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우울 ①] 불안에 불면… 환자 30% 정신과 치료 필요

입력 2021.01.12 07:15

실제 병원 찾는 비율은 10%도 안돼

머리를 싸매고 있는 환자와 옆에 서있는 의사
암환자의 3분의 1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김모(52)씨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불면증이 생겼다. 잠드는 데 2시간이 걸리고, 작은 소리에도 깼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면서 증상이 더 심해져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중독성이 비교적 적어 쉽게 끊을 수 있는 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서 수면 시간이 하루 5~6시간으로 늘었고 중간에 깨는 빈도도 줄었다. 의사의 권고로 운동까지 시작하면서 약을 먹지 않고 잠에 드는 날이 점차 늘었다. 암 진단 후 6개월이 지난 현재는 주 1회 정도만 약을 먹으며 숙면을 취하고 있다.

#강모(58)씨는 폐암 수술을 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암 재발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컸다. 6개월마다 재발 검진을 받는데, 검진 전날은 잠을 잘 수 없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했다. 아내가 병원 이름만 얘기해도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예민해졌다. 차라리 재발 검진을 받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 예정된 날짜에 검진을 거르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자 주치의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했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가슴 답답함과 숨찬 증상이 폐암 후유증이 아닌 심리적 문제임 때문임을 알게 됐다. 정신과 약물 치료를 시작한 후 가슴 답답함이 사라지고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 아내에게 짜증을 내는 일도 줄고 가족 모두가 그가 원래의 모습을 찾은 것 같다며 좋아했다. 강씨가 검진 거르는 일도 사라졌다. 

◇정서적 어려움 없는 암 환자 없어
암 진단을 받고 ‘정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 환자는 없다. 국립암센터 김종흔 박사는 “일부 환자는 암 진단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을 겪는 것과 같은 ‘트라우마’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암 환자가 심리적 어려움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가족과 전문가의 정서적 지지가 필수”라며 “이들이 스스로 극복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다소 거세게 말했다. 암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병적인 우울감, 불안감을 겪을 확률이 2~3배로 더 높다. 2018년 BMJ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암 환자가 우울감, 불안감을 겪는 비율은 각각 20%, 10%로, 일반인에게서 나타나는 평균 5%, 7%보다 높았다. 국내 조사에서는 암 환자가 우울, 불안을 겪는 비율이 약 11%, 16%로 일반인 평생 유병률인 3%, 6%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약 10%가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는 아주대병원의 2017년 연구 결과도 있다. 유방암으로 가슴을 절제한 환자는 ‘여성성’을 상실했다는 점에 의해 더 큰 스트레스를 겪는다. 암 환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이 2배로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편 일부 암(췌장암·폐암 등)에 쓰이는 항암제가 부작용으로 우울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암 환자에게 잘 나타나는 3대 심리 증상은 ▲​불안 ▲​불면 ▲​우울이다. 마인드랩공간정신건강의학과 이광민 원장은 “암 확진 초반에는 불안과 불면이 심하고, 전반적인 자기 상황을 받아들인 후에는 우울이 찾아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암 환자 중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사람은 3분의 1 정도로 학계는 추정한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 진료받는 사람은 10%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인하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원형 교수의 설명이다. 정신과 약 부작용에 대한 우려, 암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정신과 진료까지 받아야하느냐는 식의 절망감 등이 원인이다. 김원형 교수는 “암 환자에게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면 ‘난 아직 그 정도 아니다’라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며 “암 환자의 정서적 어려움은 환자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암 치료 위해서라도 정서 관리 필요
불안, 불면, 우울이 2주 이상 지속되는 암 환자는 신체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 세계 암 진료 가이드를 선도하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암 환자를 위한 ‘디스트레스 온도계’를 만들기도 했다. 일주일간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의 정도를 0~10까지의 온도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4점이 넘으면 정신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미국에서는 NCCN으로부터 암병원으로 인정받으려면, 환자에게 반드시 디스트레스 온도계 체크를 해야 한다.

정신과 치료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것은 암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이광민 원장은 “암 환자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단순히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암 치료 성공률을 높인다는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며 “암 진단 후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야 생존율이 높고, 치료 중 부작용이 덜하고, 이후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불안, 불면, 우울이 지속되면 체내 염증이 많아지는데 염증이 암 치료를 방해한다. 김종흔 박사는 “극심한 정서적 어려움에 시달리면 충분히 항암을 견딜 수 있는 상태인데 자포자기하거나 치료를 회피하면서 암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며 “반대로 정서가 안정되면서 힘든 항암 치료 기간을 훨씬 수월하게 보내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정서적 안정감을 찾으면 체력에도 영향을 줘 치료 의지가 강해지고 몸에 부담을 주는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견디는 힘이 커진다.

암 확진 후 5년이 지나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암 경험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강씨처럼 또 암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은데, 지속되는 불안은 신체 건강에 좋지 않다. 김종흔 박사는 “암에 한 번 걸린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암 재발과 전이가 더 잘 된다고 알려졌다”며 “정신적 스트레스로 몸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암 환자 전문으로 보는 정신과 의사들 있어
암 주치의에게 정신과 진료의 필요성을 얘기하면, 암병원 소속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받을 수 있다. NCCN는 미국 모든 암 병원에 '정신과'가 아닌 '종양학' 소속 정신과 의사를 배치할 것을 명시하라고 할 정도로 암 환자의 정신건강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 대학병원급 암병원에도 정신과 의사가 상주한다. 이들은 대부분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을 공부한 의사들이다. 정신종양학은 암이 환자의 정신 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 암 환자의 심리적·사회적·행동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김종흔 박사는 “정신종양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는 암환자의 정서를 치료 단계별로 세밀하게 케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제정신종양학회는 지난 1984년 설립됐으며, 의료 선진국인 미국, 영국, 캐나다에도 80년대에 국가별 정신종양학회가 만들어졌다. 한국정신종양학회는 지난 2014년 설립됐다.

암환자의 정신재활 치료법은 크게 ▲상담 ▲​약물 치료 ▲​인지행동 치료로 구분된다. 환자가 현재 앓고 있는 암의 종류나 병기, 암 치료법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말기암 환자라도 예상 생존 기간이나 현재 사용하는 치료 약물에 따라 약물 치료 여부와 치료제 종류 등이 달라진다. 약물은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등을 쓴다. 암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약물의 효능을 떨어뜨리거나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도록 세심한 처방이 필요하다.

암 치료가 끝난 환자는 의원급 정신과를 방문해 증상에 대한 관리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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