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내분비종양, 관리 가능한 암… 완치 강박 버리고 '건강한 共存(공존)' 모색해야"

입력 2026.05.07 09:33

헬스 톡톡_김승태·권민석 삼성서울병원 교수, 윤지선 서울대병원 교수

희귀암 '신경내분비종양' 발병률 급증
증상 유무 따라 치료 시작 여부 결정
성급한 수술보다 장기·지속적 관리 중요

약물 치료, 호르몬 조절로 종양 성장 늦춰
"진행 최대 70% 이상 낮추는 효과 확인…
양상 다양하고 희귀, 협진 필수"

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암(癌)은 우리 사회에서 '빨리 발견해 빨리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인식된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거쳐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것이 암 치료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최근 신경내분비종양은 이러한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있다. 이 암은 호르몬을 분비하는 신경내분비세포에서 발생하는 희귀암으로, 다른 암보다 진행 속도가 느려 치료 목표를 단기 완치가 아닌 장기 관리에 둔다. 전이가 있더라도 성급히 절제하기보다 수년간 병의 흐름을 보며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승태 교수는 "신경내분비종양의 경우, 무리한 치료에 따른 합병증 위험을 줄이면서 환자가 일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실질적인 생존율 향상에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도 앓았던 느린 희귀암

신경내분비종양은 장기의 실질 세포 사이에 퍼져 있는 '산재성 신경내분비계통 세포'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인 암은 내배엽 세포에서 나오지만, 이 암은 외배엽 세포에서 기원한 호르몬을 분비하는 특수한 세포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다르다. 폐, 위장관, 비뇨기 등 전신 어디서든 생길 수 있어 종양 특성이 매우 다양하며,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유암종'이라는 이름으로도 통용된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권민석 교수는 "신경내분비종양은 환자마다 양상이 천차만별"이라며 "간의 90%가 전이돼 19㎝가 넘는 거대 종양이 있는데 증상을 전혀 못 느끼는 환자가 있는 반면, 아주 작은 크기라도 신경을 건드려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애플 창업가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많이 알고 있지만, 사실 췌장에 자란 신경내분비종양이 원인이었다. 그는 진단 초기 수술 대신 대안 요법을 택하며 치료를 미뤘는데도 7년 넘게 생존했다. 일반적인 췌장암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처럼 상당 수의 신경내분비종양은 천천히 자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현재 신경내분비종양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윤지선 교수는 "국내에서도 검진 활성화로 발견 빈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주로 위, 소장, 직장, 대장, 췌장 등 소화기 계통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한국인은 전체의 약 50%가 직장에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제거보다 관리… 일상 지키는 약물 치료

많은 사람들이 암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암이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신경내분비종양은 다른 암보다 진행 속도가 느려 치료 목표를 장기 관리에 둔다.

윤지선 교수는 "1~2등급의 비교적 순한 종양은 무턱대고 수술했다가 합병증으로 오히려 삶의 질이 망가질 수 있다"며 "암을 바로 제거하기보다, 3~6개월간 영상을 찍으며 경과를 관찰하는 능동적 감시가 때로는 더 현명한 치료가 된다"고 말했다.

일반 항암 치료는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사멸시키는 방식이지만, 신경내분비종양은 천천히 자라기에 일반 항암제로는 암세포가 잘 죽지 않기도 한다. 김승태 교수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에게 일반 항암 치료를 시행하면 오히려 정상 세포만 공격받아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크다"며 "암세포의 성장 신호를 차단하는 호르몬 치료나 표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치료 현장에서는 증상의 유무가 치료 시작의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권민석 교수는 "증상이 없다면 득과 실을 따져 수술 여부를 신중히 결정한다"며 "이미 전이가 된 상태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기에, 무조건적 절제보다는 약물로 병을 다스리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진행 늦추는 것만으로도 의미 커"

신경내분비종양 치료는 소마토스타틴 유사체를 활용한 치료가 출발점이다. 이는 암세포 수용체에 결합해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고 종양 성장을 늦추는 방식이다. 윤지선 교수는 "월 1회 주사 치료가 가능해 환자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카보잔티닙 성분의 약제가 일부 환자군에서 질병 진행 위험을 최대 77%까지 낮췄고, 다른 부위 종양에서도 위험을 55%가량 낮췄다는 3상 임상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권민석 교수는 "통상적인 임상시험에서 약제들이 20~30%만 낮춰도 효과적이라고 평가받던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결과다"고 말했다.

신경내분비종양은 환자마다 양상이 매우 다양하고 희귀해 의료진 한 명의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전문가가 협력하는 다학제 진료가 필수적이다. 김승태 교수는 "여러 진료과 전문의들이 모여 정확히 치료 전략을 짜는 것이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제거'가 아닌 '장기적 관리' 관점에서 신경내분비종양 치료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민석 교수는 "신경내분비종양은 진행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암을 제거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전문가와 함께 관리하는 대상으로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지선 교수 또한 "신경내분비종양은 10년 이상 생존이 보고될 만큼 충분히 관리 가능한 암"이라며 "완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암과 건강한 공존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경내분비종양

호르몬을 생성하는 신경내분비세포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신체 어느 장기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진행이 느린 경우가 많아 단기적 완치보다는 장기적인 관리와 삶의 질 유지가 치료 목표가 된다. 조기 진단 시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나, 전이된 경우에는 호르몬 치료나 표적 치료 등을 활용해 종양의 성장을 억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