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수퍼푸드10] ①쥐눈이콩

입력 2006.02.02 12:42

약상자 채우던 쥐눈이콩 식탁으로 돌아왔다

쥐눈이콩으로 만든 메주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일반 콩으로 만든 메주보다 색이 검다.(상) 왼쪽부터 일반 콩, 검은콩의 한 종류인 서리태, 쥐눈이콩.(가운데) 메주를 쑤기 위해 쥐눈이콩을 삶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은 정선 촌부.(하)

강원도 정선. 칼처럼 ‘냉정’하게 몰아치는 바람에 볼이 벌겋게 언 촌부들이 찬물에 콩을 씻고 가마솥에 삶아 메주를 만들 준비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콩이 반질반질 까맣고 작다. 영농조합 ‘통트는 농가’ 최동완(59) 대표가 뒤에서 다가섰다. “정말 쥐 눈처럼 작고 까맣죠?”
‘쥐눈이콩’. 한자로는 ‘서목태’(鼠目太)라고 한다. 쥐눈이콩이나 서목태나, 쥐의 눈처럼 생긴 콩이란 의미다. 7월 노란 꽃이 피면 타원형 깍지 속에 지름 5∼7㎜ 정도의 작고 까만 열매가 여문다. 흔히 먹는 검은콩은 아니다. 서목태는 다른 검정콩보다 더 작고, 검고, 윤기가 흐른다.

쥐눈이콩은 한약상에서 ‘약(藥)콩’이라 부른다. 옛날부터 한방에서는 쥐눈이콩을 약으로 처방해왔다. ‘본초강목’은 이 콩을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약으로 쓰면 더 좋다. 신장병을 다르리며 기를 내리어 풍열을 억제하고 혈액(순환)을 활발히 하며 독을 푼다”고 설명한다. ‘향약집성방’은 “쥐눈이콩을 까맣게 볶아 술에 담가놓고 조금씩 마시면 중풍과 풍비, 산후 냉혈증에 좋다”고 했고, ‘명의별곡’은 “쥐눈이콩은 속을 다스리고 관맥을 통하여 모든 독을 제거한다”고 했다.
 
쥐눈이콩의 약효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경희대 한의대 예방의학교실 김홍렬 교수팀 분석 결과, 쥐눈이콩에 함유된 인중합체가 자외선에 의한 피부노화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작년 8월 밝혔다. 인(燐)중합체(폴리포스페이트.polyphosphate)는 모든 동식물에서 에너지원의 하나로 이용된다. 쥐눈이콩에는 이소플라본 성분이 일반 콩보다 5~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같은 효과를 내는 물질로, 중년 여성이 섭취하면 안면홍조 등 폐경 초기 증상을 덜 느낀다. 이소플라본은 항암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심장병도 예방 효과도 있다. 또 손상된 골세포 재생 및 치료효과도 있어서 뼈가 튼튼해진다.


특히 검은콩 껍질에는 황색콩에 없는 글리스테인이란 항암물질이 들어있다. 강원도 보건환경연구원은 ‘쥐눈이콩에는 일반 콩보다 항암물질이 19.5배 더 많이 함유돼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검은콩도 노란 콩보다는 항암효과가 높지만, 서목태 보다는 낮다.

우리 조상들에게 쥐눈이콩은 음식이라기보다 상비약이었다. 논두렁, 밭두렁에 심어두고 몸이 불편하면 한 줌씩 따서 그대로 씹어먹기도 했다. 동트는 농가 조합원 농민들은 감기 기운이 있다 싶으면 쥐눈이콩을 삶아 물을 마시는데, 이 물만 마셔도 금새 열이 내린다고 한다. 치통, 불면증, 설사, 신장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약’이 되는 쥐눈이콩은 산업화를 통해 ‘약’이 값싸게 보급되면서 잊혀졌다. 더 이상 ‘약콩’을 재배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완전히 사라질 뻔했던 쥐눈이콩은 1990년대 초반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당시 정선 농촌지도서에서 농민 지도사업을 하던 최동완씨는 가슴이 답답했다. “농민들을 만나면 너무 안된거에요. 왜 농민들은 못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어요.”

