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한 남성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삶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아버지로서 오랫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췌장암 2기를 진단 받았습니다. 투병 과정에서 수차례의 힘든 순간을 겪었지만 ‘아버지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암을 극복했습니다. 췌장암 완치 후 지금까지 10년째 건강하게 생활하며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천인식(68·서울 송파구)씨와 그의 주치의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천영국 교수를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췌장암을 이겨낸 천인식씨(왼쪽)와 그의 주치의인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천영국 교수./사진=김지아 기자
췌장암 신호, 체중이 줄다 2009년 가을, 천인식씨는 종종 극심한 피로를 겪고 체중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사업을 하며 저녁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쓰리잡’을 하던 상황이라 단순 피로 누적이라고 여겨 특별한 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체중이 계속 감소했고 등 통증과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 동네 내과에서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1주일 동안 약을 복용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병원에 내원해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암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어 곧바로 집 근처 대학병원에 갔다가 췌장암을 진단받았습니다. 1주일에 5회 이상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술은 매우 드물게, 담배는 입에도 댄 적이 없던 그에게 췌장암 진단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고3, 고1이었던 자식들에게 암이라는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아내에게만 암이라는 것을 털어놨습니다. 아내와 입원 전 눈물 젖은 1주일을 보냈습니다.
췌장암은 종양이 생기는 위치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며 예후가 천차만별입니다. 췌장 머리, 몸통, 꼬리로 분류되는데 머리 쪽에 생기는 암이 그나마 예후가 좋습니다. 췌장 머리는 근처에 담도가 지나가기 때문에 이곳에 종양이 생기면 비교적 초기에 황달 증상이 나타납니다. 췌장의 다른 부위에 암이 생기면 특별한 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고 등 통증을 비롯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천인식씨가 처음 병원에 내원했을 때에는 눈이 노랗게 변한 황달 증상이 있었습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초음파 검사와 CT를 진행한 결과, 췌장 머리 쪽에 3.5cm 정도의 종양이 있었고 담도가 꽉 막힌 상태였습니다.
11월 20일, 췌장암 수술을 위해 입원했습니다. 담도가 막힌 채로 암 수술을 진행하면 염증이 생기고 패혈증이 생기기 때문에 막힌 부분에 스텐트를 삽입해 담즙을 빼냈습니다. 1주일 동안 담즙을 전부 빼낸 후에야 암 절제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은 췌장암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지만 2기까지만 수술이 가능합니다. CT 검사 결과, 종양이 군데군데 퍼지지 않고 임파선까지만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 2기를 진단 받았고 12월 1일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종양이 생긴 부위와 췌장 앞쪽의 십이지장, 담낭을 전부 제거했습니다.
수술 부작용으로 사경 헤매 천인식씨는 수술이 끝나고 난 뒤 배에 복수가 차고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고열이 계속돼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천인식씨는 “배에 복수가 너무 많이 차서 옆으로 돌아눕지를 못했고 열이 점점 오르다가 하늘이 노래지더니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맥으로 해열제를 투여하면 열이 잠시 동안만 내리고 궁극적인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폐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수술 후 1주일 뒤로 예정되어 있던 방사선 치료는 한 달 뒤로 미뤄지게 됐습니다.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병실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 모두 천씨가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아내만이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갈비뼈 밑으로 관을 삽입해 몸속 물을 전부 빼내자 열이 떨어졌습니다.
2010년 2월부터 4주간 방사선 치료를 28회 받았습니다. 임파선 전이가 있으면 수술을 하더라도 재발률이 50% 이상입니다. 천영국 교수는 “췌장암 수술 뒤에 미세한 암 덩어리가 남아있는 등의 이유로 수술 부위 주변에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주변부 재발을 막고 혈액 속에 남아있는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방사선 치료로 인한 고통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월요일에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면 수요일에는 몸이 힘이 쭉 빠져 축 쳐지고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해 금요일에는 탈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천영국 교수와의 인연은 3월부터 5-FU, 시스플라틴을 조합한 항암 치료를 9회 시행했습니다. 요즘은 항암 치료를 통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천씨가 항암 치료를 받을 시절에는 입원 치료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체력을 올리기 위해 3박 4일간 수액을 맞은 후 항암제 투여를 반복했습니다. 1차 항암이 끝나고 나니 기운이 없고 입맛이 떨어져 음식을 먹기가 버거웠지만 직장까지 그만두고 항암 치료를 돕던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이를 이겨냈습니다.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천영국 교수도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천 교수를 처음 만난 건 항암 치료 시작 때입니다. 천 교수는 치료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천씨와 천씨의 아내까지 자상하게 챙겨줬습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치료를 받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항암 치료에 임했고 큰 부작용 없이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2~3년 후 천영국 교수가 건국대병원으로 이직할 때 병원을 따라 옮기기도 했습니다.
