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려고 들어간 곳인데’… 당신을 가두는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마음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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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지금의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힘들 때는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게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처음에는 내가 선택했지만, 나중에는 그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알코올 중독자의 고백이다. 하루를 마치고 스트레스도 풀 겸 술 한 잔 마시는 일은 흔하다. 술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람 사이의 어색함을 줄여주며 잠시나마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술이 선택이 아니라 ‘필요’처럼 느껴질 때 시작된다.

외래에서 만나는 다른 환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정말 힘든 날에만 술을 마셨습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 술을 마시면 잠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특별히 힘든 일이 없어도 퇴근길만 되면 술 생각이 났습니다. 마시고 나면 후회하고 내일은 안 마셔야지 다짐해도 며칠 지나면 또 반복됐습니다. 나중에는 ‘나는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까지 들고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습니다.”

게임 중독도 다르지 않다. “게임을 켤 때는 잠깐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판이 두 판이 되고 결국엔 새벽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끄게 됩니다. 화면이 꺼진 뒤에는 재미보다 공허함이 더 크게 남습니다.“

중독은 단순히 즐거움을 찾는 행동만은 아니다. 물론 즐거움도 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즐거움 이상의 기능, 우울, 분노, 허무감 같은 감정을 잠시 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중독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지금의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술은 오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삶에 존재했다. 잠시나마 정서적 고통을 잊게 해주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때로는 의례와 축제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술이 조절되지 않을 때이다. 술로 인해 감정 표현이 과해지고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게임, 쇼핑, 도박, 성적 행동, 스마트폰 사용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중독 양상은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즉각적인 보상을 주고 불편한 감정을 잠시 끊어주며 문제 행동을 반복시켜 결국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약화시킨다.

정신역동적으로 보면, 중독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잠시 피하려는 방식일 때가 많다. 외로움, 불안, 수치심 같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조절하기보다 술이나 게임을 통해 즉시 다른 상태로 이동하려 한다. 이런 회피가 반복되면 감정을 견디고 표현하는 능력은 약해지고 결국 더 큰 공허와 불안이 남는다.

뇌도 차츰 고통을 빠르게 피하는 길에 익숙해진다. 술, 게임, 도박 같은 행동은 도파민을 통해 뇌의 보상체계를 자극해 즉각적인 쾌감이나 해소감을 준다. 뇌는 이 빠른 보상을 기억하고 스트레스나 불편한 감정이 생길 때마다 같은 행동을 다시 찾게 된다. 반복될수록 갈망은 강해지고 스스로 조절하는 힘은 약해진다.

중독 피해는 개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알코올 문제는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반복되는 약속과 실망, 폭언과 갈등, 경제적 문제, 건강 악화가 함께 따라온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도와주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노와 좌절, 그리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중독은 한 사람의 병이지만 그 고통은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흔들어 놓는다.

중독 치료는 단순히 참는 훈련이 아니다. 의지만으로 시작한 변화는 오래가기 어렵고 반대로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치료도 지속되기 어렵다. 중독 치료는 반복이 시작되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유혹이 쉬운 환경을 줄이며 술이나 게임이 대신하던 기능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집에 술을 두지 않기, 술자리 피하기, 앱과 결제 수단 차단하기, 충동이 올라올 때 10분만 다른 행동 해보기 같은 작은 전략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치료자, 가족, 자조모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반복되더라도 그것을 실패로만 여기지 말고 반복이 시작된 지점을 찾아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것이 회복의 일부다. 가족 역시 혼자 감당하려 하기보다 힘들 때는 함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독은 나약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중독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탈출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잠시 쉬기 위해 들어간 문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문이 닫혀버릴 수 있다. 중독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해결되기 어렵지만 반복의 구조를 이해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