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심장병 부모 탓 아냐, 자책 대신…" [헬스조선 명의]

입력 2021.04.05 07:15   수정 2021.04.23 15:2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선천성심장병 명의' 서울대병원 김기범 교수


선천성심장병은 태아 시기에 심장이 정상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심장 기형 또는 기능 이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심장질환이 생기거나 심장질환에 의해 사망할 경우, 환자 본인도 알지 못한 선천성심장병을 앓고 있던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선천성 질환인 만큼 발생률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신생아 100명 중 1명에게 나타날 정도로 비교적 자주 발견된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빨리 발견·치료할수록 효과와 예후가 좋은 만큼, 부모는 뱃속 아이, 또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의심 증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를 만나 선천성심장병의 원인과 진단·치료, 치료 후 관리법 등에 대해 들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선천성심장병에는 어떤 질환들이 있나.
선천성심장병으로 알려진 것은 30여 종류가 넘는다. 청색증 여부를 기준으로 보면 청색증이 없는 질환들이 훨씬 많다. 가장 흔한 종류는 심실 또는 심방중격(좌·우 심방을 나누는 벽)에 결손이 있는 것으로, 심한 경우 어린 시기에 심부전 증상이 생겨 치료를 받기도 한다. 또 혈관이나 판막이 좁아지는 대동맥축착, 폐동맥협착 등이 있으며, 청색증을 동반한 질환에는 팔로사징, 대혈관전위 등이 있다.

Q. 선천성심장병의 원인은 무엇인가.
선천성심장병의 원인으로 특별하게 알려진 것은 다운 증후군과 같은 일부 유전성질환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로, 약 85%는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Q. 부모의 신체적 특성이나 임신 중 특정 행동도 영향을 미치는지.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부모의 신체적 특성이나 특정행동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환자를 진료할 때 아이가 선천성심장병을 가졌다고 해서 부모 스스로 자책하고 불안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렇지 않다고 항상 말한다. 아이에게 피해를 줬다고 생각하기보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적극 치료에 나서길 권한다.

Q.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선천성심장병을 겪고 있다. 발생 빈도는 어떤가.
선천성심장병은 생각보다 흔하다. 신생아 100명 중 1명 꼴로 선천성심장병 증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중 많은 경우는 별도 치료 없이 관찰만하기도 한다. 최근 전체적인 신생아 수가 많이 줄면서 선천성심장병을 갖고 태어나는 신생아 수도 줄고 있지만, 여전히 발생 빈도는 비슷한 수준이다. 복잡한 심장기형은 수술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인 치료가 요구되다보니, 성인을 포함한 전체 선천성심장병 환자 수는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선천성심장병이 발생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선천성심장병은 엄마 뱃속 태아 초기, 심장이 형성되는 시기인 임신 8주 이내에 발생한다. 때문에 임신 초기는 물론 임신 계획 기간에도 관리가 필요하다.

Q. 주로 태아시기에 발견하나.
우리나라는 태아 초음파가 적극 시행되고 출산 전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만큼, 복잡한 심장기형을 비롯한 많은 선천성심장병이 출생 전부터 진단되고 있다. 출산 전 태아에게 선천성심장병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염려돼 태아시기부터 소아심장과에 방문하는 임신부도 많다. 다만, 비교적 단순한 심장기형의 경우, 출생 후 다양한 시기, 보통 1세 이전에 호흡곤란, 청색증 등 선천성심장병에 따른 다양한 증상을 보이며, 이때 병원을 방문해 심장초음파 검사를 통해 선천성심장병을 진단하게 된다. 성인이 돼서 진단받는 환자는 질환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건강검진 등을 통해 발견한다.

