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인 혈관이 터지면서 황반이 젖는 ‘습성(신생혈관성) 연령관련 황반변성’은 고령자들의 시력 손실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기존에는 치료 선택지가 부족해 실명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바비스모’와 같이 비정상적인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이중항체가 등장해 조기 진단·치료로 시력 손실을 막는 등 치료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요인과 바비스모의 개발 배경에 대해 알아본다.
가운데 흐릿한 검은 점이 황반이다. 새롭게 생성된 비정상적인 혈관이 터져 황반이 젖고 망막액이 많아지면 습성 황반변성이 발생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노인 시력 손실, 사망 위험 높여… 6개월~1년 단위 검진 중요 눈의 노화라고 불리는 황반변성은 크게 초기 단계인 '건성 황반변성'과, 치료가 필요한 '습성 황반변성'으로 나뉜다. 건성 황반변성의 경우 별도 치료 없이 주기적인 관찰만 요구되지만, 습성 황반변성까지 진행되면 실명 위험이 커진다.
습성 황반변성은 눈에 비정상적인 혈관들이 생기고, 이 혈관들이 터지면서 황반이 젖는 경우를 말한다. 망막 조직에는 물이 없는 것이 정상이나, 혈관이 터지면 황반에 혈액이 흘러들면서 망막액이 많아져 부종·시야 흐림 현상이 발생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습성 황반변성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노화다. 나이가 들수록 눈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발병률이 높아진다. 노화와 함께 고혈압과 흡연도 질환의 진행·재발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담배는 체내 혈액순환을 방해해 몸에 염증을 일으키고, 노폐물을 원활히 배출하지 못하게 해 발병률을 높인다.
고령자들은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이 발생하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우울증이나 낙상 위험이 높아진다. 이는 삶의 질 저하로도 이어진다. 이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질환을 조기에 발견·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안과병원 김재휘 전문의는 "평균적으로 시력 0.5~0.6일 때 발견되는 환자가 많다"며 "시력에 문제가 없다고 느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안과에서 검진을 받는 것을 추천하며, 건성 또는 초기 황반변성을 진단받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검진받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치료 환경 많이 개선돼… 시력 유지, 저하 속도 최소화 목표 기존에는 치료 선택지가 부족해 이미 질병이 시작된 경우 치료하지 못하고 환자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치료 환경이 많이 발전해 유리체에 주사하는 항체주사가 여럿 등장해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해당 치료제들은 ‘혈관내피성장인자-A(VEGF-A)’를 표적으로 한다.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은 눈에서 혈관내피성장인자-A의 농도가 올라가면서 비정상적인 혈관을 생성해 발생하는데, 이를 억제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낸다.
현재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 치료는 ▲단기적으로 시력을 최대한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시력이 떨어지는 속도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전된 표준 치료법이 있긴 하나, 완치까지 기대하긴 어렵다.
김재휘 전문의는 "20분의 1 확률로 치료 후 몇 년 동안 재발하지 않는 환자들이 있기는 하나, 이를 완치라고 칭하기보다는 '질환의 활동성이 아주 많이 떨어진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로 본다"며 "치료하다 보면 시력이 좋아지는 환자도 있지만, 처음부터 시력 개선을 치료 목표로 잡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바비스모/사진=한국로슈 제공
◇이중항체 치료제 ‘바비스모’, VEGF-A·ANG-2 동시 억제 과거 진료 현장에서는 '아일리아(성분명 애플리버셉트)'를 가장 많이 썼다면, 최근에는 '바비스모(성분명 파리시맙)'가 새로운 선택지로 추가됐다.
바비스모는 혈관내피성장인자-A뿐만 아니라 안지오포이에틴(ANG)-2를 함께 표적으로 삼는 이중항체 치료제다. 혈관내피성장인자-A가 혈관 신생·누출, 염증에 영향을 미친다면, 안지오포이에틴-2는 혈관 신생·누출과 섬유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존에는 습성 황반변성의 주범을 혈관내피성장인자로 한정하고 치료를 진행했으나, 이를 표적으로 삼고 치료해도 잘 치료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후 의료진들은 연구를 통해 혈관내피성장인자 이외에도 혈관 생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안지오포이에틴-2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함께 억제하기 위해 개발한 신약이 바비스모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안과 지동현 교수는 "기존에는 안지오포이에틴-2에는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지만, 이중항체의 등장으로 혈관내피성장인자-A와 안지오포이에틴-2를 동시에 억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투여 간격 최대 4개월… “효과 부족해도 바로 약제 교체하진 않아” 바비스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투여 횟수로 투여 편의성을 높이고 약제 비용을 절감했다고 평가받는다. 식약처 허가사항에 따르면, 바비스모는 최대 4개월에 한 번꼴로 투여할 수 있다. 이는 아일리아 대비 1개월 더 긴 간격이다.
지동현 교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당시 환자 안전을 위해 적어도 4개월에 한 번 투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며 "임상시험 종료 후 기록을 참고해 보니, 투여 간격을 5개월까지 넓혀도 괜찮은 환자들이 많이 있었다 "고 말했다. 이어 지 교수는 "정확히 허가가 나거나 객관적으로 입증된 건 아니지만, 5개월은 거의 1년에 두 번 간격"이라며 "환자가 투여 횟수를 줄여 편리해지는 등 치료법이 많이 발전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환자가 4개월까지 간격을 늘려 투약하는 것은 아니다. 첫 4회를 투여할 때는 4주에 한 번씩 투여해야 하며, 질병 상태에 따라 투여 간격을 2개월 또는 3개월로 정하기도 한다. 4개월 간격 투약은 약의 반응이 잘 나오는 환자들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바비스모의 부작용으로는 염증 반응이 있으나, 확률이 수백 명당 1명꼴로 발생할 만큼 낮은 편이다. 이 경우 약물 치료를 통해 염증을 없앤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비스모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로, 이때는 바비스모 투여를 우선 유지하다가, '아일리아' 고농도 제제나 '비오뷰(성분명 브롤루시주맙)' 등 동일 계열·다른 성분의 약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김재휘 전문의는 "바비스모의 반응이 안 좋다고 해서 바로 약을 교체하는 건 아니다"며 "환자·질환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약을 계속 투여할지, 아니면 약을 바꿀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