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작업·놀이·감통… 발달 장애 아이에게 꼭 필요한데, 치료비 탓 가정은 휘청 [조금 느린 세계]

입력 2024.10.31 16:50

발달 전문가들 “지금 급여화하지 않으면, 나중에 치를 사회 부담 더 커질 것”

부모와 아이
발달 지연·장애 치료비가 대부분 건강 보험 비급여라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발달 지연 아이들을 치료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요. 물을 계속 붓듯 치료를 계속 이어나가야 독 안의 수위가 어느 정도라도 유지가 됩니다.”

한 발달 지연 아동의 보호자가 기자에게 말했다. 발달 지연·장애 아동은 대부분 성장하는 내내 치료받아야 한다. 발달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때로는 성인기까지 치료가 이어지기도 한다. 보호자들은 비싼 치료비에 허덕이면서도 치료를 포기할 수 없다. 지금의 치료가 아이의 장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치료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방법이 없을까?

◇가계 수입 대부분 치료비로 지출
언어·대근육 발달 지연을 진단받은 A군(4)은 한창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언어 치료·놀이 치료·작업 치료·감각 통합 치료·그룹 수업(언어 사회성 발달) 등 다섯 가지 치료를 고루 받는다. 최대로 받을 땐 한 주에 총 16회까지도 들었다. A군 보호자는 “최대 월 500만 원까지 치료에 써 봤다”며 “맞벌이 수입의 80~90%를 치료비로 지출한다”고 말했다. 실비 보험이 200만 원 정도를 지원하지만, 치료비 이외에 아이에게 드는 교육비 등 부대 비용과 3인 가족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빠듯하다. 올 초부터 정부 발달재활바우처 대상자가 돼 치료비 지원을 받고 있으나, 그 마저도 한 달 20만 원 내외다. 갈 길은 아직 멀다. A군 보호자는 “언어 치료를 많이 받아서 언어 발달 수준이 많이 올라왔지만, 아직 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은 서툴다”며 “대근육 발달도 또래보다 더디다”고 말했다. 장애 등록은 하지 않았다.

18개월에 언어·대근육·소근육 등 전반적인 발달 지연을 진단받은 B양(4)의 상황도 비슷하다. B양은 27개월쯤 아동발달센터에서 치료받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는 놀이 치료·언어 치료·감각 통합 치료를 실비 보험 청구가 되는 센터에서 6회, 실비 청구가 불가능한 사설 센터에서 6회 매주 총 12회를 받았다. 치료비 절반가량이 실비로 보전됐지만, 올해 4월 보험사(현대해상)에서 보험급 지급을 끊었다. B양 보호자는 “27개월 때는 중증 자폐 수준이었던 아이가, 치료받은 후엔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 수준으로 개선됐다”며 “그래서 치료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치료 12회 모두를 사설 센터에서 받고 있다. 월 200여만 원가량이 오롯이 치료비로 들어간다. 월급의 약 60%다. 가계 수입으로 치료비와 생활비를 다 충당할 수 없어, B양의 외가에 매달 150만 원가량을 지원받는다. 특수교육대상자치료비지원​과 발달재활서비스 등 바우처를 합쳐서 정부에선 월 33만 원을 받고 있다. 역시 장애 등록은 아직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과다한 치료를 받는 게 아니다. 언어 영역만 지연되면 언어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대부분은 한 영역에서만 발달이 늦는 게 아니라 여러 영역에 걸쳐서 발달 지연을 보인다. 말이 늦는 동시에 사회성이 부족한 식이다. 인하대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 이정섭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은 “단순히 한 가지 치료만 받아서는 전반적 발달 수준을 결코 개선시킬 수 없다”며 “발달이 조금이라도 지연되는 모든 영역에 대한 치료가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급여 적용 안 돼 비싼 치료비… 정부 바우처 신청해야
치료비 부담이 큰 이유는 또 있다. 현재 발달 지연·장애 치료는 대부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된다. 치료 한 번에 10만 원 내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지연아동특별위원회 관계자는 “주치의들은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최소 주 10시간에서 20시간 이상의 치료를 권장하고 있어, 실제로 월 천만 원 이상을 치료비로 지출하는 가정도 있다”고 말했다. 비싸다고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다. A군 보호자는 “치료받은 후 아이 발달이 개선돼도, 정상 발달 아이들은 그동안 더 멀리까지 나아가있으니 여전히 발달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 김인향 교수(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는 “발달은 특정 나이대가 아니라 아동기 전반에 걸쳐 이뤄진다”며 “각 나이에 맞는 치료를 계속 받아야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한 정부 바우처 사업이 있기는 하다. 발달재활서비스, 우리아이심리지원서비스, 영유아발달지원서비스, 특수교육대상자치료비지원 등 네 가지다. 언어·인지·놀이·미술·음악·청능·감각통합 등 다양한 영역의 치료비를 일부 지원한다. 발달지연아동특별위원회는 ▲발달 장애 이전의 발달 지연 상태일 땐 영유아발달지원서비스 ▲발달 장애이지만, 어떤 유형인지 확진되지 않았을 땐 우리아이심리지원서비스와 발달재활서비스 ▲어떤 유형의 발달장애인지 확진됐을 땐 특수교육대상자치료비지원과 발달재활서비스를 우선 신청해보길 권한다. 특수교육대상자치료비지원 이외에는 모두 소득 기준이 있다. ▲발달재활서비스는 기준중위소득 180% 이하 ▲우리아이심리지원서비스는 기준중위소득 140% 이하 ▲영유아발달지원서비스는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다.

