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한 번에 200만원 손해지만… 어린 생명 구하는 보람 큽니다”

협진(協診)하는 의사

‘모형 심장’ 활용, 최선의 수술법 찾는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팀 윤태진·양동현 교수

환자 한 명이 여러 개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거나, 한 개의 질환이지만 다른 진료과의 의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때는 관련 진료과 의사들이 함께 진료·치료하는 ‘협진(協診)’이 환자에게 바람직하다. 협진은 병원과 의사 입장에서 번거롭고, 수익에도 도움이 안 돼 피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협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의료 행위다. <헬스조선>은 성공적인 협진을 통해 환자의 건강을 되찾아준 이야기를 소개한다. 세 번째 주인공은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소아심장병 환자에게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윤태진 교수와 영상의학과 양동현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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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윤대진 교수(좌)와 영상의학과 양동현 교수(우)

한 차례 비가 오고 완연한 가을 냄새가 풍기던 10월 중순, 서울아산병원의 한 진료실에서 윤태진·양동현 교수를 만났다. 미리 도착해 담소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 앞에는 작은 모형이 담겨 있는 상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의 ‘협진 포인트’인 모형 심장이었다. 3D 프린팅을 이용해 실제 환자의 심장과 동일한 크기·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정교하고, 의사들이 봤을 때 문제점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게 두 교수의 설명이었다. 모형을 설명하는 두 사람의 눈은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환자를 위해 뭉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헬스조선 두 분이 소아심장팀에서 함께 하는 일을 알려주세요.

윤태진 교수 저는 심장을 다루는 외과의사고, 양 선생님은 영상의학과 의사입니다. 양 선생님을 알게 된 건 10년도 넘었어요.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위해 ‘TF(TaskForce,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별도로 구성한 집단)’를 만드는 것처럼, 병원에서 소아 환자의 심장을 치료하기 위해 모인 팀이 소아심장팀입니다. 한 명의 소아 심장병 환자를 위해서는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만 필요한 게 아니라 소아과 의사, 영상의학과 의사, 마취과 의사 등 다양한 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양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3D 프린팅을 치료에 도입하면서부터입니다.

2014년경부터 북미 심장학회에서 3D 프린팅을 이용한 심장 모형을 치료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저희도 이 모형에 대한 장점을 인식하고, 치료에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2016년 초반까지는 이 분야의 대가인 캐나다 토론토 대학 영상의학과 유시준 교수님께 환자 정보를 보내, 모형 제작을 의뢰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 영상자료를 확보하고, 보내고, 모형을 제작하고, 이걸 다시 받는 기간이 오래 걸려서 쉽지 않더라고요. 자체 제작에 대한 많은고민을 하다, 2017년부터 양 선생님이 도맡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양동현 교수 저는 환자의 심장을 촬영한 CT(컴퓨터단층촬영) 같은 다양한 영상자료에서 필요한 정보를 분리합니다. 개인 시간을 내 틈틈이 작업해야 해요. 분리한 중요 정보를 모아, 3D 프린팅을 담당하는 병원 내부 업체에 보내 제작을 시작합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프린팅 단계별로 잘못된 건 없는지 영상자료대로 제작이 되었는지 확인해요. 모든 스케줄이 끝나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완성된 심장 모형을 가지고 윤태진 교수님과 함께 소아심장팀 회의에 들어갑니다.

모형이 없을 때는 의사들간에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과마다, 개인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른 거죠. 환자의 95% 정도는 이견이 없습니다. 문제는 5%예요. 수술 방법에 대해 의견이 달라지면 무엇이 환자를 위해 최선인지 각자 입장에서 말하다보니 이걸 좁히기 쉽지 않아요. 이때 환자의 심장 모형을 3D 프린터로 똑같이 재현해 회의에 들고 가면 어떤 수술 방법이 적합한지 의견이 모아집니다. 눈으로 직접 상태를 볼 수 있으니 해결책도 명확해지는 거죠. 영상자료로 봤을 때 ‘이 정도 위치에 문제가 있겠다’ 싶은 걸 명확하게 지도로 보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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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3D 프린팅을 이용해 두 분이 함께 협진하면 환자들에겐 어떤 장점이 있나요.

윤태진 교수 이 기술은 선천성 복잡심장기형이 있는 어린 환자에게 유용하게 쓰입니다. 간단한 기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는 환자들이죠. 대표적인게 ‘양대혈관우심실기시증’에 ‘심실중격결손’이 있는 경우입니다. 양대혈관우심실기시증은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우심실에 연결되어 있어 제대로 된 피가 전신을 돌지 못하는 질환이죠. 심실중격결손은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에 있는 벽에 구멍이 생긴 질환이고요. 이런 경우 의사들 사이에 단심실 교정을 할지, 양심실 교정을 할지 의견이 갈립니다.

양심실 교정은 심장을 원래 생김새처럼 2심방 2심실로 분리해주는 것이고, 단심실 교정은 1심방 1심실 형태로 유지하는 겁니다. 양심실 교정이 좀더 자연스러운 원래의 심장 형태로 가는 것이지만, 환자에 따라 단심실 교정을 해야 할 때도 있어 의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기 쉽습니다. 3D 프린팅 심장 모형을 적용하지 못하던 과거에는 수술 전 회의 과정에서 쉽게 결론이 안 나기도 하고, 외과 의사가 수술 당일 직접 환자의 몸을 열어봤을 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라 갑자기 수술 방향이 바뀌기도 했어요. 심장은 직접 보는 게 마지막 진단이기도 해서, 다른 장기 수술과 달리 갑자기 수술 방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수술 방향이 갑자기 바뀌게 되면 계획이 달라지면서 시간을 끌게되고, 환자의 운명이 바뀔 위험도 있습니다.

