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천지 몽골초원… 문명을 거부한 바이칼호…“原始 자연에서 내 영혼은 위로받았다”

세계로 떠나는 힐링여행(몽골ㆍ바이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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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텔렐지국립공원. 푸른 하늘과 구름, 초원, 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 2% 부족해서 힐링게르의 하룻밤

힐링여행의 방법은 불편함을 피하지 말고 적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몽골은 힐링여행에 제격이다. 몽골은 여행하기에 2% 부족한 듯한 나라다. 그런데 시각을 바꾸면 3% 넘치는 나라다. 힐링여행은 맑은 공기, 파란 하늘, 그리고 멀쩡한 두 다리만 있으면 가능하다. 몽골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내 두 다리로 걸으면서 맑은 공기, 푸른 하늘을 내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니 맑은 공기의 세상이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곡예사처럼 흘렀다. 시시각각 초현실주의 화가처럼 마음먹은 대로,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몽골인의 삶을 알려면 그들의 이동식 천막인 게르에서 하루쯤 자 봐야 한다. 나는 벌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기는 질색이다. 초원에 지은 천막이라서 벌레가 많을 것 같아 미리 걱정했다. 그런데 모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길을 잃은 파리 몇 마리가 돌아다녔다. 비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게르 안을 몽골인들이 호텔처럼 청결하게 했기 때문이다.

게르 밖은 푸른 초원의 바다 같았다. 클로버가 초원에 양탄자처럼 피어 있었다. 네잎 클로버가 아닌 세잎 클로버를 찾아 뛰어다녔다.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지만, 세잎 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다. 몽골 초원에서는 네잎 클로버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사방에 널려 있었다. 오히려 행복을 가져다 주는 세잎 클로버를 찾는 게 더 재미 있었다. 우리 삶에서도 행운보다는 행복부터 먼저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행복은 기쁨을 즐기는 일이다. 세잎 클로버를 찾아내는 것은 기쁨이었다. 행운을 피하고 행운을 버렸기 때문에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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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의 삶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자봐야 하는 이동식 천막 ‘게르’. 뒤에는 테렐지국립공원의 명소인 거북바위가 있다.

◇ 행복을 가져다준 테렐지의 세잎 클로버

테렐지국립공원 초원을 걷는 일은 행복이었다. 초원 걷기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었고,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 길이란 내가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빨리 걸어야 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더디게 걸어야 할 길이었다. 바람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햇빛을 피해야 할 이유는 더욱 더 없었다. 모두가 100% 순수한 자연산이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신의 은총이었다. 흐드러지게, 그렇지만 조금씩 떨어져 피어 있는 야생화들. 이름을 모두 알아야 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웃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에델바이스는 유별나게 봐 둬야 할 야생화가 아니었다. 흔해서가 아니라 너무 천진난만하기 때문이었다. 겨울바람에 터진 빠알간 볼을 숨기려는듯 수줍어하며 싸리집 문간에서 숨던시골집 대여섯살배기 계집애 얼굴 같아서였다.

테렐지의 야생화는 키가 작았다. 환한 얼굴을 하고 모두 연애하는 것 같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햇빛과 입맞춤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 동안 겨우 목 내민 삶이다. 한 달만 더 지나면 신의 은총으로 모두가 하얀 눈 속에 묻혀 버릴 것이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거나 거드름을 피울 때가 아닌 것이다. 긴 겨울을 지내려면 그럴 수 없다. 그러니 시내 화원의 꽃처럼 키가 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굴에 꽃단장 할 여유도 없다. 빨리 몸매를 가다듬고 벌을 맞이해, 연애하고 새로운 씨앗을 퍼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야생화는 관광객들에게 밟히는 게 고문과 같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됩니다” 하고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발걸음보다 더 무거운 눈(雪)도 참아낼 줄 아는 지혜가 있다고 했다. 그 지혜를 배우는 게 바로 힐링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 우리가 살아온 삶은 끼우뚱거림의 연속이었다. 야생화는 그 어떤 압력도 버텨낸다. 잎사귀와 꽃이 무참하게 찢겨 나가도 신음 하나 내지 않고 참아낼 줄 안다. 눈 내리기도 전에 서로가 다른 봄을 약속하면서 회심할 줄도 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주고 받고 어쩌고 하는, 그런 것들 따지다 보면 고달파진다. 야생화는 말과 소, 양들과 몸을 부대낄 줄 안다. 서로가 삶을위해 연결돼 있다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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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 열차 식당 칸. 러시아 국경에 진입한 뒤부터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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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까지 타고 간 시베리아대륙횡단열차

◇ 데카브리스트들의 순애보

울란바토르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울란바토르는 해발1300m에 위치한 몽골 제1의 도시로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다. 몽골 수흐바타르에서 출국 심사, 러시아 나우시키에서 입국 심사를 거쳐 23시간여 만에 도착한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곳으로, 시베리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이다. 한때 시베리아 관할 총독이 살던, 350여 년 역사를 가진 행정·경제·문화 중심지다. 17세기 말부터 중국과 몽골로 통하는 무역항 역할을 했으며, 군주제와 농노제의 폐지를 주장한 12월 혁명 당원데카브리스트들과 죄수들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러시아 10월혁명 이후 볼셰비키 혁명군과 정부군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렇게 시베리아에 유배된 수 많은 죄수를 감독.관리하던 총독은 황제 직속이었다. 당시의 죄수들은 주로 정치범이었다. 그런 정치범을 데카브리스트, 즉 ‘12월의 혁명가’라고 불렀다.

