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에스프레소가 가능해? '콜드 에스프레소' 머신 체험기 [기고]

입력 2023.03.15 17:03
커피 3잔
사진=김민수 플레이버 커피 대표​
차가운 에스프레소가 가능할까? 에스프레소는 ‘고온·고압의 물’로 짧은 시간에 추출해 낸 커피다. 처음 기계가 탄생한 1901년부터 지금까지 120년 동안 에스프레소는 뜨거운 물에 의해 추출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커피(에스프레소)는 뜨겁고, 빠르고, 진해야 한다!

커피 머신 제조기업 제로쓰로(Zeroth law)의 'REAL9’ 개발 소식은 그래서 충격적이었다. 찬 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다고? 실험 수준이 아니라 머신을 개발해서 상용화시켰다고? 그것도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바리스타를 직업으로, 또 에스프레소 바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궁금했다. 기존 에스프레소와 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

지난 3월 9일 빈브라더스 합정점의 시음 행사는 그런 의미에서 큰 행운이었다. <제로쓰로 REAL9 머신 & 라마르조꼬 GB5 머신 추출 커피 비교 테스트>에 신청해 당첨됐고, 기존의 뜨거운 에스프레소와 차가운 에스프레소를 직접 비교하며 맛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감상을 정리해본다.

◇“압력만 제어해 에스프레소 추출”
제로쓰로의 REAL9은 추출수의 온도는 배제하고 압력만을 정확하게 제어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라마르조꼬의 GB5 머신은 전통 방식이다. 고온 고압 방식의 추출이다. 테스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참가자들이 트라이앵글 방식으로 2회 시음하고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리얼나인 머신의 추출 양상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기존 머신의 에스프레소 추출과 큰 차이 없다는 느낌. 커피퍽이 적셔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느렸고 채널링 또한 특별히 발생하지 않는 걸로 볼 때 물 분포도 전체적으로 고르다는 느낌이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과소추출이 다소 발생하는 것 같긴 했다.

연속 추출을 진행해도 추출 양상은 똑같아 보였는데, 실제로 빈브라더스 김의성 테크니션은 “이전에 진행한 반복 실험에서 추출농도가 동일하게 재연되는 결과값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물의 온도는 고온에서는 1,2도가 매우 큰 차이를 일으키지만 저온에서는 오차 범위가 커지더라도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따라서 머신이 압력만 동일하게 제어해주면 일관된 추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제로쓰로가 내세우는 REAL9 머신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추출의 일관성이다.

◇‘찬 에스프레소’ 구별 생각보다 쉽지 않아
랩실로 이동해 본격적으로 시행한 트라이앵글 테스트 방식이 인상 깊었다. 두 가지 제품의 차이에 대한 정보를 확률로 획득할 수 있는 아주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실험군에게 A, B, C 세 개의 잔에 담긴 커피가 블라인드로 제공됐다. 둘은 같은 종류이며 하나는 다른 종류이다. 실험군은 시음을 통해 세 가지 커피 중 종류가 다른 하나를 골라내면 되는 거다. 정답률이 높으면 그만큼 차이가 확실해서 구별이 쉽다는 것, 낮으면 그만큼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날 테스트에선 빈브라더스의 시그니처 원두인 ‘블랙 수트’를 라마르조꼬 GB5로 추출한 커피와 제로쓰로 REAL9으로 추출한 커피가 선택지로 제공됐다. 여러 잔을 연속 추출해 양을 맞춘 후, 칠링을 통해 온도까지 동일하게 맞춰 테스트 잔에 제공됐다. 재밌는 건 시음 참여자 6명에게 제공한 선택지가 제각각 다르게 구성돼 있었단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리얼나인 추출 커피 2잔, GB5 추출 커피가 1잔이 제공됐지만, 다른 참여자에겐 반대의 조합이 제공됐고 A,B,C 순서도 달랐다. 서로 간에 커닝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주최 측만이 각각의 정답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공정하고 철저한 테스트였다.

차갑거나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참가자들은 얼마나 구별해 냈을까. 테스트 결과, 1차 에스프레소 테스트는 정답률 33%로 6명 중 4명이 구별하지 못했다. 2차 아메리카노 테스트는 정답률 87%, 6명 중 1명만이 구별하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에스프레소는 기존 방식과 새로운 방식에 큰 차이가 없었단 얘기다. 반면 아메리카노는 누구나 구별할 만한 차이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나를 포함한 6명 참가자 모두 커피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추출 일관성’ 측면에서 강점
직업상 매일 에스프레소를 몇 잔씩 마시다보니  REAL9으로 추출한 커피를 구별해내는 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쉽지도 않았다. 에스프레소 마니아가 아닌 이상은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다. 클린컵이라든지, 산패로 인한 향미 변화의 속도 같은 부분에서는 오히려 기존 방식보다 좋은 평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메뉴 자체보다는 물, 우유 등을 섞어서 만드는 에스프레소 베이스 메뉴들을 타깃으로 하는 매장이라면 충분히 REAL9 머신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에스프레소 바가 아닌 다음에야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롱블랙), 카페라떼(화이트) 등의 메뉴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니까. 추출의 일관성, 즉 재연성이 뛰어나므로 매장 내 바리스타의 실력 차이를 머신이 커버해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 되겠다.

전력 소비량 측면에서도 장점들을 인정해줄 수 있겠다. 조금 아쉬운 점은, 아직 프로토 타입의 머신이라 추출 그룹수가 1구뿐이고, 스팀 보일러가 없다보니 우유 스티밍을 위한 스팀 머신을 따로 구비해야 한다는 정도. 그룹수는 점차 늘려갈 계획이란 얘기를 현장에서 들었다.

어쨌든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유지되어온 고정관념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그것도 에스프레소의 종주국이 아닌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이렇게 빨리 전기차의 시대로 대체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에스프레소 머신의 세대교체도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그것도 가까운 미래에.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빈브라더스x제로쓰로 팀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