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자라는 아이들]② 해외는 '학교 전체'를 신체활동 환경으로 바꿨다
스코틀랜드 '데일리 마일', 슬로베니아 '국가 차원 맞춤형 체육' 등 성과
韓, 체육 수업 시간은 적지 않지만 '단절'이 문제… 민원·안전 책임에 묶인 운동장
"경쟁적 스포츠보다 모든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힘 길러줘야"
대한민국 아이들의 시계는 학원 버스, 책상,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만 흐른다. 마음껏 뛰어놀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린 결과는 ‘세계에서 가장 안 움직이는 청소년’이라는 씁쓸한 성적표로 돌아왔다. 단순히 오래 사는 삶이 아닌, 질병 없이 사는 ‘건강수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헬스조선이 짚어본다.
아동·청소년의 신체활동 부족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청소년 10명 중 8명은 권고 수준의 신체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위기를 대하는 국가들의 접근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부 선진국은 학생의 운동을 '개인의 의지'에 미루지 않고,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학교 일과'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체육수업이나 일회성 프로그램을 넘어 학교 전체를 신체활동 친화적으로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운동을 학교 일과 안으로 끌어들인 나라들
WHO는 5~17세 아동·청소년에게 하루 평균 60분 이상의 중등도(제법 숨이 차는 정도) 이상 신체활동과 주 3일 이상의 근육·뼈 강화 활동을 권고한다. 문제는 이 기준을 주 2~3회 체육수업만으로 채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체육수업이 있어도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앉아서 보낸다면 하루 전체 활동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체육 수업을 넘어 학교생활 전반을 신체활동 친화적으로 탈바꿈하는 '포괄적 학교 신체활동 프로그램(CSPAP)'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양질의 체육 수업을 바탕으로 하되, 신체활동을 수업 전후, 쉬는 시간, 방과 후 활동은 물론 교직원 참여와 지역사회 연계까지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더 데일리 마일(The Daily Mile)'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2년 스털링의 한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수업 중 15분 동안 운동장이나 학교 주변을 각자의 속도에 맞춰 걷거나 뛰도록 한다. 특별한 장비나 환복이 필요 없고, 정해진 거리를 완주해야 하는 경쟁이나 성적 평가도 철저히 배제했다. 운동 능력이 뛰어난 소수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부담 없이 땀 흘리게 한 것이다. 효과는 명확했다. 영국 스털링대 연구팀 분석 결과, 데일리 마일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조군보다 하루 중·고강도 신체활동 시간이 약 9분 늘고, 앉아 있는 시간은 약 18분 줄었다. 20m 왕복 오래달리기 기록과 피부 두께 등 체력·신체구성 지표도 개선됐다.
현재 핀란드 기초교육 학교의 90% 이상이 참여 중인 'Schools on the Move(움직이는 학교)' 정책은 움직이는 수업, 활동적인 쉬는 시간 등 학교 여건에 맞춰 자율적으로 신체활동을 조합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쉬는 시간 활동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으며 스스로 움직이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아예 국가 단위로 체육 시간을 추가 배정하고, 의사와 교사가 체력 데이터를 공유해 맞춤형 관리에 나서는 등 촘촘한 체계를 갖췄다.
◇한국, 체육 시간 부족하지 않은데 왜 덜 움직일까
우리나라 교육 당국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저하된 학생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학생건강체력평가(PAPS) 대상을 초등 4학년까지 확대했고, 비만 학생과 희망 학생을 위한 '건강체력교실'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오는 2028학년도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에 주당 두 시간의 신체활동을 의무화하는 '건강생활' 과목도 신설된다.
