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지나간 뒤, 더 무서운 게 온다는데…

입력 2022.07.14 07:30

뇌에 염증 유발, 치매 가능성 높여… 항바이러스 치료 필수

대상포진
대상포진에 걸린 적이 있다면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아야 차후 치매 발병 위험도 낮출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 뱅크
대상포진은 피곤하면 나타나는 꽤 흔한 질환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과로해 면역력이 떨어진 부모님, 친구, 선후배 등으로부터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누구나 겪는 질환이, 복구 어려운 질환인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정말일까? 대책 방법은 없을까?

◇대상포진 바이러스, 뇌 등 신경계 좋아해
대상포진과 치매, 전혀 상관없는 질환인 것만 같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수두를 앓은 후 남은 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가 숨어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다시 나타나는 질환인데, 이 바이러스는 특히 신경계를 좋아한다. 통증과 발진도 보통 신경절(말초신경의 신경세포체가 모여있는 곳)을 따라 생긴다. 신경세포 뭉치인 뇌로도 역시 잘 침투한다. 이 때문에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치매와 상당히 비슷하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노영 교수는 "대상포진을 심각하게 앓으면, 이 바이러스가 뇌로 침투해 뇌염을 유발한다"며 "바이러스성 뇌염에 걸리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등 얼핏 치매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성 뇌염은 치매가 아니다. 그러나 중추신경계에 심한 염증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된다. 이론적으로 뇌에 염증이 생기면 추후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배성만 교수는 "실제로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 염증을 항진해, 뇌에 축적되면 치매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타우 인산화 단백질 등이 신경세포에 빨리 쌓이도록 한다는 사실이 실험실 연구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세포 안으로 침입할 때 '인슐린분해효소(IDE)'를 수용체로 이용한다. 이 효소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분해할 때도 사용되는데, 대상포진 바이러스로 효소 활동이 차단되면서 대뇌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침착될 수 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자체가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어,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대항하려고 신경세포들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더 많이 생성한다는 가설도 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뇌혈관 장벽을 빠르게 노화시켜, 뇌졸중 위험을 높이면서 치매 발병 위험이 커지기도 한다.

◇임상 연구 결과 엇갈려
아직 두 질병의 인과관계가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물론 학계에선 대상포진에 걸리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게 중론이다. 이론적으로 설명된 데다, 관련 실험실 연구 결과는 많기 때문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로 번지면 치매 위험이 두 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최근, 대상포진이 추후 치매 발병 위험을 오히려 낮춘다는 대규모 임상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덴마크 오르후스대병원 연구팀이 대상포진에 걸렸던 사람 24만여 명과 걸리지 않았던 123만여 명을 21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대상포진 환자군에서 치매를 진단받은 비율은 9.7%로 대조군(10.3%)보다 약간 낮았다.

왜 이렇게 정반대의 연구 결과가 나온 걸까? 먼저 치매는 임상시험으로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 배성만 교수는 "치매 잠복기가 10~15년 정도"라며 "매우 긴 호흡으로 추적 연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데다가, 그사이 실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을 제대로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덴마크 연구에서도 여러 한계점이 지적됐다. 노영 교수는 "증상이 가벼워 병원에 가지 않은 인원은 대상포진 진단 그룹에서 누락됐을 수 있으며, 아주 심각하게 감염된 사람은 사망 등으로 배제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대상포진과 치매 사이 연관성을 밝히려면, 대상포진 백신 맞은 사람을 대상으로 치매 유병률도 확인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매우 구하기 힘들다. 건강 보험 시스템이 잘돼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상포진 백신은 건강 보험이 안 돼 데이터를 모으기 어렵다. 배성만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최근 데이터를 보면 대상포진과 치매 사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면서도 "위험률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결론을 내리기 애매하다"고 말했다.

◇대상포진 걸렸다면 항바이러스 치료 꼭 받아야
치매는 한번 걸리면 되돌리기 힘든 질환이다. 따라서, 미미한 영향을 주더라도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아직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정립되진 않았지만, 대상포진 걸린 이후 치매 발병 위험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항바이러스 치료를 제때 꼭 받아야 한다. 배성만 교수는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치매 발병 위험이 40~50% 떨어진다"며 "사실 단순포진 바이러스가 치매 유병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추정되는데,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단순포진 바이러스에도 영향을 미쳐 치매 발병 위험을 더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김성한·배성만 교수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을 이용해 대상포진 진단을 받은 50세 이상 한자 3만 4505명의 치매 발생률을 10년간 분석했더니,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지 않은 집단은 치료 집단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1.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영 교수는 "대상포진에 걸려 뇌염 등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졌다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에 걸리기 쉬운 50세 이상 성인은 미리 백신을 맞는 걸 권장한다. 평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질 좋은 수면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대상포진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