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환자의 힐링 투게더
하지만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말 못할 고통에 대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 고통과 상처를 문학 속 주인공을 통해 혹시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대소설은 삶과 인간의 손상을 질병을 빌려 자주 표현한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하루카의 개인적 심리 묘사, 또는 애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과의 접촉 상황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미혼여성의 사회 적응 심리상태를 진지하게 그러나 무거움이 지나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난 종이니 뭐니 그런 건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아무리 잘라도 다시 살아난다니 정말 재밌잖아? 내가 유방암 환자잖아. 그러니까 플라나리아 같은 거로 다시 태어난다면 떼어낸 가슴도 저절로 쑥쑥 자랄 거고, 그러면 복원 수술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돈도 안 들고…” -야마모토 후미오,《플라나리아》 중에서
암으로 오른쪽 유방을 들어낸 스물다섯 살의 하루카는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가 되기’를 원한다. 머리를 잘라 버려도 뇌까지 되살아나 기억을 되찾는 놀라운 재생력을 지닌 벌레를 선망한다. 다른 모든 것은 부럽지않고 ‘원래대로’라는 표현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불가피한 수술이라도 눈에 보이는 신체 부위를 제거당할 때는 상실감이 더욱 크다.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 상징이며 동시에 모성의 거룩한 정체성인 유방의 절제는 여성성이 상실된다는 충격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카는 자신의 정체성을 비틀어 학대하고 있다. 일부러 입소문 날 것을 알면서도 하루카는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절제술을 했다고 소문을 낸다. 그러고선 “유방암이라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고, 유방을 절제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기도 없고 특징도 없다”고 말한다.
절제술에 이은 복원수술 역시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후유증 때문이다. “유방복원수술을 할 때 피부를 옷의 주름 잡듯이 접어서 꿰맨 곳이 있는데, 이따금 몸이 달아오르면서 거기가 지독히 가려워요. 옷속이라 긁을 수도 없고. 어떤 땐 정말 미치겠어요.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더구나 가임기 여성인 그녀에겐 임신, 출산, 피임 등 여성만의 이슈에 대해 깊은 근심이 몰려와 쌓인다. 수술요법, 방사선요법, 화학요법, 호르몬요법 중에서 그녀는 수술과 호르몬 항암요법을 받고 있다. 이 치료는 그녀의 혈액 속 여성호르몬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그녀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다. 구토감과 어지럼증, 그리고 호르몬 주사에 대한 불안감도 예외없다. 소설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유방암 수술 이후 유방을 복원한 여성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수술받은 쪽 팔의 림프관 순환 장애로 붓기도 하고, 드물지만 수술할 때 신경이나 근육을 다치면 어깨 관절의 움직임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하루카는 이렇게 누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이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다닌다. 복원 수술 때문에 생긴 불편함도 아무렇지 않게 공론화하고 떠벌리던 그녀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유방암 수술에 대해 인정하고 접근하는 것에는 크게 분노한다. 친절하게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이 정성껏 보내준 유방암 관련 서적과 플라나리아 탐색자료를 받고 나서 “저는요, 그런 책은 되도록 읽지 않으려 해요. 조사를 해본들 젖꼭지가 다시 생길 것도 아니고, 플라나리아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라며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은 감사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책이나 플라나리아의 자료를 읽을 마음은 전혀 나지 않아 아무렇게나 다시 상자에 담아 장롱에 처박아버렸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큰소리를 지르며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 뒤로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두 번이나 연달아 무단결근한다. 유방암 수술 후의 자신과 진정한 화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이를 인정하고 다가오는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질리 없는 것이다.
하루카의 번듯한 애인은 병명을 듣자마자 꼬리를 말아 넣고 냅다 달아났다. 하지만 ‘달아나지 않고 매일 찾아와 끈기 있게 위로해주고, 수술 직후에도 걱정스레 들여다보고 있던’ 새로운 애인인 효스케가 있다. 그는 하루카가 ‘이따금 정서적 균형을 잃고 미쳐 날뛰면 젊은 사람답게 외려 자기가 화를 내며 “이미 걸려버린 암을 어쩌란 말야! 그냥 포기해!”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주 가버리지는 않는’ 호인이다. 그는 하루카에게 “한 번만 더 유방암 환자라는 것을 말하면서, 정체성 운운했다가는 정말 헤어질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하루카는 효스케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유방암 환자임을 또 불쑥 말한다. 그리고선 “나가는데가 어디예요?”라고 묻는다. 주변과 어긋나는 자신의 속마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유방암 수술 후의 자신의 모습에서 탈출하고 싶은 그녀의 의지가 담긴 한마디다.
많은 유방암 환자가 중증 스트레스로 힘들어 한다. 이같은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복귀요법이다. 그래서 의료진은 환자가 수술받자마자 일상생활로 즉시 돌아가게 하고, 유방재건술이나 인공유방 착용 등의 수술을 시행한다. 이는 단순한 유방의 회복이 아니다. 나와 가족,사회와의 소통을 회복하는 것이다.
모든 질병은 병의 자연 경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과도 거친다고 한다. 아프다는 건 그 병뿐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관계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나를 포함한 사회가 취해야 할 자세가 있다. 최근에는 ‘핑크리본 캠페인’ 등을 통해 유방암 환자에 대한 사회 배려심이 많이 높아졌다. 아마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그다음은 자신의 몫이다.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유방 없는 나를 경험하자. 힐링의 완성은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며, 힐링 투게더의 종결은 자신을 용서한 후에야 가능한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다.
“자신의 입으로 유방암 환자임을 떠들던 하루카도 정작 유방암 관련 서적을 지인에게 선물받자 울고, 분노한다.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아직 자신의 새로운 유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교수. ‘유담’이라는 필명으로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한다.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함춘문예회회장, 쉼표문학회 고문, 문학의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문학 속에 담긴 건강이야기를 고찰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4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