문제는 정책이 실제 일상 속 움직임으로 이어지는가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정현우 교수는 "우리나라 초·중·고교에 편성된 체육 수업 시간은 국제적으로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체육 수업의 양이 아니라, 이것이 방과 후나 일상적인 신체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학교 기반 신체활동 생태계의 단절'에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체감도 비슷하다. 경남 부곡초등학교 학포분교장 이승우 교사는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기기에 몰두하거나 자리에만 앉아 있는 아이들이 많아 체력 저하가 확연히 느껴진다"며 "방과 후 학원 일정으로 인한 절대적인 시간 부족과,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디지털 매체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학교가 아이들을 더 움직이게 하려 해도 현실적 장벽은 크다. 기상 악화 때 전교생을 수용할 실내 체육 공간이 부족하고,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이 교사 개인에게 향하는 구조도 부담이다. 교육부 강경탁 체육예술교육팀장은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최근 일부 학교에서 안전사고 우려, 학부모 민원, 책임 소재 문제 등을 이유로 운동장 사용을 제한하는 사례가 있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승우 교사도 "자율 활동 중 학생이 넘어지거나 다칠 경우 교사에게 향하는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 부담이 실질적인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내 체육의 위축은 곧 소득·지역 격차에 따른 '건강 불평등'과 만성질환 노출로 이어진다.
소수 우수 학생 중심의 체육 문화가 주는 심리적 장벽도 크다. 운동에 소질 없는 대다수 학생이 소외감과 위축감을 느끼며 움직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A군은 "잘하는 친구들이 주도하는 종목은 눈치가 보이고, 괜히 팀에 피해를 줄까 봐 더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쟁보다 '움직일 수 있는 힘' 길러야
전문가들은 학교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현우 교수는 "경쟁 스포츠가 학교 체육의 중심이 되면 체력이 부족하거나 운동에 자신이 없는 학생은 실패와 비교를 반복하며 참여를 회피하게 된다"며 "단순한 운동 기능이 아니라 움직임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 기초적인 운동 역량을 뜻하는 '피지컬 리터러시(움직임 역량)'를 길러줘야 한다"고 했다. 체육의 목표가 '잘 하는 엘리트 육성'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던 학생이 스스로 땀 흘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장에서도 '생활 밀착형 체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승우 교사는 "특정 종목의 기능이나 경쟁을 강조하기보다 참여 자체와 어제보다 나아진 개인 기록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가벼운 학급 단위 협동 미션이나 점심시간 '운동장 두 바퀴 산책', 아침 시간 '교실 스트레칭'처럼 부담 없는 활동이 접근하기 좋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한국 학교 여건에 맞게 바꾸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교사는 "전교생 규모가 작은 학교부터 아침이나 점심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시도해 볼 수 있다"며 "디지털 기기와 연동해 학급 전체 누적 걸음 수로 보상을 받는 등 교사의 업무 부담은 줄이고 학생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자율적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은 새 정책을 계속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이미 운영 중인 체육 프로그램이 실제 학생들의 하루를 얼마나 바꾸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학교 체육 정책도 이제는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매일 작동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현우 교수는 "신체활동 부족은 학생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학교 전체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은 일부 학생의 취미가 아니라 모든 아이의 건강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운동을 학교 일과 안으로 끌어들인 나라들
WHO는 5~17세 아동·청소년에게 하루 평균 60분 이상의 중등도(제법 숨이 차는 정도) 이상 신체활동과 주 3일 이상의 근육·뼈 강화 활동을 권고한다. 문제는 이 기준을 주 2~3회 체육수업만으로 채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체육수업이 있어도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앉아서 보낸다면 하루 전체 활동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체육 수업을 넘어 학교생활 전반을 신체활동 친화적으로 탈바꿈하는 '포괄적 학교 신체활동 프로그램(CSPAP)'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양질의 체육 수업을 바탕으로 하되, 신체활동을 수업 전후, 쉬는 시간, 방과 후 활동은 물론 교직원 참여와 지역사회 연계까지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더 데일리 마일(The Daily Mile)'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2년 스털링의 한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수업 중 15분 동안 운동장이나 학교 주변을 각자의 속도에 맞춰 걷거나 뛰도록 한다. 특별한 장비나 환복이 필요 없고, 정해진 거리를 완주해야 하는 경쟁이나 성적 평가도 철저히 배제했다. 운동 능력이 뛰어난 소수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부담 없이 땀 흘리게 한 것이다. 효과는 명확했다. 영국 스털링대 연구팀 분석 결과, 데일리 마일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조군보다 하루 중·고강도 신체활동 시간이 약 9분 늘고, 앉아 있는 시간은 약 18분 줄었다. 20m 왕복 오래달리기 기록과 피부 두께 등 체력·신체구성 지표도 개선됐다.
