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性 문제 겪지만 ‘쉬쉬’… 성교육은 부재, 있던 정부 사업도 폐지

입력 2024.04.22 17:00

[발달장애인의 성]① 통제·회피 대상이었던 성… 문제 드러나

성교육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사진=연합뉴스
42세 여성 A씨는 15세 발달장애인 B군의 보호자다. B군은 지적장애 2급 발달장애인으로 3~7세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다. 각종 치료센터와 복지관을 돌아다녔던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성적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더니 여성 선생님들을 쫓아다나고 또래 여아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자기 방에서 부푼 성기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B군을 마주했다. 당황해서 안 된다고 다그쳤지만 한 편으로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야 문제 행동을 일으켜도 힘으로 제지할 수 있지만 덩치가 조금 더 커지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발달장애 청소년 대상 성교육이 절실했지만 관련 기관은 물론 인터넷에서 자료 찾기도 쉽지 않았다.

◇문제 막는 데 급급한 발달장애인의 성
발달장애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등록 발달장애인은 총 25만1521명이었다. 2014년 20만3879명에서 25.18% 급증한 수치다. 이러한 증가세에 국가 지원 체계도 조금씩 자리 잡혀 가고 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의 성은 한국의 폐쇄적 성문화와 맞물려 여전히 그늘에 가려져 있다. 대체로 발달장애인은 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하거나 무성적 존재로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성적으로 부적절하게 행동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성적 욕구를 가진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발달장애인도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성욕을 느낀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성적 관심은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성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서툴러 타인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인지기능 저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발달장애인이 친밀감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해도 되는지 헷갈려한다. 포옹, 뽀뽀 등 가족들과 할 만한 애정표현을 타인에게 시도해 주변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시립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김보람 센터장은 “발달장애인이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서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성적 관심을 표출할지가 보호자들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발달장애인의 성은 오랫동안 통제의 대상이었다.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약물 등으로 성욕을 억제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인향 교수는 “발달장애인과 의사소통하는 게 어렵다 보니 보호자들도 건강한 성에 관해 교육하는 부분에서 난감해한다”며 “진료를 보다 보면 아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성욕을 억제하거나 쉬쉬하는 방법을 택하는 보호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공연음란죄, 성추행 등으로 기소되는 발달장애인 많아”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 들면 성행동이 고착화하거나 성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피임, 자위, 생리, 성병, 성 정체성 등에서 문제를 겪는 발달장애인들이 많다.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인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사례에 대해선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 ‘도가니’ 이후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평가하고 개입하는 부분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고 이후 법적 보호 장치가 확충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발달장애인이 피의자가 됐을 때 발생한다. 장애인차별법(제26조)에 따르면 ‘의사소통·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은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발달장애인은 피의자로 지목됐을 때 가해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고, 스스로에 대한 변호 능력도 떨어지며 금전적인 이유로 법률적인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수사기관은 진술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 피의자보다 피해자의 진술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인 성교육상담센터 되어감 정진옥 박사는 “스마트폰 사용률이 높아지면서 발달장애인이 성범죄에 더욱 취약해졌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특히 공연음란죄, 성추행 등으로 기소되는 남성 발달장애인이 늘고 있는데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문제는 성교육 부재 탓
최근에는 발달장애인의 성문제가 성교육의 부재 탓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발달장애인이 성적 관심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지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보람 센터장은 “성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거지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만약 발달장애인이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학교에도 다닐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도 사회적 훈련을 통해 욕구를 참거나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이라고 특별히 다른 내용의 성교육이 필요한 건 아니다. 비장애인과 똑같이 신체 발달부터 성 인권, 성폭력 예방, 임신 및 출산에 관한 포괄적인 내용의 성교육이 필요하다. 다만 꾸준히, 일관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성교육이 일회성에 그치거나 발달장애인이 이해한 내용이 가정에서 다르게 적용된다면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보호자, 특수교사 등 발달장애인을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정진옥 박사는 “성교육 시간에 자신의 몸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가정에서 부모가 옷을 다 벗기고 씻겨주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발달장애인 성교육은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 및 특수교육 종사자들도 함께 받을 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던 사업도 사라지는 판
전문가들은 현재 발달장애인 성교육 체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일반 교과과정에서 성교육은 1년에 15시간 편성돼 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 대상 성교육은 의무 교육에 포함되지 않아 얼마나,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국내 학술지 ‘정신지체연구’에 지난해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대상 성교육은 1년에 5시간미만으로 진행된다. 이마저도 20~30대 성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며 주제도 ‘성폭력 예방 및 대처 기술’ 등에 한정돼 있다.

부모 및 특수교육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더 열악하다. 일부 장애인복지관, 청소년성문화센터 등에서 특강을 여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인력, 교재 등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상태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여성가족부의 ‘성 인권 교육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 지원이 됐지만 올해부턴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당시 여가부는 성 인권 교육이 일부 시도에서만 이뤄지고 갈수록 수요가 줄고 있다며 사업 폐지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2020~2022년 3년 간 성 인권 교육에 참여한 인원수는 1만 7000여명대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보람 센터장은 “사업 폐지 후 성북구에 있는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로 전국에서 성교육 강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며 “그나마 지역에 장애인복지관이나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있다면 좀 낫지만 부모들이 어디서 교육을 받느냐고 물어볼 때 마땅히 소개할만한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온라인 영상이나 그룹 스터디를 통해 공부하는 등 개인의 정보력, 역량에 기대고 있다“고 말했다.

◇성교육은 타인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법, "자립 위해 필수"
발달장애인은 오랫동안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호자가 평생 붙어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중증도에 따라 다르지만 발달장애의 원인 질환 치료 목적이 ‘자립’인 까닭이다. 발달장애인이 제대로 자립하려면 평생교육, 주거, 성이 담보돼야 한다. 김인향 교수는 “발달장애인이 성인으로 지역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필요한데 특히 이성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성교육이 잘 이뤄져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귈 수 있으며 그 다음 단계인 연애와 결혼도 바라볼 수 있다. 

장애 당사자만 교육해서는 의미가 없다. 정진옥 박사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그 사회 안에서 규칙을 따르며 산다는 것”이라며 “성은 상호작용을 통해 친밀감, 갈망 등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표현되는 것이므로 발달장애인만 교육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인이 처음 겪는 사회인 가정에서부터 일관된 성교육이 진행돼야 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