Q. 선천성심장병을 의심해볼 수 있는 증상은.
질환 종류에 따라 증상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심실, 심장, 대혈관 사이 결손 등이 있는 경우, 혈류가 폐에 쌓여 숨이 차는 등 호흡곤란이 생길 수 있다. 또 폐로 전달되는 혈류가 부족하거나 심장 내에 혈류가 많이 섞이면 피부가 파랗게 보이는 청색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산소포화도를 측정해보면 질환 여부를 알 수 있다. 태아의 선천성심장병에 의해 나타나는 산모 신체 변화는 없다.

Q.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에게 해볼 수 있는 문진은.
아이가 활동량이나 식사량이 줄진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운동을 하거나 계단을 오를 때 힘들진 않은지, 또래들과 어울리는 데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보도록 한다. 선천성심장병이 진행된 경우, 또래에 비해 운동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Q. 신생아는 부모가 증상을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신생아 시기에 증상을 보이는 질환(선천성심장병)은 많지 않다. 다만, 건강한 아기와 달리, 먹는 양이 많지 않으면서 소변양이 적고 숨 쉬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경우, 심실이나 대혈관 사이 결손이 있는지 의심해보는 게 좋다. 또 아기 피부가 파랗게 보일 때, 특히 아이가 울 때 피부가 더 파랗게 보인다면 청색증을 동반한 선천성심장병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Q. 선천성심장병 진단 과정은.
우선 신체 진찰을 진행한다. 결손이 있는 환자에게는 잡음이 들린다. 진찰로 심장 변형이 의심되면 심전도, 흉부방사선 사진을 확인한다. 이때 이상이 있으면 심장 구조와 심장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심장초음파와 함께 심장CT, 심장MRI 등 정밀 검사가 진행된다. 상태에 따라 혈관을 통해 심장의 구조와 기능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심도자 정밀검사 등을 시행한다. 검사 방법은 증상과 질환에 따라 결정된다.

심장 모형
최근에는 심실중격결손 치료를 위해 기구를 삽입해 결손을 폐쇄하는 시술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주요 선천성심장병의 치료법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 중 가장 흔하게 보이는 심장병은 심방중격결손, 심실중격결손, 동맥관개존 등 비교적 단순한 선천성심장병이다. 이 외에 드물게 발생하는 팔로사징, 대혈관전위, 단심실 등은 여러 차례 수술·시술이 필요하다. 질환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이 적용되는데, 심실 벽에 구멍이 있는 경우 우심방을 열고 판막을 통해 구멍을 막는 치료를 할 수 있다. 또 폐동맥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팔로사징은 우심실 쪽에 생긴 근육을 제거한 후 구멍을 막고 폐동맥을 넓혀준다. 가장 복잡한 단심실의 경우 혈액을 정맥에서 폐로 바로 보내기 위해 여러 차례 수술이 필요하다.

Q.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언제인가.
구조적 이상으로 인해 심장 기능 장애가 생겨 전신 증상을 보이는 경우, 시술로 치료할 수 없는 경우 등이다. 질환에 따라 수술법이 매우 다양한 만큼 일괄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우선 가슴을 여는 개흉수술이 필요하고, 심장을 멈추는 약을 사용한 뒤 심장을 절개해 수술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는 질환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일부 질환은 심장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하기도 한다.

Q. 비수술적 치료는 어떤 환자에게 시행되나.
흔한 질환으로는 심방중격결손, 동맥관개존, 폐동맥협착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심실중격결손에 기구 삽입을 통해 결손을 폐쇄하거나 폐동맥판막질환에 대해 정맥을 통해 판막을 삽입하는 시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 전체 선천성심장병 환자 중 46% 정도는 비수술적 치료를 받고 있다. 점차 많은 질환들이 시술로 치료되고 있다.

Q. 비수술적 치료의 장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가슴 절개나 심장을 멈추는 것 없이 치료하기 때문에 합병증에 대한 우려가 적다. 치료 후 회복도 빠르다. 특히 성인 환자의 경우 중환자실에 머물지 않고 수일 내에 퇴원하기 때문에, 빠르게 일상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외에 치료부위 흉터가 남지 않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다.

