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영재인줄 알았던 우리 아이가 자폐증일 수도 있을까?”

  •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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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02.22 11:08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제공

    # IQ134의 성준(가명·11)이는 유치원 때부터 특별했다. 세계 각국의 국기를 다 외우고 한글과 한자도 또래보다 빨리 익혔다. 영재교육원에서 영재테스트도 받았다. 그런데 부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들이 또래친구들과 다른 점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유희왕 카드’에 빠져 있을 때 성준이는 모형 경주자동차에만 관심을 보였다. 친구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성준이가 친구나 선생님의 유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부모는 요즘 아이들에서 흔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아닐까 걱정했다.
    진료 받으러 온 성준이는 질문에 너무 큰 소리로 답했고, 억양도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단조로웠다.

    # 고교 1년 민성(가명·16)군은 어린 시절 말이 늦고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언어장애 진단을 받고 1년간 언어-놀이치료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였는데 중학교 들어간 뒤 성적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문이 긴 문제나 서술형은 거의 풀지 못했고 시나 소설의 은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차만 타면 네비게이션 안내 멘트를 따라했다. 민성이의 IQ는 90정도로 정상 범위에 있었으나 문제 해결 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민성이는 진료 중에도 영어로 된 지도책만 들여다보았다.

    ‘자폐증’은 영화나 TV드라마 등에서도 종종 다뤄지는 질환이라 꽤 많이 알려진 편이다. 그런 탓인지 자폐증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법 익숙하다.

    과거에는 자폐증이란 진단명도 있었다. 자폐증과 아스퍼거증후군, 레트증후군 등을 묶어 ‘전반적 발달장애’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자폐스펙트럼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라는 새로운 개념이 대두됐다.

    미국정신과학회는 지난 2013년 펴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5)’에서 자폐증, 아스퍼거증후군, 달리 분류되지 않는 전반적 발달장애 등을 포괄해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정의했다. DSM-4의 전반적 발달장애 안에 포함됐던 ‘레트증후군’은 DSM-5에서는 제외됐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결함 ▲제한되고 반복된 행동이란 두 가지의 핵심 중상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증상부터 무거운 증상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에 무지개의 빨간색에서 보라색까지 이어지는 무지개처럼 증상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자폐증은 현재의 진단 기준으로 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 레벨(Level)-3’으로 볼 수 있다. 레벨-1이 가장 경증이고, 레벨-3은 가장 중증이다. 성준이와 민성이는 둘 다 ‘자페스펙트럼장애 레벨-1’인데, 과거 진단 기준으로 보면 아스퍼거 증후군에 가깝다.

    지능과 언어능력이 우수한 성준이는 최근 집중적인 ‘집단 사회기술 훈련 치료’를 받으면서 또래 관계가 꽤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민성군은 ASD 외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도 가지고 있어 치료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ASD의 유병률은 2000년 166명당 1명(0.67%)에서 2010년에는 68명당 1명(1.46%)으로 높아졌다.

    세브란스병원과 미국 예일대 의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지난 2011년 미국정신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양시의 7~12세 학생 5만52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SD 유병률은 1.89%였다.

    ‘자폐증’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로 확대된 진단 기준을 적용하면서 다소 과잉 진단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유병률이 이처럼 높게 나온 것에 대해 과거의 자폐증 진단 기준에만 익숙했던 의료진이 이제는 경미한 자폐 증상이나 아스퍼거증후군 등 광범위한 자폐 증상까지 정교하게 찾아낼 수 있는 전문적 진단 능력을 갖추게 됐기 때문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부모들의 인식도가 높아져 일찍 소아정신과를 찾는 사례가 증가한 것도 자폐스펙트럼장애 유병률을 높인 원인으로 풀이된다.

