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향하던 韓 의사 7명… 비행기 ‘닥터콜’에 뛰쳐나가 환자 살렸다

입력 2026.04.02 17:49
현장 사진
비행기에 탑승했던 의사들이 심정지 위기에 놓인 외국인 여성의 생명을 살린 사연이 전해졌다./사진=김정환 교수 페이스북 캡처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던 의사들이 심정지 위기에 놓인 외국인 여성의 생명을 살린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30일 강남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정환 교수의 페이스북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전 인천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기내 의료진 호출인 ‘닥터콜’이 울렸다. 기내 화장실 앞에서 한 외국인 여성이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다. 당시 기내에는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인 김철민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김정환 교수를 비롯해 가정의학과 의사 7명이 세계가정의학회 아시아태평양지역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함께 탑승 중이었다. 김 교수는 “환자 쪽으로 가보니 안색이 창백한 중년 여성이 화장실 앞에 쓰러져 있었고, 승무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이사장이 즉시 환자 기도 확보를 위해 삽관을 시도했으나, 혀가 뒤로 말려 들어가 플라스틱 후두경으로는 삽관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기내에 후두마스크(LMA)가 있어 이를 이용해 기도를 확보했고, 김 교수는 청진기로 호흡 상태를 확인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자발적 호흡이 약해져 엠부백을 짜서 강제로 인공호흡을 시작했지만 수축기 혈압이 80mmHg 이하로 떨어지면서 심정지까지 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며 “비행기 안에서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당시 뇌경색이 의심되는 정도였지만, 정확한 진단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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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마닐라 도착 직후 대기 중이던 현지 의료진에게 인계돼 현지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김정환 교수 페이스북 캡처
이후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의사들도 합류해 응급조치를 이어갔고, 환자의 상태는 점차 호전됐다. 김 교수가 환자의 경동맥을 짚어보니 환자의 자발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혈압 또한 회복됐다. 의사들은 약 3시간 30분 동안 교대로 환자를 돌봤으며 환자는 마닐라 공항 도착 무렵 간단한 질문에 고개를 움직이거나 눈을 깜빡이는 등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가 김정환 교수에게 추가로 확인한 결과, 환자는 필리핀계 미국 국적으로 마닐라 도착 직후 대기 중이던 현지 의료진에게 인계돼 현지 병원으로 이송됐고, 가족에게 인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상태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이번 사례와 관련해 김 교수는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이 겪는 제도적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는 의료진이 7명이나 함께 있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지만, 혼자였다면 처치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망설였을 수 있다”며 “현재 법이 모호해 사후에 민사 소송 등 법적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은 위급 상황에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책임을 면제하거나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한 결과가 발생할 경우 형사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 의료진의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김 교수는 “일부 유럽 국가는 닥터콜 상황에서 의료진이 나서지 않을 경우 처벌 대상이 되는데, 이는 선의로 시행한 응급처치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제도적 보호가 마련되면 의료진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유사한 우려를 제기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다른 국가들의 경우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료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행동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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