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나 독감에 걸려 몸속에 염증이 생긴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간이 훨씬 더 심하게 망가지는 원인이 밝혀졌다.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이상준 교수, 서울대 라젠드라 카르키 교수, 호주국립대 시밍만 교수 공동 연구팀은 알코올이 면역 시스템을 오작동하게 만들어 간세포를 죽이고, 알코올성 간 질환을 악화시키는 분자 기전을 규명했다.
알코올은 몸에 염증이 생겼을 때 분비되는 물질인 인터페론과 함께 작용해 간세포 사멸을 일으킨다. 염증으로 인터페론이 분비된 상황에서 알코올이 들어오면 세포 안에 비정상 리보핵산(RNA)인 Z-RNA가 급격히 늘어나고, 이 Z-RNA를 면역 센서인 ZBP1 단백질이 감지하면서 간세포의 사멸 반응이 촉발된다는 설명이다.
원래 건강한 세포는 ADAR1이라는 단백질로 Z-RNA를 변형하거나 숨겨서 면역 센서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통제하지만, 알코올은 ADAR1 단백질 생성도 일부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반응은 알코올성 간염이나 자가 면역 질환이 생긴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으로 유발된 염증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염증 상황에서도 분비된다.
연구팀은 이러한 분자 기전을 동물 실험으로 입증했다. 실험 쥐의 유전자를 조작해 Z-RNA를 감지하는 ZBP1 단백질을 억제하자 알코올과 인터페론이 동시에 존재하는 조건에서도 간세포 사멸과 간 손상이 크게 줄어들었다.
연구 저자 이상준 교수는 "그간 술 자체의 독성이 간세포를 직접 손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알코올이 촉발한 면역 반응이 간세포 사멸을 일으키는 또 다른 기전이 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며 "ZBP1의 작용을 억제하는 방식 등의 새로운 알코올성 간질환 치료제 개발의 토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