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간호사에서 환자로 살았던 시간

삼성서울병원·헬스조선 공동기획- 나의 희망이야기⑮
악성 림프종 극복한 강경아(45)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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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후 더욱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강경아씨.삼성서울병원 제공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을 수는 없을까…. 섬뜩한 주사 바늘이 또다시 피부를 뚫고 들어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내 몸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심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 몸에 열이 나고 아프다.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얼굴은 까맣게 변해버린다. 아이들조차 무섭다며 안기려 하지 않는다.

10년 전, 생각하기도 싫은 1998년 설날 아침이었다. 가족과 설 음식을 먹는데 이상하게 소화가 안됐다. 속도 울렁거려 소화제를 먹고 버텼다. 그런데 2~3일이 지나자 배가 조금씩 불러왔다.

내가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에는 말하기가 어려워 근처 다른 병원에 갔더니 장이 이상한 것 같다며 관장을 시켰다.

그러나 배는 점점 더 불러왔고 아프기까지 했다. 메슥거림도 심해졌다. 병원일 때문에 차일 피일 미루다 집 근처 대학 병원에 갔는데도 원인을 잘 모르겠다며 더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휴가를 내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갔다. 그 때는 이미 임신 5개월 된 사람처럼 배가 많이 불러 있었다. 온갖 검사를 마치고 만난 의사는 몹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악성림프종입니다. 암(종양)이 혈액을 따라 떠 다니는 병입니다. 수술도 못하고, 항암치료를 수십 번 받아도 살 가능성은 반 정도 밖에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에 종이 울렸다. 당시 IMF로 빚이 점점 늘어나 집은 풍비박산이 나 있는 상태였다. 남편과는 떨어져 있게 됐는데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됐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항암치료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들은 누가 돌봐줄 것인지, 만약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커 나갈 것인지, 무시무시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 찼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나 밖에 없었다. 치료를 받고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후 2년은 고통의 세월, 그 자체였다.

처음엔 일주일에 두 번씩 혹독한 항암제 주사를 맞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너무 아파서 '침대에 누운 채로 영원히 잠들어 버렸으면…'하는 생각을 했지만 고사리 같은 두 아들을 생각하며 다시 이를 악물었다. 17차례나 지옥을 넘다 들며 혹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냈고, 내 몸 속 암 세포들도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2000년 3월, 드디어 완치 판정이 내려졌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일상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암 발병 당시 네 살, 여섯 살이던 두 아들이 너무 잘 자라줘 고맙다. 지금 중1, 중3 인데 얼마나 똑똑한지 반에서 1~2등을 다툰다.

병원에서 퇴근하자마자 음식점에 가서 또 일을 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는 않지만 아이들만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솟는다. 동네에서는 암을 이겨내고, 아들 둘을 똘똘하게 잘 키운 나를 '억척순이'라고 부른다.


/정리=배지영 헬스조선 기자

 

◆주치의 코멘트

"공격형 림프종도 조기치료하면 80%까지 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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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악성 림프종은 림프구라고 불리는 백혈구에서 발생하는 '혈액 암'의 한 종류다. 악성 림프종은 서서히 진행하는 '저등도 림프종'과 갑자기 발병해 급격하게 진행하는 '공격형 림프종' 두 가지가 있다.

강경아(45)씨는 공격형 림프종이었다.

공격형 림프종도 발견 즉시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하면 70~80%는 완치될 수 있지만 강 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암이 신장까지 전이돼 신장기능이 정지되는 등 상태가 극히 불량한 상태였다. 완치 가능성이 낮았지만 적극적인 항암치료와 강씨의 의지로 완치됐다.

힘든 치료과정을 이겨내고 행복한 생활로 돌아간 강 씨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