항암 치료를 끝으로 마침내 2014년 11월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추가 치료나 재발, 전이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천영국 교수는 “현재 천인식씨는 췌장암에서 완전히 벗어나 일반인과 똑같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완치 판정을 받고 10년이 지나 약물 복용 등 췌장암과 관련된 치료는 전혀 진행하지 않는 중이며 2~3년 간격으로 정기 검진을 받고 있습니다.
<천인식씨>
천인식씨./사진=김지아 기자
-췌장암 처음 진단받을 때 심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을 진단받으면 곧바로 죽음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췌장암을 진단받았을 때 딸이랑 아들한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아내에게만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저희 딸이 고3, 저희 아들이 고1이라서 학업이며 대학 진학이 정말 중요할 때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입원하기 전 1주일 동안 아내와 손을 잡고 집 앞 올림픽 공원에서 정말 많이 울면서 산책을 했습니다. 그렇게 6일을 보내니 저도 모르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암을 이겨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7살 때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무르는 아버지가 돼줘야겠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췌장암을 반드시 이겨내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딸 결혼식장에 꼭 손을 잡고 들어갈 거야’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아빠의 존재가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를 알기에 극복 의지를 더욱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약속을 하고 암을 열심히 이겨낸 덕분에 올해 5월 18일 저희 딸 결혼식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힘든 치료 과정을 견딘 원동력은? “가족의 역할이 무척 컸습니다. 제가 입원했을 때 아내가 대신 가장 역할을 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저와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 병원에 와 제 끼니를 챙겨주는 등 회복을 위해 많이 힘써줬습니다. 자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저희 딸은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시 원서를 넣을 때 쯤 투병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합격한 여러 대학 중 간호대학에 진학하더라고요. 병원 신세를 지느라 어려운 생활을 했는데 싫은 내색 없이 1주일에 용돈 3만원으로 생활하면서 열심히 공부해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대학병원에 취업해 제가 아파서 일하지 못했던 8년 동안 저희 집 생활비를 전부 책임졌습니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미대 진학을 꿈꿔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포기하려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지원을 못해줘 미안한 마음에, 가까운 지인에게 도움을 받아 입시 학원에 보냈고 다행히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낮에는 학업에 열중이고, 학교가 끝나면 미술 학원을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텐데 싫은 내색 없이 묵묵하게 이뤄낸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아파서 의지가 되지 못한 아버지였는데도 최선을 다하며 목표를 이뤄준 딸, 아들 덕분에 저도 열심히 살아가자는 다짐을 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애정도 큰 것 같은데요. “제 핸드폰에 천영국 교수님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저장돼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이전 치료에서 부작용을 겪기도 했고 체력이 저하되고 체중이 줄어드는 등 급격한 신체 변화를 겪었을 때 교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것저것 귀찮으리만치 여쭤 봐도 항상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변해 주시고 저뿐만 아니라 제 아내의 안부도 매번 확인해주셨습니다. 저절로 교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됐고 교수님을 만나 뵐 수 있단 생각에 항암 치료를 받는 시간이 두렵지만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연락을 해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가벼운 감기가 걸렸을 때나 몸에 작은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건국대병원에 내원해 천영국 교수님께 진료를 봅니다.”