현재 핀란드 기초교육 학교의 90% 이상이 참여 중인 'Schools on the Move(움직이는 학교)' 정책은 움직이는 수업, 활동적인 쉬는 시간 등 학교 여건에 맞춰 자율적으로 신체활동을 조합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쉬는 시간 활동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으며 스스로 움직이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아예 국가 단위로 체육 시간을 추가 배정하고, 의사와 교사가 체력 데이터를 공유해 맞춤형 관리에 나서는 등 촘촘한 체계를 갖췄다.
◇한국, 체육 시간 부족하지 않은데 왜 덜 움직일까
우리나라 교육 당국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저하된 학생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학생건강체력평가(PAPS) 대상을 초등 4학년까지 확대했고, 비만 학생과 희망 학생을 위한 '건강체력교실'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오는 2028학년도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에 주당 두 시간의 신체활동을 의무화하는 '건강생활' 과목도 신설된다.
문제는 정책이 실제 일상 속 움직임으로 이어지는가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정현우 교수는 "우리나라 초·중·고교에 편성된 체육 수업 시간은 국제적으로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체육 수업의 양이 아니라, 이것이 방과 후나 일상적인 신체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학교 기반 신체활동 생태계의 단절'에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체감도 비슷하다. 경남 부곡초등학교 학포분교장 이승우 교사는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기기에 몰두하거나 자리에만 앉아 있는 아이들이 많아 체력 저하가 확연히 느껴진다"며 "방과 후 학원 일정으로 인한 절대적인 시간 부족과,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디지털 매체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학교가 아이들을 더 움직이게 하려 해도 현실적 장벽은 크다. 기상 악화 때 전교생을 수용할 실내 체육 공간이 부족하고,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이 교사 개인에게 향하는 구조도 부담이다. 교육부 강경탁 체육예술교육팀장은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최근 일부 학교에서 안전사고 우려, 학부모 민원, 책임 소재 문제 등을 이유로 운동장 사용을 제한하는 사례가 있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승우 교사도 "자율 활동 중 학생이 넘어지거나 다칠 경우 교사에게 향하는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 부담이 실질적인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내 체육의 위축은 곧 소득·지역 격차에 따른 '건강 불평등'과 만성질환 노출로 이어진다.
소수 우수 학생 중심의 체육 문화가 주는 심리적 장벽도 크다. 운동에 소질 없는 대다수 학생이 소외감과 위축감을 느끼며 움직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A군은 "잘하는 친구들이 주도하는 종목은 눈치가 보이고, 괜히 팀에 피해를 줄까 봐 더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쟁보다 '움직일 수 있는 힘' 길러야
전문가들은 학교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현우 교수는 "경쟁 스포츠가 학교 체육의 중심이 되면 체력이 부족하거나 운동에 자신이 없는 학생은 실패와 비교를 반복하며 참여를 회피하게 된다"며 "단순한 운동 기능이 아니라 움직임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 기초적인 운동 역량을 뜻하는 '피지컬 리터러시(움직임 역량)'를 길러줘야 한다"고 했다. 체육의 목표가 '잘 하는 엘리트 육성'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던 학생이 스스로 땀 흘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장에서도 '생활 밀착형 체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승우 교사는 "특정 종목의 기능이나 경쟁을 강조하기보다 참여 자체와 어제보다 나아진 개인 기록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가벼운 학급 단위 협동 미션이나 점심시간 '운동장 두 바퀴 산책', 아침 시간 '교실 스트레칭'처럼 부담 없는 활동이 접근하기 좋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한국 학교 여건에 맞게 바꾸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교사는 "전교생 규모가 작은 학교부터 아침이나 점심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시도해 볼 수 있다"며 "디지털 기기와 연동해 학급 전체 누적 걸음 수로 보상을 받는 등 교사의 업무 부담은 줄이고 학생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자율적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은 새 정책을 계속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이미 운영 중인 체육 프로그램이 실제 학생들의 하루를 얼마나 바꾸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학교 체육 정책도 이제는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매일 작동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현우 교수는 "신체활동 부족은 학생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학교 전체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은 일부 학생의 취미가 아니라 모든 아이의 건강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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