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안경 쓰니 물고기가 눈앞에… 마비 재활치료, 게임하듯 재밌었다

입력 2018.01.25 08:59

[VR 재활치료, 기자가 체험해보니]

미션 반복해 수행… 집중도 높아… 마비 환자 등 운동·인지 향상 효과
일상 속 다양한 상황도 적용 가능

22일, 뇌졸중 등으로 마비가 생긴 환자를 치료하는 VR(Virtual Reality·가상 현실) 재활치료를 체험하기 위해 분당차병원 재활의학센터 3층에 있는 성인작업치료실을 찾았다. 컴퓨터와 VR용 안경·컨트롤러 등의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VR용 안경을 착용하자, 사방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어느새 기자는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배를 타고 있었다.

◇팔 뻗어 물고기 잡고, 몇 마리 잡았는지 스스로 기억해야

의료진의 지시대로 손을 뻗어 허공에 떠 있는 '시작' 버튼을 누르고 몇 가지 설정을 하니,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주위로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헤엄쳐 다녔다. 의사는 "고개를 돌리면 시작하라는 표지판이 보일텐데, 응시하고 있으면 프로그램이 시작된다"고 했다. 표지판을 1~2초간 쳐다만 봤는데, 기기가 기자의 시선을 인식한 듯했다. 저절로 게임이 시작되면서 "물고기 다섯 마리를 잡으세요"라는 미션 알림이 떴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았다. 스스로 몇 마리를 잡았는지 기억했다가 미션 성공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물고기를 너무 열심히 잡다 보니 총 몇 마리를 잡았는지 헷갈렸다. 시작 표지판은 어느새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표지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곳을 다시 2초 정도 바라보자 '실패'를 알리는 문구가 떴다. 의사는 "다섯 마리보다 더 많이 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기일전하고, 물고기를 작살로 잡도록 설정한 뒤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오른손에 VR용 컨트롤러가 쥐어졌다. 물고기를 향하게 한 뒤 버튼을 누르자 작살이 날아가 물고기에 꽂혔다. 미션대로 일곱 마리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기자가 VR 재활치료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이다.
VR(가상 현실)은 의료계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를 시작으로, 재활의학과에선 마비 환자의 재활치료에도 접목해 쓰이고 있다. 사진은 기자가 VR 재활치료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게임처럼 재밌어서 집중도 높은 편"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김민영 교수는 "뇌졸중 등으로 마비가 온 환자는 몸을 틀고 팔을 뻗어 물고기를 잡는 단순한 동작도 어렵게 느낀다"며 "이런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면 팔을 뻗거나 손을 쥐었다 펴는 식의 운동 기능이 점차 향상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운동 기능뿐 아니라, 스스로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았는지를 세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인지 기능도 올라간다"며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미있어서 환자들의 집중도도 높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총 195명의 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한 35개의 연구를 메타분석했더니, VR 재활치료 후 손의 운동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VR을 활용한 치료는 치료 시간이 10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VR에 과몰입되거나 어지럼증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활치료에 활용할 길 무궁무진

VR 기술은 20년 전 미국에서 참전 군인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처음 개발됐다. 국내는 2005년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 도입한 후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재활의학과에서 VR 기술을 재활치료에 접목한 건 2~3년 전부터다. 국내 의료기관으로는 분당차병원과 가천대 길병원이 시행하고 있다. 분당차병원의 VR 프로그램이 바닷속을 배경으로 해 재미와 환상을 심어준다면 길병원은 일상생활공간을 배경으로 했다. 가천대 길병원 재활의학과 이주강 교수는 "마비 환자 재활 시 VR을 활용하면 치료실에서는 할 수 없는 횡단보도 건너기, 마트에서 장보기 같은 일상생활 훈련을 다양하게 시행할 수 있다"며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VR을 활용한 재활치료가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천대 길병원에서는 환자나 편측무시(시력엔 이상이 없는데 뇌가 손상돼 한쪽 시야의 사물을 못 보는 것) 환자가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재활치료에 VR을 접목해 시행하고 있다. 마비 환자가 걷기 훈련을 할 때 숲 속 산책길을 걷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VR 재활치료도 있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심리적인 안정감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주강 교수는 "환자들의 치료 순응도가 높아 치료 효과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뿐 아니라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을 돕는 인지행동치료에도 VR이 쓰일 것"이라며 "심지어 집에서 환자 스스로 이런 훈련을 어렵지 않게 시행할 날이 곧 올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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