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우울 ②] 진료비 5%만… '정신과 산정특례' 있으나마나

입력 2021.01.19 07:15

'암환자 정신과 산정특례' 부실 운영​

의사와 상담하는 환자
암환자는 정신과 진료에서 암환자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암환자들은 ‘암(癌)’으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진료에서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신과 진료비 총액의 5%만 부담하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암 환자는 거의 없고, 심지어 정신과 전문의들도 헷갈려한다. 보건복지부에서 해당 사항을 뚜렷이 명시하지 않고, 이렇다 할 홍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의료진이 판단하면 관련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관련성이 모호하다”며 어쭙잖은 부연설명을 했다.

◇암환자 산정특례, 모호한 문구가 혼란 가중
‘암 및 합병증 진료는 산정특례 적용대상이나, 암과 전혀 관련성 없는 타 상병 진료는 산정특례 대상이 아님’.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암환자 산정특례 지원 범위다. 이 문구만 봐서는 암환자의 정신과 진료가 암과 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어렵다. 취재 결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모두 암 환자는 암으로 인해 ▲불안 ▲​불면 ▲​우울 등을 겪을 때 의사의 판단 하에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의사는 암 환자의 주치의이든, 일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이든 상관없다.

그렇다면 암 치료와 심리적 어려움이 직접적 관련이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함봉진 교수는 “암 환자들은 항암제 치료로 인해 구역·구토가 심하면 진통제를 처방받는데 모두 암 치료의 일부로 인정돼 산정특례 혜택이 적용된다”며 “암 치료로 인해 없던 불안, 불면, 우울이 생겼거나 기존 정신과적 증상이 악화된 경우도 암 치료 과정의 일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항암제 또는 암세포 자체가 직접 우울을 유발하기도 한다. 함봉진 교수는 “이는 암환자의 우울이 단순히 심리적 원인이 아닌 생물학적 반응의 결과로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신과 진료로 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것은 항암 의지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며 “암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정신과 진료에서의 산정특례 적용은 타당하다”고 말했다.

◇환자는 물론 정신과 의사도 적용 여부 몰라
문제는 환자는 물론 정신과 의사들마저 암환자 정신과 진료의 산정특례 혜택 여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 강남에서 정신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 A씨에 따르면 암환자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암환자 산정특례 적용이 되나요?’다. 강남에서 정신과의원을 운영하는 또다른 원장 B씨는 “암 환자 정신과질환의 산정특례 적용 가능 여부를 몰라 처음부터 묻지 않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 중에서는 ‘동네 정신과의원’을 운영하는 1차 의료인들의 인식이 저조하다. A씨는 “실제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암환자의 정신과 산정특례 적용 여부를 모르는 사람이 많고, 특히 대학병원에서는 된다고 하더라도 1차 의원에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는 의사들도 허다하다”며 “명확한 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환자에게 산정특례 적용을 해줬다가 추후 삭감될지 몰라 이를 꺼리는 의사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추후 삭감 가능성을 대비해 환자에게 주치의 진료의뢰서를 받아와달라고 요청하는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정신과적 문제를 주치의에게 불필요하게 알려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 되어왔다. A씨는 “심평원 등에 문의했지만, 명확한 기준을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병원 아닌 동네 의원에서 적극적인 관리 권장
보건복지부등 관계 정부 부처는 암환자가 정신과 진료에서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더 확실하게 표기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학병원급 암병원뿐 아니라, 동네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1,2차 병원들까지 더 적극적으로 암 환자를 볼 수 있다. 함봉진 교수는 “암 자체는 암병원에서 치료받더라도 동반된 정신과질환은 1, 2차 병원에서 치료받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며 “소수의 대학병원 정신과 의료진이 국내 수많은 암 환자들에게 충분한 상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암 유병자는 최근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통계가 나왔다. 또 암환자는 치료를 다 끝낸 뒤 관리 과정에서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국립암센터 김종흔 박사는 “씩씩하게 치료를 받다가 치료가 일단락 되면 비로소 우울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굳이 암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암병원 정신과가 아닌, 집 주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산정특례 혜택을 받으면서 ‘멘탈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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