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약들 효과 미심쩍다

영국 버밍엄 대학 의료통계학자 리처드 그레이 박사는 최근 의학전문지 란셋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아리셉트 등 치매 치료제의 효과가 크지 않아 약값으로 막대한 의료비를 쏟아붓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보건성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그레이 박사는 565명의 치매 환자를 선정, 이들에게 치매 치료제와 가짜 약을 복용시키고 3년간 추적 검사한 결과, 두 그룹 간에 병이 심해져 요양기관에 입원하는 비율이나, 환자의 행동·감정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란셋 편집위원인 미국 서든 캘리포니아대 치매 연구센터 론 슈나이더 박사는 “약을 복용하면 치매의 진행이 더뎌지고, 약을 중단하면 정신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대중적 믿음은 제약사측의 과대 선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치매 전 단계의 가벼운 기억력 저하(경도인지장애) 환자 769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치매 치료제, 비타민E, 가짜 약을 3년씩 복용시키고 이들이 치매 환자로 진행되는 비율을 조사한 미국 메이요병원 신경과 로널드 피터슨 박사는 “치매 전 단계 환자를 치매로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약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최근 개최된 미국 필라델피아 치매회의에서 밝혔다.

그러나 치매 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사들은 그레이 박사의 실험은 ▲임상실험 방법 자체가 부적절하게 설계됐으며 ▲실험 대상이 너무 적어 실험 결과를 일반화하기엔 불충분하며 ▲요양소 입소 여부를 약효의 기준으로 삼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아리셉트를 생산하는 한국 에자이 한 관계자는 “이전에 발표된 90여개의 임상실험에서 이미 효과가 입증됐다”며 “영국과 미국의 치매 협회서도 그레이 박사 등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영국 치매협회는 그레이 박사의 연구결과가 란셋에 발표되자 2672명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73% 이상의 환자에게서 약물치료의 효과가 입증됐다며 치매 치료지침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는 “치매 치료제의 효과가 눈에 띌 만큼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같다”며 “좀더 논란이 진행될 필요는 있지만 대안 없이 당장 투약을 중단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