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얼굴 못 봤는데 충치 치료 끝? 환자 불안 커지는 치과 ‘위임진료’

입력 2026.05.11 11:30

치과위생사 업무 범위 두고 환자 '혼돈'
법원 "지시했어도 치료 행위는 무면허" 엄격 판결
수익 극대화·거절 힘든 고용 구조… 환자 안전 위협

치과 시술 도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클립아트코리아
50대 여성 A씨는 최근 충치를 제거한 뒤 레진·금·세라믹 등으로 빈 공간을 메우는 '인레이' 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빠르게 진행됐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대부분의 처치를 치과위생사가 진행했기 때문이다. 보철물을 끼우고 맞추는 과정도 치과위생사가 맡았다. 시술 내내 치과의사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이상함을 느낀 A씨가 묻자 "원장님이 마지막에 확인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A씨는 "얼굴이 가려진 상태라 정말 원장이 왔었는지도 모르겠고, 치과위생사 다 하는 게 법적으로 맞는 건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와 비슷한 경험담이 쏟아진다. 환자들은 "이거 치과위생사가 하는 업무 맞느냐"며 불안해하고, 치과위생사들조차 "원장이 시키는 업무가 불법인지 헷갈린다"며 고충을 호소한다. 환자는 불안해하고, 치과위생사 역시 자신의 업무 범위를 혼란스러워하는 '혼돈의 진료'가 이어지고 있다.

◇지시하면 다 된다? 법이 정한 업무 범위의 경계
현행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치과위생사는 '치과의사의 지도 하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법적으로 허용된 업무는 ▲교정용 와이어 장착·제거 ▲불소 도포 ▲구내 방사선 촬영 ▲임시 충전 ▲임시 부착물 장착·제거 ▲치석 제거(스케일링) ▲치아 본뜨기 등이다. 즉, 치아 및 구강질환의 '예방'과 '위생 관리' 영역이 핵심이다.

마취 주사, 충치 제거(치아 삭제), 영구 보철물 부착·조정, 발치 등은 치과의사만 할 수 있는 치료행위로 분류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같은 치료행위까지 치과위생사에게 맡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선 이지원 변호사는 "치과위생사 업무는 예방과 위생 관리 영역으로 제한된다"며 "이를 벗어나는 치료행위는 치과의사의 지도·감독 아래 이뤄졌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충치 치료 과정의 에칭·본딩 시술, 치아보철물 임시 접착, 구강보철물 수리·가공 등을 치과위생사나 치과기공사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단순히 치과의사가 사전에 지시했거나 마지막에 확인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지도 하의 업무'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지원 변호사는 "판례는 '치과의사의 지도'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한다"며 "의사가 단순히 구두 지시를 내렸거나 사후에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의사가 주체가 되어 진료하고 위생사는 보조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했다.

◇"안 하면 일 못하는 사람 취급" 사라지지 않는 위임 진료
그렇다면 이런 위임 진료 논란은 왜 반복되는 걸까. 현장에서는 인력 구조와 수익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치과의사 B씨는 "치과에서는 위임 진료는 드물지 않다"며 "숙련된 치과위생사에게 높은 급여를 주는 대신, 치과의사의 업무 일부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치과위생사들의 고충도 크다. 치과위생사 C씨는 "이직한 병원에서 인레이 세팅을 거부했더니 '일 못 하는 사람' 취급받았다"며 "고용 관계에서 원장의 지시를 거절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치과위생사 D씨는 "위임 진료라는 걸 알아도 비슷하게 운영하는 병원이 많아 문제 제기하기 쉽지 않다"며 "우리가 하지 않으면 간호조무사를 뽑아 대신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간호조무사는 원칙적으로 진료 보조나 기구 소독 등의 업무를 맡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스케일링이나 방사선 촬영까지 맡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료 질 저하·법적 책임까지… 환자 안전은 누가 지키나
위임 진료는 단순히 법을 어기는 문제를 넘어 환자의 건강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전문 지식과 면허 범위를 벗어난 시술이 이뤄질 경우 신경 손상, 보철물 탈락, 교합 이상, 감염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둘러싼 법적 분쟁도 이어질 수 있다.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는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모두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지원 변호사는 "실무적으로는 의료기관 운영자인 치과의사에게 더 무거운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치과의사에게는 수백만 원대 벌금과 자격정지 처분이, 직접 시술한 치과위생사에게도 벌금형과 자격정지 처분이 함께 내려지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환자는 자신의 치료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작용과 법적 분쟁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치과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자는 누가 시술하는지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물어야
결국 환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마취, 치아 삭제, 최종 보철물 장착 등 치료 핵심 단계에서는 치과의사가 직접 시행하는지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시술 주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의료인 명찰 확인도 필수적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환자가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의 의료진이 마스크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고, 진료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가 누가 어떤 처치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현재 '의료법위반신고센터'를 통해 불법 위임 진료와 과잉 진료 등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으며, 악질적인 사례는 직접 고발 조치하고 있다. 치과계 내부에서도 일부 병원의 과도한 위임 진료가 전체 치과계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대한치과위생사협회는 현행 업무 범위 규정이 실제 임상 현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현장에서는 일부 치과위생사들이 면허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요구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업무 범위 기준을 보다 구체화하고, 불법 위임 진료에 대한 당국의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강화되어야 치과계 전체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