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실명질환 예방 가이드
‘몸이 백 냥이면 눈이 구십 냥’이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시대다. 의술의 발달로 수많은 노인성 질병이 정복되고 있다. 그리하여 건강하게 100세를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을 때쯤, 시력에 이상이 생기면 현대의학으로 다져 놓은 다른 모든 건강이 헛수고가 된다. 실제로 팔십 청춘을 자랑하는 정정한 체력을 갖고서도 시력에 문제가 생겨서 ‘삶의 질’ 백 냥 중 구십 냥을 잃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뇨병 등 다른 질병의 합병증이 아닌, 순수 안과 질환 중에서 시력을 빼앗아가는 대표적인 병은 녹내장과 황반변성이다. 두 질병 모두 한국인에게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질병은 일단 발병하면 현대의학으로도 근본 치료하거나 상태를 되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바른 생활습관으로 예방하고, 최대한 초기에 찾아내서 진행을 억제하는 치료를 해야 한다.
1 한국인의 녹내장
안압, 정상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원래 전 세계적으로 실명을 일으키는 질환 1위는 백내장이었다. 하지만 백내장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혼탁해진 수정체를 초음파로 제거한 후 인공수정체로 바꾸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해졌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백내장이 더 이상 주요 실명질환으로 생각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 실명질환 2위던 녹내장은 아직도 뚜렷한 해법이 없다. 일단 발생하면 회복되지 않는다. 녹내장은 나이와 더불어 늘어나는 질환인데 최근 한국녹내장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인 40세 이상 인구 중 녹내장 유병률은 약 4.5%에 달했다.
잘 걸리는 한국인은 이런 사람들
녹내장은 시신경 손상이 원인인데, 시신경이 왜 손상되는지 정확히 모른다.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첫째는 시신경과 시신경을 지지하는 구조물들이 눈의 압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 기계적으로 눌려서 손상받는다는 학설이다. 둘째는 시신경 혈액순환 장애 때문에 시신경이 손상된다는 학설이다. 안과학계에서는 보통 두 가지 원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한국녹내장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인 개방각녹내장 환자 중 약 77%가 안압이 높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안압이 높지 않은 녹내장을 ‘정상안압녹내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 녹내장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 학설인 ‘혈류 이상’이 더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정상안압의 범위를 10~21mmHg로 보지만 이는 대규모 인구를 대상으로 한 것일 뿐, 개개인의 정상안압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같은 19mmHg 안압의 눈이라도 녹내장 없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녹내장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안압이 높지 않지만 녹내장이 발생하는 이유는 안압에 비해 시신경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녹내장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안압이 정상범위라 하더라도 최대한 안압을 낮추어서 시신경이 더 이상 손상되지 않게 하는 것이 녹내장의 가장 중요한 치료다.
상대적으로 약한 시신경과 관련된 위험요인으로는 녹내장 가족력, 고도근시가 있다. 그 외에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도 시신경 손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으면 시신경으로 이어지는 미세혈관의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겨 시신경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그 결과 시신경이 손상돼 녹내장이 걸린다. 또 고도근시가 있으면 녹내장 발병률이 3배 정도 높다. 고도근시인 눈은 눈이 앞뒤로 길게 늘어나면서 안구 끝 부분의 시신경을 압박한다. 그러면 시신경이 손상돼 녹내장으로 이어진다. 20~30대에 생기는 녹내장은 상당수가 고도근시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한국인 녹내장’의 치료법
한국인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되는 녹내장은 ‘개방각녹내장’이다. 왜 개방각이라고 부를까? 눈의 구조와 관련 있다. 사람의 눈 속에서는 각막과 수정체에 영양분을 보내주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방수(房水)라는 투명한 액체가 돌고 있다. 방수는 섬모체라는 조직에서 생성돼 눈 속을 지나간 다음에 섬유주라는 조직을 통해 눈 바깥으로 빠져나가서 혈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풍선 속에 물이 계속 차듯이 방수가 제대로 유출되지 못하면 안압이 올라간다. 개방각녹내장은 방수가 섬유주까지 도달하지만 그 이후부터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안압이 올라가게 된다. 병은 수 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고, 중증이 되기 전에는 환자가 별다른 시력 이상이나 안구 통증 등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발견과 치료가 늦어지는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많이 생기는 정상안압녹내장은 안압이 정상범위 내에 있는 것만 제외하면 증상이 개방각녹내장과 유사하다. 정상안압녹내장은 안압을 낮추는 안약으로 주로 치료하게 된다. 치료 목표는 시신경을 보호해서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레이저 치료와 수술은 제한적
약물 외에 레이저 치료법과 수술도 녹내장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저와 수술은 적응증이 비교적 제한적이고, 한국인에게 많은 정상안압녹내장에는 잘 쓰지 않는다.