    과거 좁은 의미의 자폐증 진단 기준으로는 누락됐거나 다른 유사장애(예: 언어장애나 지적장애)로 오진됐던 ASD 아이들이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녀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으면, 자신의 책임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원인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뇌 발달 이상을 가져온 가장 주된 사유를 ‘유전적 원인’으로 본다. 자폐증은 특정 유전자(FMR1, Neurexin, SHANK3 등) 변이와 연관된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하지만 유전자 변이가 ASD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유전적 원인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부모가 자녀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유전성 질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기전은 다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이의 사회성을 관장하는 뇌 발달에 연관된 유전자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ASD가 발생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에는 부모에게 없는 신생 출현 유전적 변이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아이의 ASD에 대하여 부모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밖의 위험 요인은 성별(남아가 여아보다 4배 많음), ASD 가족력, 출생시 부모 나이(어머니 35세, 아버지 40세 이상) 등이다.

    스웨덴, 영국, 미국 등 공동 연구팀의 논문(분자정신의학 2016년)에 따르면 20~29세 어머니의 ASD 위험도를 1로 할 때 20세 이하는 1.18배, 40세 이상은 1.15배 높았다. 20~29세 아버지를 1로 할 때 40~49세는 1.28배, 50세 이상은 1.66배 높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치료할 수 있을까?

    아직 의학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정확한 진단도 쉽지 않다. ASD만 단독으로 있는 경우는 그래도 쉬운 편이지만 다른 질환과 함께 있을 때는 진단이 무척 까다롭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팀의 메타 연구(2014년)에 따르면 ASD로 진료받는 어린이의 37~85%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ASD 인구의 39%가 뇌전증을 동반하거나, 10~15%는 ‘취약X증후군’ ‘엥겔만증후군’ ‘결절성 경화증’ ‘15번 염색체 중복증후군’ 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경우가 ASD와 ADHD가 동반되었을 때다.

    ADHD의 증상은 워낙 눈에 잘 띄고 흔하다. 그러다보니 공존해 있는 더 심각한 발달 장애인 ASD 진단을 놓치는 사례도 종종 있다.

    ASD가 동반됐는데도 이를 모르고 ADHD를 치료약물을 복용하면 ADHD만 단독으로 있는 아이들에 비해 약물의 효능이 절반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경우 ASD가 있는 아이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자극 과민성이나 상동적 행동(특이한 행동에 집착하고 반복하는 것) 등이 악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ASD가 의심되면 반드시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ASD의 연령별, 발달단계별 징후들은 조금씩 다르다.  생후 24개월 전후 아이들은 ‘호명(이름 부르기) 반응’이나 눈 맞춤이 없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신호다.

    36개월 전후에는 말문은 트였다고 해도 억양이 매우 단조롭거나 특정 어구나 단어를 반복하는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상대방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상대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반향어’를 보이는 경우, 미니카와 같은 물건을 한 줄로 세우는데 집착하는 경우, 특정한 소리나 시각적 자극을 과도하게 추구하거나 회피하는 경우 등이 함께 나타나면 ASD를 의심해볼 수 있다.

    진료를 하다보면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구별되는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데도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봐 걱정하거나, 자폐 진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정확한 진단을 받고,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합병증을 예방하고 아이의 예후를 더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해 2월 동현(가명·6)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병원을 찾았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도 늦었다고 한다. 사설 언어치료실에서 언어치료를 받고 난 뒤 문장으로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이야기할 때도 상대방의 얼굴과 눈을 바로 보지 못했다. 긴 줄을 좋아해 전화선에 집착하고 외출할 때는 긴 끈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줄을 뺏으려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큰 괴성을 지르며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했다. 광고에 나오는 특정 멘트를 반복적으로 따라 하기 증상도 보였다. 동현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 레벨-2다.

    동현이는 일찍 진단을 받았고 언어치료 등의 특수교육적 접근을 통해 문장 구사 정도의 언어능력이 향상돼 행동 문제나 정서적 합병증 발생을 막을 수 있어 증상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치원생 또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아이가 또래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고 어울리지 못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관심사와 행동이 관찰되면 첨부한 ASD 선별측정 설문지를 집에서 작성해보자. 단, 섣불리 ASD라고 지레 짐작하고 당황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찾아나서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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