Q. 치료 후 심장 기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나.
회복은 환자와 질환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심장 기능이 아주 떨어지지 않았다면 대부분 기본적인 생활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회복된다. 단순 선천성심장병인 심방중격결손, 심실중격결손, 동맥관개존의 경우, 대부분 치료 후 심장 기능이 정상 수준에 가깝게 회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복합 선천성심장병은 치료 후에도 평생 수술 부위 심장 구조를 관찰·관리하며 생활해야 한다.

Q. 성장과정에서 자연 치유되기도 하나.
결손이 작은 경우 자연 치유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은 크기의 심실중격결손은 위치에 따라 약 50%는 자연 치유(결손 폐쇄)된다. 또 결손 크기가 3mm이하인 심방중격결손 환자들은 약 80%까지 자연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치유를 기대하는 선천성심장병은 제한적이며, 앞서 언급한 질환들 외에는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Q. 추가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판막을 넓히거나 혈관을 넓히는 수술은 완치 개념이 아닌 정상인 수준으로 판막 또는 혈관 상태를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잔여 병변이 남아있는 경우 성인이 돼도 반복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오래 전 선천성심장병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다시 병원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선천성심장병 역시 조기 진단·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이다. 비교적 간단한 선천성심장병인 심실중격결손도 결손 크기가 큰 경우 일정 나이(보통 만 2세)가 지나 치료를 하면 통상적인 치료 절차를 밟지 못할 수 있다. 진단 시기를 놓친 일부 환자의 경우, 수술 자체가 불가능해 약물 치료 등 보존적 치료만을 시행하기도 한다. 자녀가 호흡곤란, 심부전, 청색증 증상을 보인다면 반드시 가까운 의료진을 찾아 진단받도록 한다.

Q. 선천성심장병에 의해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은.
혈관을 통해 구조적 이상이 있는 부위에 균이 들어가면 균이 해당 부위에 달라붙어 심내막염을 유발할 수 있다. 결손이 있는 환자의 경우, 결손으로 인해 혈류 방향이 바뀌면서 드물게 혈전 등에 의한 뇌졸중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만 이는 공통적으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며, 질환 종류에 따라 합병증 역시 매우 다양하다.

Q. 수술 후 주의사항은.
선천성심장병으로 심장을 멈춘 후 수술한 경우, 기저질환에 따라 1~2개월 정도를 회복기로 봐야 한다. 회복 속도는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회복이 빠르면 조기부터 회복 운동 등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는 게 좋다. 반면, 수술 후 심장 기능 회복이 안 되고 약물 치료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경우, 담당 의료진 권고에 따라 회복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Q. 선천성심장병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당부한다면.
국내에서 선천성심장병을 진단·치료하는 의료진 수가 많진 않지만, 그럴수록 의료진 모두 환자와 보호자 한 명 한 명을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진단·치료하고 있다. 어느 지역,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치료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 의지와 함께 해당 의료진들을 신뢰하고 치료과정을 함께 했으면 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많은 선천성심장병 환자들이 어려운 치료를 잘 이겨내고 성인이 돼 사회생활을 잘 해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김기범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의대, 서울대병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소아청소년과에서 ▲심장질환 ▲가와사키병 ▲소아고혈압을 진료하고 있다. 비수술적 심장 기형 치료에 전문성을 두고 선천성심장병을 개흉 수술 없이 혈관을 통한 시술 방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또 면역거부 반응이 최소화된 국산 인공판막을 개발에 참여하는 등 국내 의료기술 발전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9 서울대병원 The Best Doctor’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서울대병원 교수로 발령받은 후 현재까지 120편 이상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으며, 2015년 대한심장학회 학술상, 2018년 대한소아과학회 최고 학술상인 석천학술상을 수상했다. 또 대한소아과학회·대한심장학회·대한소아심장학회·대한폐고혈압연구회·대한가와사키병학회·대한고혈압학회 등 여러 학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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