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의료 컨퍼런스 테드 메드(TED MED) 지상중계
미국 스탠포드대학 러스 알트만(Russ Altman) 교수는 무심코 섞어 먹은 약이 우리 건강에 생각지 못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항우울제와 콜레스테롤억제제를 동시 복용할 때 고혈당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여러 약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다 보면, 병의 부작용뿐만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 개발 등의 좋은 시너지 효과도 발견할 것으로 기대했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테드 메드(의학 관련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세계적인 의료 컨퍼런스) 강연에서다.
러스 알트만(Russ Altman)은?
러스 알트만은 스탠포드대학의 생명공학 및 유전의학 분야 교수다. 정보기술을 활용해 의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연구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미국식품의약국 과학위원회(FDA Science Board) 의장을 맡은 바 있다. 현재 미국국립보건원(NIH)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만약 여러분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유로 두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약이 상호작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저는 연구를 통해 두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할 때생각지 못한 부작용(Adverse Events)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두 약은 바로 파록세틴(Paroxetine·항우울제 종류), 프라바스타틴(Pravastatin·콜레스테롤억제제 종류)입니다. 두 가지 모두 FDA의 승인을 받은 약입니다. 우울증과 고혈압이라는 서로 다른 이유로 복용하는 각각의 약을 동시에 투여할 때, 혈당이 높아질 수 있는 부작용을 확인했습니다.
쥐 실험에서는 혈당 수치 3배 이상 상승
약이 우리 몸속에서 서로 만났을 때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일일이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약물 간의 상호작용은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약이 따로 작용할 때와 함께 작용할 때를 비교해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구 주제로 잡은 것은 ‘혈당’입니다. 비만, 당뇨병 등 미국인이 많이 걸리는 질환을 생각해보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죠. 일단 무작위로 고혈당 반응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FDA 자료를 통해 약물 치료 중 혈당이 올라가는 부작용과 이에 따른 생리적 증상(피로, 식욕 변화, 소변 습관 변화)을 함께 정리했습니다. 그러던 중 각각의 약을 먹었을 때는 혈당 수치에 변화가 없지만, 서로 다른 질환을 치료하는 두 가지 약을 함께 먹었을 때 혈당 수치가 올라가고, 그에 따른 생리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두 약을 같이 복용하는 것과 혈당 수치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버드, 밴더빌트, 스탠포드 세 대학병원에 문의하여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1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두 약을 같이 투여했을 때 혈당 수치가 오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도 진행했죠. 쥐 실험을 통해 ‘두 약을 함께 투여했을 때 혈당이 올라가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세 그룹으로 나눠, 1그룹에는 파록세틴만을, 2그룹에는 프라바스타틴만을, 3그룹에는 두 약을 모두 투여했습니다. 그 결과, 두 약을 모두 투여한 3그룹에서 혈당 수치가 3배 이상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검색 엔진 활용해서도 부작용 입증해
위 연구 결과만으로도 파록세틴과 프라바스타틴 두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것이 혈당 수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두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환자들이 혈당 증가에 관련해서 부작용을 겪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서 Bing, Yahoo 같은 검색 엔진에서 두 약물(파록세틴과 프라바스타틴)과 함께 입력되는 검색어를 정리했습니다. 식욕 감퇴(loss of appetite), 피로(fatigue), 잦은 소변(urinating a lot, peeing a lot) 등 혈당이 과도할 때 나타나는 증상을 검색어로 정리하니, 총 50개로 간추릴 수 있었습니다. 검색 엔진 전체에서 이러한 검색어가 하나라도 나타날 확률은 0.5%였습니다.
그런데 둘 중 한 약인 항우울제 파록세틴을 검색하면 고혈당 증상으로 표현되는 검색어들이 함께 나타날 확률이 2%로 증가했습니다. 또한 콜레스테롤억제제 프라바스타틴을 검색하면 과혈당 증상로 표현되는 검색어들이 함께 나타날 확률이 3%로 증가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약을 모두 검색창에 입력했을 때, 고혈당 증상 검색어가 나타날 확률이 10%로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는 발표되었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각종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항우울제 종류인 파록세틴과 콜레스테롤억제제 종류인 프라바스타틴을 동시에 복용하면 과혈당으로 인한 부작용 증상이 나타남을 확인했습니다.
이 결과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고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처방받을 때 다른 약을 선택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연구 결과의 의의를 단순히 특정 두 약의 부작용을 발견했다는 데 두지 않습니다. 약들의 놀라운 상호작용에 대해서 깨달았으며, 새로운 연구 방향과 가능성도 찾았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큽니다. 서로 다른 치료 목적으로 여러 약물을 각각 섭취할 때 나타나는 반응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세 가지 약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여러 약을 같이 복용할때 나타나는 작용을 연구해서 그동안 치료할 수 없거나 효과 없던 병의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할 수도 있을 거라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