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어려운 간암 환자, ‘테라스피어’가 치료 선택지 넓혔다

입력 2026/06/11 09:16

[헬스테크 생생 후기]

<편집자주>
무엇이든 ‘장비 빨’이 중요한 요즘. 질병 진단과 치료 그리고 관리에도 ‘장비’는 필수입니다. 이러한 추세 속에 디지털의료기기·전자약을 비롯한 다양한 의료기기가 속속들이 개발되는 중입니다. 기기명을 검색하면 개발자가 전하는 개발 일기부터 기대 효능, 투자받은 금액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딱 하나, ‘실사용기’만 빼고요. 이에 [헬스테크 생생 후기]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직접 들은 ‘체감 효과’를 전해드립니다. 기기의 원리, 관련 제도, 질병 치료에 대한 조언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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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환자의 경동맥방사선색전술​에 대해 설명하는 이화의료원 영상의학과 현동호 교수​/사진=헬스조선DB
간암 환자 가운데에는 간 기능이 충분하지 않거나 종양의 위치와 범위 때문에 수술적 절제가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종양을 절제한 후에도 간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만큼은 간 조직이 남아야 하는데, 종양 크기나 위치상 수술하면 간이 충분히 남지 않는 때가 대표적이다. 다행히 의료기기 발전으로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있다. 수술이 어려운 간암 환자들은 다양한 비수술적 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종양으로 향하는 혈관에 치료 물질을 주입해 종양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색전술이 그중 하나다. 색전술은 크게 항암제를 이용하는 ‘경동맥화학색전술’과 방사선동위원소를 포함한 미세입자를 이용해 시행하는 ‘경동맥방사선색전술’로 나뉜다.

이중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은 방사선 미립구 의료기기인 보스톤사이언티픽 ‘테라스피어’가 2020년 12월자로 건강보험 선별 급여가 적용되기 시작하며 시행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연간 시술 건수는 약 1000건에 근접했다. 이 시술은 환자와 의사 각자에게 어떤 이점이 있을까? 국내에서 테라스피어를 활용한 간암 방사선 색전술을 가장 활발히 시행하는 의료진 중 한 명인, 이화의료원 영상의학과 현동호 교수를 찾아가봤다.

◇‘모의 치료’ 필요하지만, 수술 후 불편함은 적어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미립구를 종양에 이어진 혈관으로 전달한 뒤, 방사선으로 종양 세포의 DNA를 손상시켜 증식을 막음으로써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테라스피어의 경우 방사선 동위원소인 이트륨(Yttrium-90)을 담고 있다. 항암제를 투여하고, 종양으로 향하는 혈관을 일시적으로 막아 암세포를 죽이는 경동맥화학색전술(TACE)과 달리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은 혈관을 막지 않는다. 종양 혈관으로는 손목의 요골동맥이나 사타구니의 대퇴동맥으로 카테터를 집어넣어 접근한다. 부분마취 하에 의식이 있는 상태로 시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술을 시행하는 동안 혈관 조영 영상을 통해 목표 혈관을 정확히 확인하려면, 환자가 의료진 지시에 따라 반복적으로 숨을 참아야 해서다.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은 본 치료에 앞서 안전성을 평가하는 ‘모의 치료’가 필요하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아니지만, 체내에 들어가면 이와 비슷하게 퍼지는 물질을 이용해 수행하는 일종의 ‘치료 시뮬레이션’이다. 간암이 진행되면 혈관과 혈관 사이에 단락(본래의 혈류 경로를 벗어난 통로)이 생길 수 있다. 간 종양에 주입한 일부 방사선 동위원소 입자가 단락을 통해 폐로 새어나갈 가능성이 있는데, 종양이 클수록 이러한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동호 교수는 “모의 치료를 통해 방사성 물질이 종양에 제대로 전달되고, 정상 조직이나 폐로 과도하게 이동하지는 않는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며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 가능 여부와 적정 방사선 용량을 결정한다”고 했다.

모의 시술이 번거로울 수는 있어도, 본 시술 이후 환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적은 편이다. 현동호 교수는 “종양만 선택적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혈관 구조가 시술에 적합한 환자라면 정상 간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경동맥화학색전술은 항암제를 사용하면서 혈관을 막기 때문에 통증, 발열, 오심, 구토 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은 이러한 증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편이다. 시술을 받은 후 현 교수에게 “치료가 정말 끝난 것이 맞느냐”고 물을 정도로 이상 증상이 거의 없는 환자도 있었다.

