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을 오래 앓은 사람은 심장 혈관이 막혀 심장 근육이 손상돼도, 통증을 못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장의 ‘비상벨’이 고장 난 것으로, 이른바 무통증 심근경색이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심장내과 전문의 전호성 교수가 유튜브 채널 ‘건나물TV’에 출연해 이에 대해 설명했다. 당뇨병 환자들이 심장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신경 때문이다. 신경은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는데, 만성적인 고혈당 상태가 이어지면 미세혈관이 막히고 신경이 서서히 손상된다. 이에 신경을 둘러싼 혈액 신경 장벽이 무너지면 독성 물질이 안으로 들어와 신경을 망가뜨린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만성 고혈당인 경우 혈액 속 당이 단백질과 엉겨 붙어 최종당화산물 즉 당독소를 만든다. 이 물질은 혈관 안쪽 벽의 내피세포에 들러붙어 산화질소 생성을 방해하고, 혈관을 손상시키는 활성산소를 늘린다. 이로 인해 혈관 내벽에 염증 세포와 지질 찌꺼기가 쌓이며 플라크가 만들어진다.
정상적인 플라크는 콜라겐 섬유로 두껍게 덮여 있어야 하지만, 당뇨 환자의 경우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이 보호막이 얇아진다. 두께가 얇아져 불안정해진 플라크는 쉽게 파열되고, 터진 찌꺼기와 혈액이 섞이면서 혈전이 생겨 관상동맥을 막는다. 심근경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신호 중 하나는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빨리 뛰는 증상이다. 심장의 속도를 조절하는 미주신경, 즉 부교감신경이 먼저 손상되기 때문이다. 더 악화되면 가슴 통증을 뇌로 보내주는 신경망도 망가져 심장에 산소가 부족한 응급 상황에서도 뚜렷한 통증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전호성 교수는 “당뇨 환자들을 검사하면 약 30% 이상이 가슴 통증을 안 겪는데도 심장 허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숨이 가쁜 것 외에 몇 가지 전조증상을 잘 기억하는 게 좋다. 전 교수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거나, 명치가 꽉 찬 듯 답답한 느낌이 들 때 소화불량으로 넘기면 안 된다”면서 “이런 증상은 뇌로 가지 못한 통증이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나타나는 응급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화제만 먹고 방치하다가 내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칫 심장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증상이 관찰된다면 즉시 병원에 내원해 진찰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