1825년 12월 14일의 일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귀족출신의 청년 장교를 위시한 3000여 군대가 황제 앞에서 거사를 일으켰다. 이들은 즉위식을 가지던 차르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대신 농노제 폐지와 전제정치의 근절을 요구했다. 이들 데카브리스트는 가차없이 진압당했다. 그날 해가 저물기 전에 민주화운동의 막이 내린 것이다. 주동자 5명은 즉시 처형됐고, 120여 명이 시베리아로 유배됐다. 모진 강제노동과 고통에서 견디면서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이르쿠츠크였다.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은 유배 중인 남편들보다 먼저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이웃처럼 함께 지냈다. 정치범 남편들은 발목과 손목에 무려 22kg의 쇠고랑을 차고 눈길을 걸었다. 그 아내들에게 닥친 고난도 마찬가지였다. 이혼과 재가를 하면 귀족작위를 그대로 유지해 준다는 차르의 회유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따라 1년 동안이나 걸어 도착한 이르쿠츠크. 그들은 재산과 지위는 잃었지만, 대신 이르쿠츠크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을 얻었다.

데카브리스트 중에서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순애보를 남겨준 이들이 바로 발콘스키 공작과 그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트루베츠코이 공작과 그의 아내예카테리나다. 그들은 한 동네 이웃으로 아담한 집을 짓고 살았다. 이제는 그집이 기념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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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헬스조선 몽골ㆍ바이칼 힐리여행'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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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바이칼 힐링여행 경로

◇ 볼시예 코티, 자작나무숲을 걷다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호. 우리 조상과 똑같은 피를 나눈 코리족의 영성을 품어준, 세계에서 가장 깊은(수심 1742m) 담수호다. 둘레 2200km,남북 길이 636km, 면적 3만1500㎢로 초생달처럼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이 광대한 호수의 서남쪽 한쪽 귀퉁이에 볼시예 코티라는 ‘작은 점’이 있다. ‘큰 고양이’라는 뜻의 볼시예 코티는 알혼 섬을 최고로 치는 한국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이르쿠츠크를 찾는 유럽인과 러시아의 트레킹 마니아라면 반드시 들렀다 가는 곳이다. 이르쿠츠크에서 차량으로 1시간 30분쯤 걸리는 리스트비얀카까지 간 뒤, 페리를 타고 다시 20분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다. 리스트비얀카는 이르쿠츠크에서 7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바이칼호와 앙가라강(江)이 만나는 곳에 있다. 시베리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볼시예코티는 바이칼호에 접해 있는 육지지만, 육로를 통해 차량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에 마치 섬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리스트비얀카까지 21km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바이칼호를 왼쪽에 끼고 이어지는 좁다란 흙길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불어오는 미풍으로 땀을 씻으며 천천히 걷다 보면 자작나무와 야생화 천지가 나타난다. 우리 일행은 8km만 걷기로 했다. 문명의 소리는 전혀 없는 곳, ‘자작자작’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가 영원한 구원의 소리처럼 느껴졌다. 잠시 휴식하는 동안 맑디 맑은 물에 발을 담갔다. 용감한 일행 몇 명은 옷을 입은 채 호수(실제로는 바다처럼 느껴지는)에 뛰어들었다. 진정한 치유를 경험하고 싶은 트레커들만 살짝 왔다가 슬그머니 떠나는 곳. 볼시예코티에서 내 영혼은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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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란 예쁜 별명을 가진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세계 최대 담수호란 위용에 걸맞게 한여름에도 물이 매우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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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기슭을 따라 호젓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볼시예코티. 자작나무와 소나무, 야생화 천지다.

