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어쩌나” 발달장애 자녀 걱정… ‘후견 제도’ 아시나요? [조금 느린 세계]

입력 2026.05.11 07:31
마주앉은 여성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내가 죽은 후, 우리 자녀는 어떻게 살아가지?”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한 번쯤하는 고민이다. 이러한 부모를 위해 현재 후견제도가 마련돼있다. 치매, 뇌 손상 장애,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의 이유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성인이 존엄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법원의 결정 또는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 보호, 의료 행위, 거주지 결정 등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제도다.

인권 강사로 활동하는 김현숙(61·서울 노원구)씨는 5년여 전 지적장애 1급(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기준) 딸의 후견인이 되었다. 취지는 좋은 제도지만, 제대로 이용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의사 결정 돕는 후견 제도
현행 후견제도하에서는 ▲피후견인의 자녀·배우자·부모·형제자매 등 친족(친족후견인) ▲변호사 법무사·사회복지사·세무사 등 전문가(전문가후견인) ▲후견인 교육을 받은 일반 시민(공공후견인)을 후견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이중 김현숙씨가 택한 것은 ‘친족후견인’이다.

그는 “처음 후견인 신청을 할 당시 딸이 의사소통과 충동 조절이 거의 되지 않았다”며 “함께 은행에 가도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버리는 등 업무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워서 후견인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후견인이나 공공후견인을 선임하지 않고 직접 후견인으로 나선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딸을 맡기는 것이 우려돼서였다. 제3자를 후견인으로 지정하고 나면 정작 주 보호자인 자신이 자녀의 일에 개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친족후견인으로서 한정후견을 통해 딸의 금융·의료 영역에서의 의사결정을 직접 대리하게 됐다. 한정후견은 후견의 한 유형으로, 가정법원이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행위의 범위를 정한다. 그 범위 안에서만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할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한 ‘후견 증명서’, 발급 어려워
그러나 그는 더이상 딸의 친족후견인이 아니다. 후견인으로 있는 동안에도 이 제도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김현숙씨는 “업무를 대리하러 갈 때마다 지참해야 하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는 온라인이나 지역 동사무소·구청을 통해서는 발급이 불가능하다”며 “3개월에 한 번씩은 발급받아야 하는데 가정법원에 직접 가는 수밖에 없어서, 법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실질적으로 발급이 어려웠다”고 했다. 후견등기사항증명서는 후견인 자신이 후견인임을 증명하는 서류다. 관공서·은행 등에서 대리권을 행사할 때 이 서류를 제시함으로써 대리권을 증명한다. 서류 자체에는 법률적 유효기간이 별도로 없다. 그러나 은행 등 기관에서는 관행상 3개월 이내에 발급된 것을 요청하고 있다. 김씨 역시 “발급받은 지 3개월이 지난 증명서를 들고 가면 기관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발급 가능한 기관이 적은 것이 후견인 활동의 발목을 잡는 실정이다. 법원 전자후견등기시스템에서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법원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전국 가정법원과 가정법원지원에서 발급받아야 하지만, 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은 해당 지역 지방법원이나 지방법원지원에서도 가능하다. 2026년 5월 8일 기준 전국 총 53개의 가정법원·가정법원지원·지방법원·지방법원지원에서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김현숙씨가 거주하는 서울의 경우 발급 가능한 기관이 서울가정법원 1곳뿐이다. 세종은 0곳이다. 이외 지역은 ▲인천 1곳 ▲경기 10곳 ▲강원 5곳 ▲충북 4곳 ▲충남 5곳 ▲대전 1곳 ▲경북 7곳 ▲경남 6곳 ▲대구 1곳 ▲울산 1곳 ▲부산 1곳 ▲전북 4곳 ▲전남 4곳 ▲광주 1곳 ▲제주 1곳에서 발급이 가능하다.

