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우울 ③] "암은 '역경'일 뿐… '마음의 종양' 관리를"

입력 2021.01.27 07:15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 "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냐"

암(癌)이라는 '질환'뿐 아니라 그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까지 적극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고, 70%는 생존한다. 암이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숙제가 된 것. 이에 미국은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암 환자의 정신건강을 다루는 전문 학회를 설립했다. 최근 한국정신종양학회 3대 회장을 맡게 된 김태석 교수(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게 암환자 정신건강을 다루는 ‘정신종양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사진=서울성모병원

Q. 정신종양이라는 단어에 대해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다. 정확히 어떤 뜻인가?
-실제 병원에서는 '정신종양학 클리닉’을 개설하면 이름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을 것을 고려해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암 스트레스 클리닉' '삶의 질 향상 클리닉' 등을 운영한다. 정신종양학이란 암의 경과에 따른 심리사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의학 분야다. 암 치료가 중심이지만, 환자의 심리적·사회적 측면을 함께 돌봐야 한다는 개념에서 비롯됐다. 의대에 정신종양학 강의가 개설된 지 약 10년밖에 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젊은 의사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편이다.

Q. 암 환자의 정신건강은 생각보다 얼마나 심각한가?
-암 환자 중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지만 병적인 수준은 아닌 비율이 서양 기준 30~40%, 우리나라에서는 약 50%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단순한 위로, 격려가 아닌 전문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현상이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 증상이 불안, 불면, 우울이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암환자 비율은 우울증의 경우 20~30%로, 일반 인구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비율 10%의 2~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Q. 암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제일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많은 상상을 하는데, 모든 생각과 상상의 종착역은 ‘나는 암환자이며, 치료받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If’(가정)가 아닌 ‘Fact’(사실)를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보통 부정→분노→​​우울→​타협→​수용의 과정을 겪는다. 수용하기까지 기간은 사람마다 너무도 다르다. 일부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게는 ‘삶의 역경을 극복한 경험’ ‘평상시 갖고 있던 인생 철학’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Q. 암 환자가 자기 치료 과정을 유튜브에 게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신을 객관화시켜 스스로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심리치료에서도 비슷한 기법을 쓴다. 매일 기록을 통해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나를 객관화, 타자화시키면서 나름대로 이성적이고 싶은 일종의 방어 욕구에서 비롯된 행위로 이해하면 된다.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사진=서울성모병원

Q. 암 환자에게 병기를 숨기는 일도 종종 발생하는데…
-돌아가실 위험이 높은 분에게 산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나는 숨기지 말라고 한다. 대부분 환자 스스로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보다는, 보호자가 감당하기 힘든 부분 때문에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환자는 생각보다 강렬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종양학에서는 환자에게 어려운 얘기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와 관련해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의사소통 기술을 다루기도 한다.

Q. 암 환자가 심리적 케어를 잘 받으면 수명도 연장되나?
-이를 밝힌 객관적 연구 결과는 없다. 하지만 심리적 케어를 받지 못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비용이 증가한다는 두 가지 사실은 명백하다. 심리적 케어를 받지 못하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암에 걸리면 냉정하고 이성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보다는 감성적인 행동과 판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방암 수술 후에는 항호르몬제를 오래 먹어야 한다. 약 부작용으로 초기에 잠을 못 자거나 우울함을 느껴 자의로 약을 중단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리고 2년쯤 후 재발하면 그제야 의사에게 호르몬 약을 안 먹었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꽤 많다. 유방암뿐 아니다. 각종 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산으로 들어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리고 3년쯤 뒤 말기가 돼서 내려온다. 힘들다는 이유로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모두 심리적인 케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들이다. 두려움, 무서움, 고통 때문에 감정적인 결정을 하는 건데,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해주면 이들도 충분히 이성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우리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는 100% 정신과 진료를 권장하고 있다. 유방암 환자의 경우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Q. 암환자가 정신과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환자라는 낙인 외에 정신과 환자라는 또 다른 낙인이 찍힌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암 주치의가 환자를 정신과로 보낼 때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우리 병원 유방암 수술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를 본지 7~8년 됐는데, 처음 2년 정도는 수술 환자의 30%밖에 안 왔다. 가까스로 정신과에 와도 ‘내가 여기 왜 와야 하냐’며 회의적인 생각을 갖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수술 환자의 80~90%가 정신과를 찾는다. 또 요즘은 국내 유수 대학병원 정신과에는 암환자를 특히 많이 보는, 정신종양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진이 1명 이상 꼭 있을 정도로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사진=서울성모병원

Q. 암 진단 후 5년이 지난 생존자들도 적극적인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한가?
-암 생존자들의 정신건강 관리가 ‘뜨거운 이슈’다. 암 생존자들이 굉장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암 치료가 끝난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학업적 측면에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뒤떨어지기 쉽다. 이들을 사회에 다시 잘 복귀시키기 위한 측면에서 심리적인 케어가 필요하다. 또 완치자들은 암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암 생존자에 대한 단체가 많이 생겼다. 우리나라 정부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단계다.

Q. 정신종양학,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보나?
-암 생존자와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정신 건강을 나눠 이에 대한 더 정교한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암환자뿐 아니라 환자의 가족,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도 시작됐다. 또 대학병원급뿐 아니라, 동네에서 환자를 보는 1차의료 담당 의사들과 환자의 연결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지역의료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정신종양학회 차원에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정신종양학 교과서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Q. 암 환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암을 절망스럽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긴 인생의 과정 중에 경험하게 된 한 가지 역경이라고 보는 게 좋다. 결과적으로 암 경험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고, 암의 경험을 돌아보니 오히려 고맙게 느낄 정도면 좋다. 실제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암 진단을 받고 극복한 사람과 암 진단을 받은 적 없었던 사람들의 삶의 경과를 봤더니 암을 경험하고 극복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영국의 연구가 있다. 전화위복, 즉 암에 안 걸린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라. 현재 암 생존율은 70%나 된다. 나머지 30%에 해당하는 말기 암 환자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고, 삶의 가치를 떠올려보자.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지만, 나의 삶은 유의미했고, 열심히 잘 살았다고 인식하는 식이다. 의사들은 이런 변치 않는 팩트들을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죽음이라는 막연한 상상과 고통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도록 도와주려 노력한다. 즉, 어떤 단계에 있는 암 환자이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암환자의 우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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