◇ 앙가라강(江)의 전설

바이칼호의 물이 밖으로 흘러가는 유일한 강이 앙가라다. 물은 앙가라강을 지나 이르쿠츠크를 감아돈 뒤 예니세이강에 도달한다. 앙가라강 덕분에 이르쿠츠크는 중국, 몽골, 러시아 극동지역,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의 요충지가 됐다. 앙가라는 ‘바이칼의 딸’로 불리는 전설속의 공주다. 바이칼 왕에게는 336명의 아들이 있었다. 딸을 두는 게 소원이었던 왕이 빌고 빌어 얻은 늦둥이가 앙가라 공주다. 왕은 사윗감을 찍어 두고 앙가라를 시집보내려 했다. 하지만 앙가라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웃 나라 왕자인 예니세이. 왕의 고집을 꺾지 못한 앙가라는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이를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딸을 매우 사랑했기에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앙가라가 예니세이 왕자를 찾아 떠나는 길은 험하고 강은 깊었다. 왕이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징검다리를 놓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큰 바위를 몰래 던졌다. 아뿔사! 그 바위는 공주의 머리위에 떨어졌고, 왕은 딸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탄식한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앙가라 공주와 예니세이 왕자, 그리고 바이칼 왕. 그들의 울음 소리가 앙가라의 물길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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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앙가라 강변의 야경

◇ 오물 굽는 연기 바이칼의 제례의식 닮아

바이칼호를 이해하려면 이곳에서만 사는 생선인 오물(Omul) 맛을 봐야 한다. 바이칼호에 가지 않고서는 구경도 할 수 없고 맛도 볼 수 없다. 오물은 연어과 생선으로 태생은 바다다. 2500만년 전, 호수가 되기 전까지 바이칼 지역은바다와 연결된 강이었다. 바다에서 올라와 헤엄치던 연어들은 갑자기 바다로 돌아갈 길이 막히자 호숫물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천천히 연어는 민물고기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생김새와 맛은 연어와 딴판이지만, 속은 여전히 연어다.

오물은 바이칼 호수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다. 오물을 잡아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뒤 파는데, 1년에 30만t 정도 잡힌다고 한다. 보드카와 딱 어울리는 맛이다. 호수에 배를 띄우고, 오물을 안주 삼아 마시는 보드카 한 잔은 바이칼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바이칼 호수를 걷노라면, 오물 굽는 연기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 곳사람들이 매일 올리는 제사의식이기도 하다. 풍요를 기원하는 연기다.


“시베리아횡단열차, 바이칼호, 자작나무 숲 문명의 소리가 전혀 없는 곳에서
맑디맑은 물에 발을 담갔다.
앙가라강의 슬픈 전설이 그림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곳에서 진정한 치유를 경험하면서 내 영혼은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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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러시아의 대표적인 술 보드카 / (오른쪽)러시아의 주식인 빨과 수프 ‘보르쉬’

[More Tip]
몽골·바이칼 200배 즐기기

ㆍ테렐지국립공원

헨티산맥 기슭에 위치한 몽골 최고의 휴양지다. 울란바토르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소요. 화강암 지대 위에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 깎아지른 듯한 절벽, 숲, 초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름철에는 에델바이스와 야생화가 만발하다. 게르에서 반드시 자봐야한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이용하고, 샤워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몽골 문화를 제대로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다. 한국인이 많이 없는 곳이라면, 양고기 등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으니 고추장이나 김치 등을 챙겨 가는 게 좋다. 밤낮의 온도차가 크기 때문에 여름에 가더라도 긴소매 옷이나 바람막이 점퍼가 필요하다. 승마 체험을 하려면 긴 바지가 필수다.

ㆍ시베리아횡단열차
보통 4인용 침대칸을 이용하는데, 외국인과 함께 타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화체험을 하는 기회로 삼자. 몽골과 러시아 국경을 통과할 때 출입국 수속에 걸리는 3~4시간 동안, 그리고 각 역 정차시간 동안 열차화장실은 이용할 수 없다. 정차시간이 10분 이상인 역은 역화장실을 10루블 정도로 이용할 수 있다. 몽골 역에서는 몽골 화폐만, 러시아 역에서는 러시아 화폐만 쓸 수 있다. 흔히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열차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는 노선이지 열차가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러시아 노선은 9288km에 달하고, ‘베이징~몽골 울란바토르~모스크바’를 잇는 몽골 횡단 노선은 7620km 길이다. ‘중국 하얼빈~러시아 치타~ 보스크바’를 잇는 만주 횡단 노선도 있다.

ㆍ바이칼호 즐기기
‘성스러운 바다’, ‘세계의 민물 창고’, ‘시베리아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 ‘러시아의 갈라파고스’ 등으로 불린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고, 깊이(1621m)는 세계 호수 중 가장 깊다. 바이칼은 원주민의 언어인 타티르어로 '풍요롭다'는 뜻.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있는 알혼 섬을 비롯해 26개 섬이 있다. 호텔 밖으로 나가면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간단한 러시아어 회화 책을 꼭 챙겨가는 게 좋다. 호숫가는 7~8월에도 한기가 돈다. 바람막이 점퍼는 항상 구비해야 한다. 바이칼에서 만나는 오물(생선) 요리를 먹으려면 찜이 낫다. 훈제요리는 엄청 짜다. 러시아 전통 사우나인 반야체험을 할 때, 물이 너무 뜨거우니 화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사우나와 호수를 오갈 때 알몸을 보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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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상 박사
연세대 명예교수(교육학·철학 박사)
지난 8월 헬스조선의 ‘몽골·바이칼로 떠나는 쉼여행’에 힐링멘토로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5년 여름에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