양동현 교수 심장 수술은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되거든요. 수술 중에는 심장이 혈액이 원활하게 돌지 않는 허혈상태가 되는데, 이 시간이 길어지면 심장이 잘 회복되지 않고 생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심장 수술 계획은 달라지지 않는 게 좋아요.

윤태진 교수 심장외과의는 해녀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웃음). 무슨 말이냐고요? 해녀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 전복이나 해삼, 성게 등 각종 해산물을 따와야 해요. 그런데 정확히 전복이 어디 있는지, 해삼이 어느 바위에 있는지는 모릅니다. ‘이쯤 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잠수하죠. 그런데 예측과 실제가 다르면 바닷속에서 헤매게 됩니다. 시간을 허비하면서요. 이것저것 다 따서 올라와야 하는데 헤맬수록 시간도 짧아지고 따올 수 있는 해산물 수도 적어지죠.

외과의도 환자가 안전한 시간 내에 이것도 제거하고 저것도 똑바로 만들어두고 수술을 끝내야 합니다. 심장 초음파만 보고 수술에 들어가면 ‘이쯤 있겠다’ 하고 들어가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3D 프린팅 모형이 있으면 ‘저기에 뭔가 있다’라고 정확히 알고 들어가는 거라, 망설임 없이 빠른 시간 내에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채로 수술을 끝낼 수 있습니다.

양동현 교수 영상의학과 의사들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CT 영상을 볼 때 영상의학과 의사들도 ‘이쯤이 문제다’라고 생각하고 외과 의사에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3D 프린팅으로 모형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외과의가 수술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의견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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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실제로 3D 프린팅을 이용해 목숨을 구한 환자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요.

윤태진 교수 양대혈관우심실기시증, 심실중격결손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던 아이가 기억나네요. 3D 프린팅 제작을 처음 한 건이기도 합니다. 치료가 매우 어려워서 이 환자 치료법에 대해 전국 소아심장 전문의 집담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했습니다. 그러다 세번에 걸친 단심실 교정으로 수술하려 했죠. 그러다 양 선생님께 3D 프린팅을 이용해 이 환자의 심장을 모형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만들었죠(웃음). 이후 심장을 들고 가 집담회에서 논의한 결과, 양심실 교정으로 수술 전략이 바뀌었습니다. 2016년 6월, 기형 심장을 정상적인 심장처럼 바꾸는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아이는 매우 건강한 상태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양 교수님과 저는 3D 프린팅 기술 적용의 장점이 매우 크다고 판단해 치료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양동현 교수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온 세 살 복잡심장기형 환자가 기억납니다. 회의에서 무척 논란이 되었죠. 단심실 교정이냐 양심실 교정이냐로 의사들 의견이 팽팽했어요. 구조상 워낙 복잡한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뽑아내야만 했어요. 10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모델이 만들어진 이후, 단심실 교정이 주된 의견이었는데 양심실 교정으로 수술 전략이 바뀌었어요. 윤 교수님께서도 수술을 잘 해주셔서, 수술이 끝난 후에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CT를 찍어봤는데 아이 경과가 참 좋더라고요. 저는 영상의학과 의사라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뿌듯함을 느끼기 쉽지 않았는데, 이때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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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협진 치료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윤태진 교수 아무래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수가를 인정해주지 않거든요. 3D 프린팅으로 모형 심장을 한 번 만드는 데 가격만 200만원 정도 듭니다. 다행히 저희는 병원에서 보조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보조는 올해까지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기간이 지나면 수가가 인정 안 되니 비급여 등으로 환자에게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의사들이 욕심을 채우려는 것도 아니고, 환자에게 좋은 방향을 결정하려면 꼭 필요한 건데… 이게 참 쉽지 않네요. 협진과 관련한 전반적인 수가 인정이 필요합니다.

양동현 교수 우선 윤 교수님 말씀대로 가격이 제일 걱정입니다. 수술 장비도 아니고, 스탠트처럼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보니 애매하죠. 이건 여러 과의 의사들이 ‘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 게 최선인가?’에 대한 물음에 합리적인 답을 제시해주는 도구거든요. 의사도 이걸로 돈을 벌지 못해요, 현재 구조로는. 제가 CT 한 장을 판독하면 병원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간주가 됩니다. 하지만 몇시간씩 3D 프린팅에 필요한 심장 데이터를 뽑는 건 작업으로 간주되지 않아요. 무슨 일을 하는지 티가 안 나는거죠. 환자 입장에서는 절실할 수 있는데요. 다행히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이를 양해해주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병원에서도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없는 노릇이죠. 지원이 끝나면 환자는 사비를 털어서 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혀도 못 하는 구조입니다.

헬스조선 두 분처럼 다른 과의 의사들끼리 협진이 잘 이루어지려면 어떤 부분이 중요한가요.

윤태진 교수 협진을 이끄는 존재는 환자예요. 환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협진이 됩니다. 작은 행동 하나라도, 단 한 가지의 가능성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게 협진입니다. 환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있어야 하죠. 결국 의사끼리 친해야 한다거나 그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협진이 잘 되는 병원을 보면 의료진의 윤리 기준이 상당히 높아요.

양동현 교수 협진이라는 의료 행위는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무척 어려운 가치입니다. 병원에서 이를 위해 의료진들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어요. 정책적으로 투자하고, 의료진이 협진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적인 배려를 해줘야겠죠. 물론 이윤을 남겨야 건물도 짓고 새로운 의료기기도 사겠지만, 병원이 환자 안전을 위해 조금씩 의료진들을 배려하는 게 필요하겠죠. 물론 우리 병원은 그게 가능해서 제가 여기 있는 거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