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앞뒤 10년 정도의 세대라면, ‘고래’라는 단어만 들어도 일단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우리의 학창시절은 통제와 억압의 시대였기에 기껏 ‘고래사냥’이라는 노래를 부르거나 동명의 영화를 보면서 가슴 속에 꽁꽁 숨겨둔 청춘의 거대한 꿈을 조금이나마 분출하곤 하였다.
MT를 가거나 학사주점에서 우리는 ‘고래사냥’을 목청껏 부르며 자신의 비겁함을 은폐시키려 하였다. 앞장서 시위를 주도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자신의 소심함과 나약함을 탓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역삼동 뒷골목에 누구에게 들킬세라 꼭꼭 숨어 있다. 영덕 고래불 해수욕장 찾기만큼 어렵다.
아직도 ‘고래’라는 단어는 우리 또래에겐 피끓는 청춘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더불어 당시의 비겁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직 신열처럼 남아있기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암흑의 시대는 가고 자유민주의 시대가 도래한지도 오래이건만 우리가 정녕 꿈꿨던 그 '고래'는 잡기나 했는지. 고래고기의 첫경험은 대학입학 시험을 막 치르곤 난 고3 겨울이었다. 울산이 고향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장생포 고래고기를 맛보았다.
울릉도 특산인 명이 나물(산마늘)과 묵은지 그리고 가자미 식혜와 꽁치젓으로 무친 꼬시래기(톳의 한종류).
당시는 아직 고래잡이가 가능한 때라 포경선이 잡아 온 고래를 먹을 수 있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는 포경이 금지되어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나 가끔씩 시중에 유통되곤 하였다.
지금도 울산 시민들 사이에서는 포경 재개에 대한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고 요즘은 바다에 고래가 너무 많아져서 선박과 충돌하는 경우까지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감히 제안하건대 어느 정도의 포경을 허용하는 것이 지방 문화의 특성을 살리고 식도락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고래의 여러 부위중에서 가장 맛있는 우네(앞가슴살)
필자가 자주 찾는 서울 강남의 ‘고래불’은 경북 영덕에 있는 해변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다.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진 고래불은 그 옛날 고래가 바다에 지천으로 놀았을 때는 이곳에 고래들이 놀러와서 일광욕을 즐기던 뻘이라고 한다.
물론 현재 이 식당에서 파는 고래들은 포경이 아니라 작은 고기들을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걸린 것들이다.
생고기. 얼핏봐서 소고기와 감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하기야 고래가 포유류임을 생각해보면...
영덕이 고향이라는 고래불 주인은 ‘동해안 음식’(특히, 포항, 영덕, 울진)이라는 테마를 주무기로 내걸고 있다. 사실 바닷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던 해산물들을 메뉴로 내놓으면서 특별히 동해바다 음식이라고 하니 그 작명법에 혀를 내둘를 일이지만, 주메뉴와 각종 찬들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진정성'이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