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따라 남고 모자라고… 대상포진 백신 수급 불균형

입력 2026.03.26 14:16

입찰 경쟁에 재고 방치까지
지자체별 백신 과잉·부족 엇박자
“명백한 행정 실패” 지적도

대상포진 백신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상포진 백신 사업이 지역마다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쪽에선 예산 부족으로 ‘입찰 경쟁’까지 시도되는 반면, 다른 쪽에선 백신이 대량으로 남는 상황이다.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예산 편성과 경직된 운영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족한 곳은 입찰 경쟁… 단가 낮추기 고육지책?
대상포진은 신경에 잠복해 있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면역력이 저하된 고령층에서 잦고 한 번 걸리면 신경통 등 후유증을 남길 수 있어 백신으로 예방하는 게 권고된다. 백신은 독감처럼 매년 반복 접종하는 방식이 아니라 1회 또는 2회 접종으로 끝난다.

대상포진 백신 지원 사업은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해 추진한다. 다만 거주 지역에 따라 접종 가능 여부와 조건이 달라지는 ‘예방접종 복불복’ 현상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시 송파구는 민간 의료기관 위탁 방식으로 진행하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 사업을 ‘입찰 경쟁’ 방식 운영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동별로 1개 의료기관만 위탁기관으로 선정하는데 지원하는 의료기관이 직접 접종 단가를 제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사회 임현선 부회장은 “접종 단가를 적어내라고 한 것은 사실상 입찰”이라며 “환자 접근성이나 진료 특성이 아니라 가격이 싼 기관이 선정되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식은 지역 내 의료기관 간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선정되지 않은 의료기관에서는 고령층 접종 자체가 제한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평소 이용하던 의료기관에서 접종하지 못하거나 특정 의료기관 쏠림으로 오랜 대기 등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

지역 의료기관들의 항의에 송파구는 결국 사실상 ‘입찰’ 방식을 폐기하고 모든 의료기관이 접종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위탁 선정 의료기관이 제시한 입찰가로 단가를 맞추라는 권고사항을 냈다. 임현선 부회장은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대상자를 관리해야 하는 지자체의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결과적으로는 가격 중심 구조가 형성되면서 공공보건 사업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600명분 남아… “명백한 행정 실패”
반대로 대상포진 백신이 남아 재고로 쌓이는 사례도 생겨났다. 익산시의회에 따르면 익산시는 지난해 대상포진 백신 약 4500명분, 3억7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실제 접종 인원은 1497명, 집행률은 33%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약 2600명분의 백신이 사용되지 못한 채 남았다.

익산시 보건당국은 기초수급자 접종률을 과도하게 높게 예측한 점과 행정 절차 지연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시가 조례를 개정해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 대상을 기존 60세 이상 취약계층에서 65세 이상 모든 시민으로 확대했지만 실제로는 ‘취약계층과 중증장애인 우선’이라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시민들을 돌려보내는 등 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오임선 익산시의원은 “예산과 물량은 충분했지만 시가 취약계층 90% 접종 완료 후에 일반시민으로 확대하겠다는 기존 방침만을 고수하는 바람에 시민들이 접종을 받지 못했다”며 “백신이 남아도는 상황은 명백한 행정 실패”라고 말했다.

◇지역별 차이로 예방 기회 ‘복불복’
지자체별 지원 기준과 예산 차이로 인한 수급 불균형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병훈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지자체별 어르신 대상포진 예방접종 자율사업 현황’에 따르면 전국 229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68곳(73.4%)만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61곳(26.6%)은 전혀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원 연령, 본인 부담금, 백신 종류 등도 지역별로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는 65세 이상 전면 무료 접종을 시행하는 반면, 다른 지역은 70세 이상 또는 저소득층으로 대상을 제한하거나 본인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백신 종류 역시 일부 지자체만 효과 좋은 사백신을 공급하는 등 편차가 크다.

전문가들은 대상포진 백신 지원 사업이 지자체 자율에 맡겨진 현재 구조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임 부회장은 “지자체 사업은 재정 자립도나 인구 구조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국민과 의료기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기준과 운영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의료기관과의 소통과 협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결국 현장 혼선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마취통증의학과 A원장은 “대상포진은 고령층에서 질병 부담이 큰 만큼 단순한 지자체 사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처럼 지역별로 지원 여부와 기준이 달라지는 구조로는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국가예방접종사업에 포함시켜 안정적인 재원과 일관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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