우선 레이저 치료는 급성폐쇄각녹내장에 효과적이다. 급성폐쇄각은 눈에서 방수가 빠져나가는 통로에 홍채가 닿거나 유착돼 방수가 빠져나가지 못해 안압이 갑자기 올라가면서 발생하는데, 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이 경우 레이저로 홍채를 절개해서 방수가 지나가는 통로를 열어 주면 안압을 조절할 수 있다. 개방각녹내장에는 레이저섬유주성형술을 쓰기도 하는데, 레이저로 방수 통로인 섬유주를 넓혀 주는 것이다.
수술은 약물 부작용 때문에 약물치료를 받을 수 없거나, 약물로 안압 조절이 충분히 되지 않을 때 시행한다. 대표적인 녹내장 수술은 섬유주절제술과 방수유출장치삽입술이 있는데, 기본 원리는 방수 유출을 돕는 우회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수술은 약물치료보다 치료 효과가 큰 장점이 있는 반면, 저안압이나 눈의 염증 등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 수술 후 계속 통원 치료·관리를 받아야 한다. 녹내장 수술을 한다고 시신경이 회복되거나 떨어진 시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안과 정기검진과
올바른 생활습관이 핵심
결국 녹내장은 일찍 발견해서 올바른 약물치료로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력이 있거나 만성질환·고도근시 보유자 등 고위험군은 40세 이후 1년에 한 번씩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때 안과파트에서 안저촬영(눈에 불이 번쩍하는 사진을 찍는 검사)만 빠뜨리지 않아도 상당 부분 찾아낼 수 있다. 안저촬영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시야검사(반구 모양의 검사통을 들여다보며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불빛을 감지하는 검사)와 다른 여러 가지 검사로 확진한다. 이런 검사를 통해 녹내장을 발견하거나 고위험군으로 나타난 사람은 적절한 의학적 치료·관리와 함께 올바른 생활습관을 꼭 지켜야 한다.
대한안과학회는 녹내장 환자가 삼가야 하는 10가지 나쁜 습관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잘 익혀 두고 멀리하자.
1 흥분하지 말자.
2 넥타이를 꽉 매거나 몸을 압박하는 옷을 입지 말자.
3 금연하자.
4 알코올과 카페인 섭취를 줄이자.
5 어두운 곳에서 눈을 되도록 쓰지 말자.
6 물구나무 등으로 심장을 눈보다 높이 두지 말자.
7 누워서 역기들기 등 얼굴이 빨개지는 운동을 삼가자.
8 수영할 때 고글을 너무 꽉 눌러 쓰지 말자.
9 관악기 등 힘주어 부는 악기 연주를 하지 말자.
10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2 한국인의 황반변성
노안인 줄 착각했는데
실명 위험까지
인체에서 단위면적당 산소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망막이다. 시력을 담당하는 망막에는 1억 개 이상의 빛 감지 세포와 100만 개가 넘는 시신경 세포가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어, 우리 몸에서 대사 활동이 가장 빨리 일어난다. 망막 중에서도 한가운데 지름 1mm 정도를 차지하는 부위인 ‘황반’이 시력 유지의 핵심이다. 황반은 시력의 90%를 맡을 뿐 아니라, 사물의 중심을 보는 중심 시력을 담당한다. 따라서 사람이 나이 들면서 황반이 정상 구조를 잃게 되는 황반변성이 생기면 시야의 중심부터 보이지 않게 되고, 결국 시력을 잃는다. 황반변성은 국내에서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시야 중심부터 보이지 않게 돼
최근 황반변성을 다루는 언론 보도가 늘어나면서, 이 병명을 들어본 사람이 꽤 된다. 하지만 황반이 정확히 무엇인지, 변성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시력은 왜 잃게 되는지 아직 잘 모른다.
흔히 망막을 카메라 필름에 비유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특징이 다르다. 카메라 필름은 어느 부분이나 빛에 동일한 감도로 반응해 사진이 찍힌다. 반면 망막은 중심부인 황반에 시세포가 밀집돼 있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도 황반에 집중된다. 빛이 집중되는 부위이기 때문에 빛에 의한 손상도 쉽게 입는다. 황반에는 빛에 의한 손상을 억제해 주는 색소인 루테인이 많은데, 루테인이 노란색이어서 짙은 황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황반(黃斑)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루테인을 함유한 녹황색 채소를 많이 먹으면 황반변성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한편 변성(變性)이란 세포의 모양과 성질이 변화되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을 말한다. 달걀을 삶으면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액체 흰자위가 딱딱한 고체로 변하는데, 이것이 변성의 대표적인 예이다.
황반변성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노화이다. 나이 들면서 황반의 세포와 혈관 기능이 떨어지면 망막에서 나오는 노폐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다. 이때 망막 아래에 노폐물이 쌓이면서 원래 없던 혈관이 새로 생성되는 등(신생혈관) 황반 부위에 변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고지방식 등 서구식 식생활이 보편화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고지혈증 등 서구형 혈관 질환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런 질환은 황반 부위의 모세혈관을 막아서 황반변성을 가중시킨다.
