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덮친 쪽방촌… 서울시의 ‘총동원 대응’도 역부족

“집안이 너무나도 더워서, 밤이 되면 문 밖에 라면 상자를 깔고 그 위에 누워 잡니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남성 A(64)씨는 올여름 대부분의 밤을 집 밖에서 보냈다. 그가 사는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 시내 대표적인 주거 취약지로, 창문조차 없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냉방기 없이 지내는 고령자와 만성질환자가 많다. 여름이면 이곳은 ‘생존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서울시 폭염 대책, 쪽방촌엔 체감 어려워
서울시는 지난 7일 기온이 37도를 넘어서자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고, 폭염종합지원상황실 대응 단계도 2단계로 상향했다. 주거 취약 지역에는 무더위쉼터 7곳과 밤더위대피소 6곳이 9월까지 운영되며, 공용 에어컨을 사용하는 주택에는 가구당 최대 30만 원의 전기요금을 지원한다. 이 외에도 지난여름부터 일부 지역 골목에 쿨링포그(미세한 물 입자를 분사해 체온을 낮추는 장치)를 설치하고, 물 청소차 운행과 그늘막 추가 설치 등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거 환경이 열악한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이 같은 대책의 실효성을 체감하기 어렵다. A씨는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무더위 쉼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려 있는데, 그 시간 내내 그곳에 머문다”며 “밤에 운영하는 더위대피소는 공간이 좁아 몇 명만 들어가도 가득 차고, 이불도 없어 이용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집에서 자기에는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만 나와, 집 앞 바깥 바닥에 라면 상자를 깔고 잔다”고 했다.

여성 주민 B(53)씨는 “쪽방촌에서 도보 1~2분 거리에 있는 무더위 쉼터는 남성 전용”이라며 “여성 전용 무더위 쉼터는 도보로 약 15분 거리여서,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찾아가는 것조차 사실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밖에서 자는 건 위험해서 시도하지 못한다”며 “아무리 더워도 집 안에서 자려 하지만, 너무 더워서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냉방을 위해 골목골목에 설치한 쿨링포그 설비에도 한계가 있었다. 또 다른 남성 주민 C(57)씨는 “쿨링포그 아래에 있으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 냉기가 집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공용 에어컨은 외부와 차단되는 문이 있는 여인숙 건물 일부에만 설치되고, 복도가 외부와 바로 연결된 대부분의 쪽방 건물에는 냉기가 금세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설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좁고 더운 방, 고령자·만성질환자에겐 생명 위협
고온다습한 쪽방 내부 환경은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에게 특히 위험하다. 창문이 없어 바람이 통하지 않고, 얇고 단열재 없는 벽체는 외벽처럼 열을 그대로 들여보낸다. 또 냉방기기가 없어 내부에 쌓인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도 어렵다.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이유정 교수는 “좁고 통풍이 안 되는 공간은 체열 배출을 방해해 심부 체온(내부 장기의 중심 온도)을 높이고, 열사병 위험을 키운다”며 “고령자는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탈수, 실신, 저나트륨혈증, 심부전(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져 혈액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하는 상태) 등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뇨제(소변 배출을 촉진해 체내 수분을 줄이는 약)나 혈압약을 복용하는 환자는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에 취약하고, 당뇨병 환자는 고온 환경에서 혈당 변동이 커져 고혈당성 고삼투성 상태(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체내 수분이 빠져나가는 상태)로 진행될 위험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간호사 2명이 50명 담당… 폭염 속 쪽방촌 방문 간호의 현실
동자동 쪽방촌을 담당하는 서울특별시립 서울역 쪽방 상담소는 간호사 두 명이 주 5회, 약 50명의 주민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을 살피고 있다. 이 상담소 소속 간호사인 김석 팀장은 “폭염 시기에는 주민들의 입술 상태나 소변 색, 피부 건조도를 통해 탈수 여부를 확인하고, 저혈당 위험이 있는 당뇨병 환자의 약 복용 상황도 꼼꼼히 챙긴다”고 말했다. 이어 “더위로 인한 실신이나 열사병을 예방하기 위해 에어컨이나 선풍기 사용을 권장하고, 필요시 손 선풍기나 쿨매트 등 냉방용품도 제공한다”고 했다.

이처럼 간호사의 방문이 정기적으로 이뤄지고는 있지만, 인력 부족 탓에 매일 관리하기는 어렵다. 김 팀장은 “고독사 위험이 있는 독거 노인이나 알코올 의존 대상자는 더 자주 확인이 필요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매일 방문은 어렵다”며 “‘오늘 안 보이시네’ 싶으면 걱정부터 들고, 직접 가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냉방 지원과 인력 보완 함께 가야”
쪽방촌처럼 폭염에 취약한 환경에서는 무더위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유정 교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충분한 수분 섭취”라며 “갈증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물을 챙겨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냉방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열 노출을 줄이기 위한 습관이 중요하다”며 “습도 조절을 위한 환기, 햇볕 차단용 커튼 사용(창문이 있을 경우), 젖은 수건이나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체온을 낮추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실천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 실질적인 냉방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며,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를 자주 돌볼 수 있는 인력 보완도 과제로 남는다. 김석 팀장은 “여름은 생존과 직결되는 계절”이라며 “쿨매트, 손 선풍기, 이온음료 등 냉방과 수분 보충에 도움이 되는 지원이 보다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늘 더위를 견디는 수밖에 없어 막막하고 답답하다”며 “가까운 곳에, 무더위 속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