최동완씨는 1985년 정선에서 한의원을 하던 노인을 우연히 만났다. 노인으로부터 쥐눈이콩 얘기를 들었다. “쥐눈이콩이야말로 정선에 가장 알맞은 작물이다”며 무릎을 쳤다. 1991년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 최씨는 한의원 노인을 찾아갔다. 노인은 인근 야산에서 약으로 쓰려고 모아놓은 쥐눈이콩 서너 됫박을 가지고 있었다. 어렵게 두 됫박을 얻어 100가마 분량의 종자로 불렸다. 뜻을 함께 하려는 정선 농민들과 영농조합 ‘동트는 농가’를 만들고, 종자콩을 나눠줬다. 1993년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동트는 농가는 조합원이 128농가로 불었고, 두 되로 시작한 쥐눈이콩을 지난해에는 6000여 가마 수확했다. 쥐눈이콩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선에서 종자를 얻어가 쥐눈이콩을 키우는 농가가 전국적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콩은 그냥 먹으면 소화흡수율이 65%이지만, 발아시키거나 발효시키면 흡수율이 98%로 껑충 뛴다. 그래서 동트는 농가에서는 쥐눈이콩을 된장, 청국장, 청국장가루, 두부, 콩나물, 볶은콩 등으로 가공 판매한다. 100% 쥐눈이콩으로만 만든 된장은 밀가루를 30% 가량 섞어 만드는 시중 된장보다 짜고 떫고 텁텁한 맛이 강하다. 색깔도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밝은 황금색이 아닌 짙고 투박한 갈색이다. 숙성도 더디다. 방부제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쥐눈이콩이 대중화되길 바라는 동트는 농가에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쥐눈이콩 먹고 싶다면


● 동트는 농가는 쥐눈이콩과 쥐눈이콩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직영점을 정선과 강릉에 운영하고 있다. 쥐눈이콩과 쥐눈이콩으로 만든 된장, 고추장, 청국장, 간장, 두부, 콩나물, 볶은콩 등을 판매한다. 된장 7000원, 고추장 8000원, 막장 8000원(이상 450g 기준), 청국장 3500원(250g), 청국장가루 2만2000원(500g), 쥐눈이콩볶음 1만7000원(750g). 인터넷 주문도 가능하다. (033)563-3340~2 www.eastfarm.com

● 직영점과 붙어있는 식당에서는 쥐눈이콩으로 만든 음식을 판다. ‘빠글장’(7000원)이 별미였다.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지 않은 시커먼 막장을 약한 불에 오랫동안 ‘바글바글’ 끓인다. 짭짤하고 구수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게 고향 맛, 시골 맛이구나’란 생각이 절로 든다. 된장찌개 6000원, 모두부 8000원, 감자부침 5000원, 돼지고기 수육 1만5000원.

●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더 쉽게 쥐눈이콩을 만나도록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에 분점이 생겼다. 쥐눈이콩이 기본이 된다는 점은 정선과 같다. 하지만 음식이 덜 짜고 ‘모던’해서 도시사람들 입에 더 맞을 수도 있겠다. (031)965-5990 www.withfarm.com


쥐눈이콩의 효능

쥐눈이콩을 달인 물은 몸에 열이 나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세에 효과가 있다. 독을 푼다. 쥐눈이콩으로 만든 두부는 성질이 차가워 기를 움직인다. 볶아서 먹으면 몸이 더워지고, 술에 담갔다 먹으면 중풍에 효과가 있다. 죽을 쑤어 먹으면 소갈증을 없애준다.


옛 문헌에 나타난 쥐눈이콩 


본초강목 - 쥐눈이콩은 신장병을 다스리며 기를 내리어 풍열을 억제하고 혈액을 활발히 하며 독을 푼다.

향약집성방 - 쥐눈이콩은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며 무독하다. 까맣게 볶아 술에 담가 조금씩 마시면 중풍과 풍비, 산후 냉혈증에 좋다.

명의별곡 - 쥐눈이콩은 속을 다스리고 관맥을 통하여 모든 약독을 제거한다.

보제방 - 대변을 본 후 항문에서 피가 날 때 쥐눈이콩 삶은 물과 연근 달인 즙을 마시면 효과가 있다.

/ 글 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 사진=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기자 wanfo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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