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닌데 왜?”… 뇌전증 환자 뇌에서 퇴행성 변화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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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의 생체 뇌 타우 단백질 PET 영상 비교./사진=서울대병원 제공
치매 진단이나 기억력 저하가 없는 뇌전증 환자의 뇌에서도 신경퇴행성 질환의 핵심 단백질인 ‘타우(tau)’가 정상인보다 많이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뇌전증이 단순히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을 넘어 뇌의 퇴행성 변화와 전신 노화와도 연관될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타우는 정상적으로는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단백질이지만, 비정상적으로 응집하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신경섬유 매듭’을 형성해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의 주요 병리로 알려져 있다. 다만 타우와 뇌전증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상건·주건 교수, 핵의학과 최홍윤 교수 연구팀(제1저자 홍상빈 임상강사, 공동저자 신용원 교수)은 치매 진단이나 주관적 기억력 저하가 없는 뇌전증 환자 75명과 건강한 대조군 47명을 대상으로 타우 PET, 아밀로이드 PET, 혈액 단백체 분석을 시행했다.

분석 결과, 뇌전증 환자는 대뇌 피질 전반에서 타우 PET 신호가 건강한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혈액검사에서도 타우 병리와 관련된 인산화 타우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한 비율은 뇌전증 환자에서 24%로, 대조군(5%)보다 약 5배 높았다.

반면, 알츠하이머병의 또 다른 핵심 병리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두 집단 간 차이가 없었다. 타우 축적 양상 역시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달라, 이번 변화는 알츠하이머병과는 별개의 뇌전증 관련 병리 현상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타우 축적은 질환이 심할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뇌 여러 부위에서 비정상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 다초점 뇌전증모양 방전 환자에서 타우 신호가 가장 높았고, 청소년기부터 발작이 지속됐거나 뇌파가 느린 환자에서도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한 한쪽 뇌에서 발작이 시작되는 환자는 해당 부위에 타우가 집중됐으며, 뇌염 이후 발생한 뇌전증 환자에서는 타우 축적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뇌전증이 전신 노화와도 연관될 가능성도 확인했다. 혈액 단백체 분석을 통해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한 결과, 뇌전증 환자는 뇌뿐 아니라 신장, 근육, 췌장 등에서도 노화가 가속된 양상을 보였으며, 이러한 변화는 뇌의 타우 신호와 연관성을 나타냈다. 특히 타우 신호가 높을수록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과 산화 스트레스 관련 단백질은 증가했고, 뇌의 면역·청소 기능을 담당하는 소교세포 관련 단백질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상건 교수는 “치매 증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에서 타우 관련 PET 신호가 예상보다 뚜렷하게 나타난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타우 PET이 향후 뇌전증 환자의 치매 위험과 뇌 퇴행성 변화를 평가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뇌전증 환자가 곧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Brain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