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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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는 있지만 이를 험담이나 공격으로 풀어내서는 안 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외래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의외로 큰 잘못보다 마음속에 스쳐 간 작고 치사한 감정을 더 부끄러워할 때가 있다. 남의 성공이 불편했던 마음, 가까운 사람이 칭찬받을 때 속으로 질투했던 마음, 경쟁자가 넘어졌을 때 잠깐 안도했던 마음 같은 것들이다. 이런 마음이 들면 곧바로 스스로를 비난하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속이 좁고 치사할까?”
“좋은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마음은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질투할 수 있고 축하하면서도 부러울 수 있으며 도와주면서도 손해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음속에 유치하고 치사한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곧바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다루느냐이다.

친구의 승진, 동료의 수상, 지인의 좋은 집과 좋은 차가 괜히 불편하고 내 마음을 건드린다. 악의라기보다 사회적 비교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가까운 사람의 성취는 마치 거울처럼 내 부족함을 비춘다. 상대의 성취를 축하하기 전에, ‘나는 왜 아직 여기 있지?’라는 패배감이 먼저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마음은 상처받은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상대의 성취를 “별것 아니야”라고 치부해버리거나 “저 사람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면 내 마음이 잠시나마 덜 아프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부러움과 불편함을 인정하기 어려워 “저 사람은 너무 잘난 척해”라고 상대의 문제로 생각하기도 한다.

SNS를 볼 때도 비슷하다. 누군가의 행복한 장면을 보면서 그저 부럽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종종 비난이 수반되기도 한다. “행복한 척하는 거겠지”, “저렇게까지 과시해야 하나”라는 생각은 상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라기보다 내 마음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상대 깎아내리기일 수 있다.

경쟁자가 실패했을 때 안도하는 마음도 있다. 겉으로는 안타깝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올라올 수 있다. 도덕적으로 자랑할 만한 마음은 아니지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세상이 좁은 자리싸움처럼 느껴질 때 타인의 실패가 내 위협을 줄여주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마음은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그 생각을 밀어낸다.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어 가라앉히는 것을 억압이라고 한다. 아예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은 부인에 가깝다. 때로는 반대로 지나치게 안타까운 척하거나 과하게 위로하기도 한다.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과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반동형성을 보이는 것이다.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도 치사한 마음은 자주 생긴다. “나는 이만큼이나 챙겨줬는데 저 사람은 왜 나한테 이렇게 무심하지?”, “내가 더 많이 연락하고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참는 것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꼭 계산적이어서만은 아니다. 관계에서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고 공정하게 대우받고 싶어 한다. 수고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당연히 서운함과 분노가 쌓인다.

특히 평소에 괜찮다고 말하며 참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으로는 더 서운할 수 있다. 직접 화를 내지 못하다 보니 차갑게 대하거나, 연락을 줄이거나, 심한 경우 빈정거리는 방식으로 쌓인 감정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를 수동공격성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마음이 뒤늦게 다른 방식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칭찬할 때도 유치한 마음이 올라온다. “옆에 있는 나는 왜 좋게 봐주지 않지?”,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가?” 어른이지만 마음은 잠시 아이처럼 변한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치하고 치사한 마음의 밑바닥에는 더 깊은 마음이 숨어 있다. 질투 밑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고 비난 밑에는 부러움이 있다. 계산하는 마음 밑에는 공정하게 대우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서운함 밑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치사한 마음을 무조건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마음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서 상처받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다만, 마음과 행동은 구분해야 한다. 남의 성공이 배 아픈 것은 인간적인 마음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사람을 깎아내리고 방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괜찮지만 험담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은 관계를 해친다.

성숙한 사람은 치사한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 ‘내가 지금 부러웠구나’, ‘내가 인정받고 싶었구나’, ‘내가 요즘 지쳐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조금 덜 해로운 방식으로 다루려 애쓰는 사람이다. 우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내가 지금 저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부러운 거구나.”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붙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덜 거칠어진다. 

마음속에 작고 유치한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너무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원하고 상처받고 비교하고 흔들리는 인간이라는 증거다. 치사한 마음도 내 마음이다.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나를 이해하는 단서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