◇절차 간소화하고 인지도 높여야
후견인의 업무를 원활하게 만들려면 서류 발급 절차라도 간소화해야 한다. 김씨는 “전자정부시스템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현재 ‘후견인이 없음’을 증명하는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는 법원 전자후견등기시스템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다. 기관에서 활용하는 관행적 유효기간인 ‘3개월’을 손봐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성년후견제도 운영 개선 방안 모색’ 연구보고서에서도는 “금융거래 시 후견등기사항 증명서 유효기간에 대한 절차적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지도도 높여야 한다. 김현숙씨는 “발달장애인 보호자들 중에서도 후견인 제도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나는 인권 강사라 후견 제도 관련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다수의 발달장애인 보호자는 후견인 제도가 존재함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송승연 교수는 “발달장애인 공공후견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동시에, 발달장애인 공공후견 제도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할 수 있다”며 “발달장애 당사자, 가족, 공무원, 복지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공공후견 제도를 보다 적극 홍보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후견인과 피후견인 모두 지금은 적은 실정이다. 중앙발달장애인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발달장애인 피후견인은 1545명, 후견인은 1760명이었다. 같은 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집계된 전국 발달장애인 수는 27만 7088명이었다.

◇‘자립지원정책’도 마련을
물론 후견인 제도만 강화하는 것으로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에 충분하지 않다. 후견인에게 발달장애인의 모든 것을 맡기게 해서는 오히려 이들의 의사결정권이 침해당할 위험이 있다. 김현숙씨는 과거에 딸과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한꺼번에 잃어버려 재발급을 위해 동사무소에 방문했을 때 이를 경험했다.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위해서는 재발급 의지부터 밝혀야 한다. 김현숙씨는 발급에 문제가 없었지만, 그의 딸은 달랐다. 동사무소 직원이 재발급 의사를 딸에게 물어보지조차 않고 후견인을 데리고 오라는 말로만 갈음한 것이다. 당시 김현숙씨는 자신이 후견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항의하니 직원은 그제야 딸에게 “재발급하실 거예요?”라고 물었지만, 그의 딸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었다.

김현숙씨는 “발달장애인은 ‘재발급’이라는 어려운 용어 대신 쉬운 말이나 그림 몸짓 같은 비언어적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며 “관공서 같은 곳에서 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서 무조건 ‘후견인을 데리고 오라’고만 얘기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송승연 교수는 “후견제도는 잘못 운영되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을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제한할 위험도 있으므로 공공후견 이용률을 높이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발달장애인 후견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만 적절한 의사결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김씨의 딸은 기상 직후 복지관에 갔다가 오후 4시 반쯤 귀가한다. 남은 시간은 집에서 보낸다. 김씨는 부모 사후 딸이 자립해서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 정책을 요구하는 집회에 종종 나간다. 현재 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생활을 24시간 돌보아주는 ‘24시간 개별 1대 1 지원서비스’ 제도를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서비스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다. 체육·요리·예술·야외활동 등 여가뿐 아니라 씻기·​식사하기·​잠자기 등 일상생활과 집 정리 등 가사활동을 돕는 돌봄 전문 인력을 24시간 지원하는 제도다. 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되면 전담 돌봄 인력을 1대 1로 배치받을 수 있다. 다만, 모든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이용하지는 못한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이용자는 전국 648명이었다. 김씨는 “딸이 밤이나 새벽에 자지 않고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밖으로 나가기도 해, 부모가 더는 세상에 없을 때에 자립하려면 밤에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24시간 지원을 받거나 장애인지원주택에 입소하지는 못하고 월 150시간 정도의 활동 지원을 받는데, 이대로라면 밤에 돌봄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송승연 교수는 “후견인은 재산 관리나 행정 절차를 대신 처리하는 사람을 넘어, 당사자의 의사와 선호를 확인하고 그것이 실제 삶에서 존중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평소 생활은 돌봄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고, 중요한 일은 후견인의 도움을 받는 구조가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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