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되면 인지기능 떨어져 은퇴? ‘정년’ 기준 합리적인가

입력 2022.06.09 07:45

[의학적 정년 ①] 인지기능

정년인 60세는 인지기능 저하 시점으로 이르다. 그러나 고령 노동을 위해서는 인지기능 유지에 힘써야 한다./사진=연합뉴스DB

몇 세부터 노인인가. 사회보장제도에서 노인의 연령 기준은 대부분 65세다. 노인들 스스로는 70.5세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한다(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 2020). 사회적으로는 ‘정년’이란 기준을 둬 60세를 ‘노인’으로 본다. 정년 시점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정해졌다. 국민연금, 소득공백, 실업률, 노동 생산성 등이다. 이중에서 노동 생산성은 노동력과 관련이 깊다. 사람이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투입하는 노동력은 노동자의 인지기능, 신체능력, 내적동기 등에 달려 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60세를 노동력 저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편집자주)

◇“60세, 인지기능 떨어져 일 어려울 시점 아냐”
인지기능은 기억력, 언어력, 지남력, 수리력 등으로 구성된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지기능의 기반은 유동지능과 결정지능의 다양한 조합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동지능은 선천적인 뇌 기능으로 정보 처리 속도와 관련이 깊다. 반면 결정지능은 교육, 경험 등 후천적으로 습득한 지식과 관련이 깊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까닭은 신경세포 및 뇌 용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언제일까? 전문가들은 적어도 60세는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준영 교수는 “유동지능은 50세부터 줄어드는 반면 기존에 해왔던 일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된 결정지능은 80세까지도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며 “노인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단순히 연령만 따졌을 때 60세는 인지기능 저하에 의한 노동력 상실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김영보 교수도 “연령별 뇌 용량 분석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70대의 뇌 용량이 40대와 비슷한 경우도 있었다”며 “연령을 기준으로 인지기능 저하 시점을 판단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치매는 80세부터, 불면증 우울증은 개인차 커…
다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질환에 취약해진다. 인지기능을 떨어뜨리는 질환들도 많다. 치매가 대표적이다. 뇌 조직이 소실되고 뇌가 위축되는 치매는 노동은 물론 일상생활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치매는 노동력과 큰 관계가 없다. 60대 유병률이 낮아서다. 이준영 교수는 “치매 유병률은 60세에서 약 1%밖에 되지 않고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여도 2~4%밖에 되지 않는다”며 “치매 유병률은 80세가 넘어가면서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인지기능 저하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불면증과 우울증도 있다. 두 질환 모두 뇌 기능을 약화시켜 인지기능을 떨어뜨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불면증 진료인원은 80세 이상에서 4219.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70대 3437.6명, 60대 2229.2명, 50대 1512.8명, 40대 1038.2명 순이었다. 우울증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재명 교수는 “통계적으로 불면증과 우울증 환자 수 증가 시점은 국내 자료에선 60세, 해외는 65세 정도로 나타난다”며 “그러나 이러한 질환들의 발병 시점은 개인차가 크고 치료도 가능해 정년의 근거로 활용되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이른 은퇴가 인지기능 떨어뜨리기도”
질환보다 오히려 이른 은퇴가 인지기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일을 못하면 지적 자극이 부족해지고 자기충족감 및 사회적 관계 상실로 우울증이나 인지기능 저하를 겪을 수 있어서다. 이준영 교수는 “단정하긴 어렵지만 일하지 않으면 인지기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며 “100세까지 사는 노인들의 주요한 특징이 소식과 적은 스트레스, 그리고 늦은 은퇴 시점이었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통계학 연구소의 연구팀은 은퇴 시기와 인지기능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1996년부터 2014년 사이에 일했던 55~75세 미국인 2만469명의 데이터가 포함된 '건강-보건 연구(Health and Retirement Study)'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이들 정보를 토대로 매개변수 공식을 만들어 은퇴 나이를 67세까지 늘렸을 때의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은퇴 나이를 늦추면 인지기능 저하가 더디게 나타났다. 이러한 효과는 사회 계층과 관계없이 대부분 사람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났는데, 연구팀은 직업적 성취와 사회적 활동이 평생 축적되면서 인지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했다.

◇고령 노동 대비해 인지기능 유지 힘써야…
최근 노동자의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금피크제의 근거엔 정년이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앞으로 정년의 연령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년 연장은 세계적인 추세다. 일본은 지난해 4월부터 기업이 노동자의 취업 기회를 70세까지 보장하도록 권고하면서 정년 70세의 신호탄을 쐈다. 독일은 2029년까지 정년을 67세로 늘릴 계획이다. 영국과 미국은 일찌감치 정년을 없앴다.

그러나 정년이 늘어난다 해도 개인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노동은 어렵다. 그러므로 인지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준영 교수는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만 줄여도 인지기능 저하를 30~50%는 예방할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만성질환 관리로, 특히 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혈관 건강을 위해 꾸준하게 운동하고 술·담배는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지적인 자극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강재명 교수는 “실제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정년 이후 할 게 없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하거나 우울감을 내비치는 60~65세 남성들이 많다”며 “과거에 일하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게 인지기능 유지에 있어 중요한 처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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