이는 대략적 지침일 뿐, 지자체마다 신청 요건과 지원 금액에 차이가 있다. 또 바우처 유형에 따라 금액이 지원되는 치료비 유형이 다르다. 교육청으로 신청하는 특수교육대상자치료비지원을 제외하면, 아이에게 어떤 바우처가 가장 적합할지는 거주지 관할구역 동사무소에 문의해야 한다.

◇바우처 소득 기준 까다롭고 금액 적어… 사보험 의존 강화
대상자로 선정돼도 금액이 많지 않은 게 문제다. 발달재활바우처는 월 25만 원, 우리아이심리지원서비스는 월 18만 원, 영유아발달지원서비스는 월 20만 원, 특수교육대상자치료비지원은 월 16만 원이 최대 지원 금액이다. 치료에 200만~300만 원씩 쓰는 보호자들에게는 부족하다. 실제로 2018년 강남대 교육대학원과 용인대 재활복지대학원 공동 연구팀이 언어 치료 영역에서 발달재활서비스를 이용하는 보호자 276명을 조사한 결과, 약 82%가 언어 치료에 추가 부담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월 평균 8만1000원 이상인 경우가 약 58%, 21만 원 이상인 경우가 약 20%였다. 언어 치료만 봐도 이 정도다.

이에 많은 부모가 민간 실비 보험에 의지한다. 그러나 보험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보험사가 민간 자격증이 있는 치료사가 제공한 치료에 대해 실비 보험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국가 자격 치료사가 한 치료가 아니면 의료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가 이상 행동 원인을 파악해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응용행동분석(ABA) 치료 같은 일부 치료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 아예 없다. 치료사들이 미국 ABA 치료 자격증을 따거나 관련 학과를 졸업한 후 민간 자격증을 따서 활동해도,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간 자격증 치료사가 시행한 치료도 보험금 지급 대상이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판결이 지난 6월에 나왔음에도 치료비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 B양 가정도 현재 실비 보험 지급이 끊겼다. 일각에선 발달 지연·장애 치료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지나치게 적어, 민간 기업에 부담이 가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달 지연·장애 치료비 건강보험 급여화해야”
이상의 문제는 발달 지연·장애 치료비 건강보험 급여화로 해결할 수 있다. 이정섭 센터장은 “바우처는 차선책이고, 건강 보험에서 지원해 주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발달 지연·장애를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해 이들이 사회 일원으로 자라나도록 정부가 돕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사회가 치러야 비용이 지금 드는 치료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급여화를 하면 지원 사각지대가 해결되는 것은 덤이다. 발달 장애 아이들은 발달 지연 아동처럼 실비 보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대부분 실비 보험은 발달 지연 치료비만 일부 보전하고 있어, 자폐스펙트럼이나 지적 장애 같은 중증 발달 장애 환자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김인향 교수는 “중증 발달 장애는 발달 지연보다 더 많은 치료를, 더 오래 받아야 함에도 실비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이에 발달 장애 진단 자체를 기피하다가 장기적으로는 아동 치료 예후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호자와 아이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급여화가 꼭 필요하다. A군 가정은 맞벌이를 해야 치료비 충당이 간신히 가능하다. 이에 A군 보호자가 오후 5시에 일이 끝난 후, 아이를 데리고 센터에 치료받으러 간다. 만 4세인 A군이 오후 5시부터 세 시간씩 이어지는 치료 스케줄을 소화한다. 간식으로 허기를 때우며 치료받다가, 집에 가서 9시경 늦은 저녁을 먹는다. 그렇다고 치료를 줄일 계획은 없다. A군 보호자는 “급여화가 돼서 치료비 부담이 줄면,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낮에 치료 센터에 데려갈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가족의 생활이 정상화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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