않아’ ‘상사는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할 거야’라고 단정한다. 한 번의 실수를 자기 능력 전체에 대한 평가로 확대하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치료 초기에는 한참 뒤에야 ‘내가 실수 하나를 너무 크게 받아들였구나’라고 깨닫는다. 회복이 더 진행되면 알아차리는 시간이 짧아진다. 나중에는 실수한 순간에도 ‘지금 한 번의 잘못으로 내 능력 전체를 판단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린다. 이어서 ‘이번에 잘못한 부분과 내 능력 전체는 별개의 문제’라고 다르게 해석한다.
치료는 ‘나는 쓸모없어’라는 생각을 ‘나는 최고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한 번의 실수는 인정하되 그것을 자기 존재 전체에 대한 평가로 확대하지 않는, 현실적인 사고를 되찾는 과정이다. ‘요즘 많이 지쳐 있어서 내가 무능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모든 일을 망친 것은 아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전에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적이 있다’라고 생각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다.
감정과 행동의 관계도 달라진다. 기분이 좋아야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고, 그날의 감정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경향을 ‘기분 의존성’이라고 한다.
진료 중에 운동이나 외출을 권하면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마음이 나아지면 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환자가 많다. 우울하면 약속을 미루고, 의욕이 없으면 침대에 계속 누워 있고,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할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지가 약하거나 게으르다는 뜻이 아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행동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줄고, 행동한 뒤에 느낄 즐거움과 성취감도 미리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환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기분 의존성이 우울증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라는 데 있다. 활동하지 않은 채 의욕이 저절로 생겨나기를 기다리면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 하루를 허비했다는 자책까지 더해져 몸을 일으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산책 한 번으로 우울증이 낫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도 밖에 나갔다는 경험은 ‘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확신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행동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한 경험, 미뤄둔 일을 10분이라도 해낸 경험, 잠깐이나마 기분이 나아진 경험은 모두 회복의 재료가 된다. 기분 의존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뜻이 아니다. 우울한 상태를 인정하되 모든 결정을 기분에 맡기지는 않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씻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혼자만 있으면 더 가라앉으니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자”고 판단한다. 행동의 기준이 ‘하고 싶을 때 한다’에서 ‘나에게 중요한 일이므로 한다’로 점점 옮겨간다.
기분과 상관없이 행동하기 시작하면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회복된다. 우울증이 심하면 사소한 문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걱정만 반복한다. 상태가 나아지면 문제를 작게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일과 지금 손댈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좋은 일에는 조금 더 반응하고 힘든 일에는 덜 압도된다. 음식 맛이 전보다 선명해지고, 대화를 나눈 뒤 답답함이 줄어들고, 일을 마쳤을 때 작게나마 만족감이 생긴다. 무엇을 했을 때 상태가 달라지는지도 알게 된다. 회복이 저절로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에게 도움이 된 행동을 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치료가 남이 건네는 처방에서 자신이 활용하는 기술로 바뀐다. 우울증 치료에서는 단지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다루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는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고 검토한 뒤 필요하면 거리를 두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핵심이다.
기분은 파도와 비슷하다. 인간의 힘으로 파도를 멈출 수 없듯 우울한 기분이 찾아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치료의 목표도 바다를 늘 고요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파도가 치는 날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노를 젓는 법을 익히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