이 질환은 60세가 넘으면서 늘어나고, 젊은 사람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화에 이어 황반변성 발병을 가져오는 두 번째 위험요인은 흡연이다. 흡연 여성은 비흡연 여성보다 황반변성 발병 가능성이 2~2.4배 높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의 흡연율이 증가하는 점으로 볼 때, 향후 30~40년 뒤에는 여성 황반변성이 크게 늘 것으로 우려된다. 황반변성은 과거 흡연량과 관계 있기 때문에, 지금 금연해도 발병 위험은 수년 이상 높게 유지된다. 따라서 황반변성 예방을 위해서라도 남녀 모두 담배는 당장 끊는 게 좋다.
황반변성이 생기면 시야의 중심 부분이 구부러져 보이면서 흐려지다가, 더 악화하면 시야 중심부에 검은 점이 생기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발생한다.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로 시력을 교정했을 때 물체가 또렷하게 보이면 황반변성이 아니다. 나이 든 사람의 경우 돋보기를 썼을 때 깨알 같은 글자를 잘 읽을 수 있으면 황반변성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황반변성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시력을 잃는 것은 아니다. 황반변성은 건성과 습성 두 가지로 나뉜다. 건성에서 시작해 습성으로 진행하며, 습성 황반변성이 실명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건성황반변성은 병이 생기되 황반 부위에 비정상적인 신생혈관으로 인한 출혈, 부종 및 망막하액 등의 병적 소견이 없는 상태이다. 건성황반변성은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다행히 건성 단계에서는 시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부분 눈이 심하게 나빠지지 않으며,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력을 비교적 오래 유지한다. 건성황반변성을 평생 노안으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건성황반변성 환자 10명 중 1~2명 정도는 습성황반변성으로 진행한다. 황반은 건조한 상태여야 사물의 상이 제대로 맺힌다. 카메라 필름이 젖으면 사진이 찍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습성 단계가 되면 황반 주위에 비정상적인 모세신생혈관이 생기는데, 이 혈관은 물이 새는 파이프처럼 혈액이 샌다. 새어 나온 혈액이나 삼출물은 황반을 적시면서 시세포를 손상시키며, 마른 뒤에는 황반 주변에 딱지처럼 앉아서 시야를 가린다. 한쪽 눈에 습성황반변성이 생긴 환자의 30~40%는 5년 안에 반대쪽 눈에도 생긴다. 습성황반변성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대부분 시력 소실을 가져온다.
한국인 습성황반변성에 좋아
습성황반변성이 오면 바둑판이나 한옥창틀 같은 격자무늬가 가운데 부분부터 휘어 보인다. 이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면 안과에 가서 안저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 습성황반변성 환자가 안저검사를 받으면 황반 부위에 신생혈관과 함께 출혈이나 물집 등이 발견된다.
습성황반변성에 흔히 쓰는 치료법이 광역학 치료이다. ‘비쥬다인’이라는 빛에 반응하는 특수한 물질을 팔에 정맥주사로 놓으면 이 물질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다가 황반 부위의 신생혈관에 주로 쌓이게 된다. 이어 비쥬다인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특수한 레이저를 쏘면 정상조직에는 영향을 덜 주면서 염색된 신생혈관 조직만 파괴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선 광역학 치료를 중요한 치료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게는 ‘결절맥락막혈관병증’이라는 형태의 습성황반변성이 서양인에 비해 유독 많은데, 광역학 치료는 이런 형태의 습성황반변성에 대한 초기 치료 효과가 비교적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신생혈관은 치료 후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1년에 4회 정도 반복치료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안구에 놓는 항체주사 치료법이 보편화하고 있다. 황반 주위의 신생혈관 생성은 VEGF(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라는 물질이 촉진한다. 황반변성 항체주사는 VEGF를 억제하는 항체를 눈동자 안에 직접 주사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환자에게서 병의 진행이 억제되는 동시에, 일부 환자에게서는 시력을 다소 회복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항체주사약은 루센티스, 아바스틴, 아일레아 등이 있다. 루센티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처음부터 황반변성 치료제로 승인받은 약품이다. 아바스틴은 루센티스와 같은 성분으로 원래 항암제로 개발됐는데 황반변성에도 효과가 입증돼 안구 주사용으로 사용한다. 루센티스는 아바스틴을 개량해 임상시험을 거쳐 눈에 사용하도록 허가받은 것이다. 항체주사는 주사 후 효과가 유지되는 기간이 길지 않은 편이어서 1개월~수개월 단위로 여러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하고, 평균 2년에 10회 이상의 주사를 맞기도 한다.
"습성황반변성이 오면 바둑판이나 한옥 창틀 같은 격자무늬가 가운데 부분부터 휘어져 보인다. 이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면 안과에 가서 안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월간헬스조선 7월호(116페이지)에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