천인식씨가 운동하는 모습./본인 제공
-자기 관리를 매우 철저하게 하신다던데. “제가 올해로 42년째 헬스를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운동, 식습관 관리를 한 덕분에 여러 번의 위기를 모두 이겨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도 열심히 실천 중입니다. 암 수술과 항암 치료가 전부 끝나고 퇴원하니 체중은 20kg가 빠져있고 체력은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집에서 올림픽공원까지 10분 거리인데 거기까지 갈 체력을 다시 기르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점점 운동 시간을 늘려서 지금은 주 4일은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하고 평소에는 매일 틈틈이 8000보씩 걷고 있습니다. 췌장암 진단 후로 식단 관리도 더 철저히 하게 됐습니다. 아침에는 급격한 혈당 상승을 막기 위해서 생고구마를 먹습니다. 고구마를 찌거나 구우면 혈당지수(GI)가 많이 높아진대서 생식을 택합니다. 점심에는 감자, 양파, 토마토에 올리브유를 곁들여 먹고 저녁에는 잡곡밥 3분의 2 공기와 닭 가슴살을 먹습니다. 틈틈이 삶은 계란으로 단백질을 보충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아미랑 애독자입니다. 암 투병 당시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 우연히 아미랑 뉴스레터를 알게 됐습니다. 이메일 무료 구독 신청을 해 7회차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아미랑 독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뉴스레터를 전부 제 이메일에 보관 중이기도 합니다. 요즘도 화요일부터는 출근해서 아미랑 뉴스레터부터 읽고 하루 업무를 시작하곤 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큰 위안 받고, 마음 관리 잘 하며 건강하게 지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제가 아프고 나서 약 10년 동안 일을 못했었는데 최근 집 근처 건물 관리소장으로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건물에 암 요양 병원이 있어, 일하다 보면 수많은 암 환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간혹 건국대병원 유튜브에 출연한 영상을 본 환자들이 저를 알아봐주셔서 대화를 나누는데요. 이런 분들에게 암 극복 의지를 북돋아 주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어디서든 충실히, 건강한 아버지로, 힘이 되는 남편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천영국 교수>
천영국 교수./사진=김지아 기자
-국내 췌장암 치료 발전 방향은? “췌장암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암’으로 분류됩니다. 현재 대장암, 폐암 등 기타 암 종은 치료 반응이 높은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상태인데, 아직 췌장암에서는 그런 효과를 내는 표적 항암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표적 항암제는 암을 유발시키는 유전자를 찾아서 그 유전자에 적합한 항암제를 만들어내는 원리입니다. 췌장암은 다른 암 종보다 유전자 변이가 많아서 표적 항암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췌장암 관련된 유전자를 밝혀내고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저 역시 췌장암을 유발하는 주요 유전자를 분석하고 이를 적절하게 치료할 수 있는 약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췌장암 환자에게 이리노테칸을 근간으로 여러 약제를 조합한 폴피리녹스(FOLFIRINOX) 복합 항암제가 처방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췌장암 치료 후 주의해야 할 점은? “췌장암 수술을 받으면 췌장 크기가 작아지고 정상 췌장 조직이 손상돼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아집니다. 췌장은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는 소화 효소를 분해하는데 이 기능이 저해돼 환자가 잘 먹어도 흡수가 잘 안 돼서 체중이 빠지고 변에 지방이 끼는 등의 후유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췌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단백질 섭취량을 조금 늘리는 게 좋습니다. 체중이 감소하면서 근육도 함께 빠지기 때문에 평소 식사에서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근력 운동을 해서 근육을 적절히 만들어 주는 게 영양 흡수율을 높여 빠른 회복을 돕습니다.”
-천인식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심하신 이유는? “천인식씨를 치료하던 2010년대 초반은 췌장암 예후가 매우 불량했을 때입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치료제와 기술이 개발되기 전이라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췌장암 진단 1~2년 내로 사망하는 등 췌장암이라는 질환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던 때였습니다. 임상에서 건강하게 만났던 환자들도 결국 점점 상태가 나빠져 사망 진단서를 쓰게 될 때면 의사로서의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내색하지 않고 항상 적극적으로 치료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감이 떨어져 가고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때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치료에 임하며 힘든 내색 없이 잘 따라와 주시고 또 췌장암 치료 후 좋은 결과를 보여준 천인식씨의 모습이 제게 큰 위안이 됐습니다. 여러 가지 힘든 순간을 겪었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결국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까 역으로 저한테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췌장암을 열심히 연구하고 더 적극적으로 치료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만들어 준 고마운 환자입니다. 사실 의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같은 병을 앓은 환자의 말만큼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아미랑 인터뷰를 통해 천인식씨 사례를 소개하면서 췌장암으로 인해 고통 받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완치된 사람이 직접 해주는 이야기가 환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췌장암을 진단 받고 힘들어하실 환자들에게 한 말씀. “암 치료는 의사나 환자 누구 하나만 노력해서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료진은 신뢰를 주고 환자는 의료진을 믿어야 하겠죠. 환자, 보호자, 의사가 하나가 돼 치료에 적극 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천인식씨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마세요. 환자가 포기해버리면 아무리 좋은 약이나 치료법이 있어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의료진으로서 저 역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치료를 받으세요. 그래서 여러분도 췌장암을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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