다만, 사용한 방사선량이 많은 경우에는 방사선에 따른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작은 종양이라도 완치 목적으로 고강도로 치료하는 경우 시술 중이나 후에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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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사이언티픽 ‘테라스피어’​/사진=보스톤사이언티픽 제공
◇초기 간암 환자에게 적합할 가능성 커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은 간암 수술이 어렵거나 환자가 수술을 원하지 않는 경우, 또는 다른 국소 치료의 적용이 어려운 경우에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선택지다. 현 교수는 간 중심부 미상엽에 지름 약 5cm의 종양이 있었던 환자에게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을 시행한 적 있다. 해당 환자는 몸이 수술을 견디기 어려운 상태였고, 미상엽은 주요 혈관이 집중된 부위라 종양소작술(종양세포를 태우거나 얼려서 죽이는 비침습적 치료법)도 여의치 않았다. 이에 다학제 진료와 모의 시술 후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을 시행하기로 판단했고, 한 차례 치료만으로 종양이 영상 검사상 완전히 소실됐다. 환자에게 큰 부작용이나 불편함도 없었다. 지름 4cm의 종양을 수술로 제거할 계획이었지만, 의사가 수술실에서 확인한 간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나빠 손대지 못한 채로 수술실을 나온 여성 환자도 있었다. 이 환자 역시 경동맥방사선색전술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돼 현 교수에게 시술받았으며, 이후 해당 종양은 완전히 소실됐다.

초기 간암 환자 중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이 적합한 사람은 이 시술을 통해 ‘간편한 완치’를 기대해볼 수 있다. 현 교수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간세포암 환자에서의 이트륨-90 치료 유효성 평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우 초기 또는 초기 한국인 간암 환자 154명을 최대 29개월까지 추적 관찰했더니 치료 반응률이 97.9%로 확인됐다. 그 중 표적 종양이 모두 제거된 환자 비율은 87.6%, 표적 병변이 30% 이상 감소한 환자의 비율은 10.3%였다. 연구 대상 환자들의 종양 크기 중앙값은 3.95cm였다. ▲3cm 미만인 환자 31.1% ▲3~5cm인 환자 42.8% ▲5~8cm인 환자 25.9%로 구성됐다.

다만, 같은 크기의 종양이라도 환자에 따라 경동맥방사선색전술 적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간 주변부에 있는 종양은 상대적으로 혈관 구조가 단순해 경동맥방사선색전술 치료가 쉬운 경우가 많다. 반면, 간 중심부에 있는 종양은 혈관과 담관 등 중요한 구조물이 밀집해 있어 치료가 더 까다롭다. 이에 경동맥방사선색전술 시행 가능성은 ▲종양 크기 ▲종양 위치 ▲혈관 구조 ▲문맥 침범 여부 ▲간 기능 ▲환자의 전신 상태 ▲다른 치료법의 적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현동호 교수는 “같은 간암이라도 종양의 크기와 위치, 간 기능, 혈관 구조 등에 따라 경동맥방사선색전술 치료 효과와 안전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경험이 많은 의료진은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비교적 빠르게 선별할 수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경우에는 치료 가능성과 안전성을 과대평가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수술 완전 대체는 아냐… 치료 선택지 생긴 것
시행 가능한 의료기관은 제한적이다. 방사성 미립구 의료기기를 이용한 시술이다 보니 관련 법령에 따른 시설과 안전 관리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시행을 위해 필요한 허가 절차도 완료해야 한다. 이에 현재는 일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현동호 교수가 몸담고 있는 이화의료원의 경우, 이대서울병원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이대목동병원은 현재 관련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다. 아울러 초기 간암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수술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의 강력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같은 조건의 환자군을 무작위로 나누어 수술과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의 결과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생존율·재발률·​​안전성 등을 평가하는 ‘무작위 배정 비교 임상시험’ 결과가 필요한데, 아직 이 수준의 연구까지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모든 시술과 수술이 그러하듯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이 ‘만능’이 아님은 환자도 유념해야 한다.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을 시행해볼 수 있다는 말이, 치료 효과가 반드시 좋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현동호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종양이 크더라도 폐 단락이 적고 정상 간 조직에 가는 영향이 적다면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을 시도해볼 수 있다”며 “그러나 시술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치료 효과가 환자와 보호자의 기대만큼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5cm 이하의 종양에서 경동맥방사선색전술 치료 효과가 가장 좋다고 본다. 실제 임상에서는 8cm를 초과한 종양에도 방사선색전술 치료를 시도해보기는 한다. 다만, 종양 크기가 커질수록 치료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과거 국내에서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이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는 15~20cm 이상의 매우 큰 종양에도 치료를 시도한 사례가 있었지만, 임상 경험이 축적되면서 종양이 지나치게 큰 경우에는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현동호 교수는 “환자의 간 기능, 종양 위치, 혈관 구조, 폐 단락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방사선색전술을 통한 이득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면 종양이 커도 치료를 시도해보기도 한다”며 “경동맥방사선색전술을 시행한 후 수술, 전신 항암치료, 국소 치료 등을 추가로 병행하는 치료 전략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