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있어 존재한다는 '산악인 엄홍길'의 즐거운 산행
건강에는 산행이 최고다!
어린 시절 도봉산 망월사 밑에 살았던 엄홍길은 자연스럽게 산과 친해졌다. 당시 산은 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도봉산에서 바위를 탔다. 그렇게 조금씩 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문인 줄 알면서도 엄홍길에게 제1의 건강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산!'이라고 돌아왔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산행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산행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산에 가서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떤 풍광을 만나게 될까 기대하면서 머릿속에 산의 모습을 그리지요.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오랜 시간 산행해도 힘든 줄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산악인은 산행 준비물부터 특별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실 물과 간식, 여벌의 옷과 여분의 휴대폰 배터리, 랜턴 등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간식은 오이 같은 채소나 사과, 포도, 자두 같은 과일을 애용합니다. 열량을 내주는 초콜릿이나 초콜릿바도 추천할 만하지요. 홍삼절편이나 홍삼가루도 유용합니다. 홍삼 관련 제품은 히말라야 등정할 때도 휴대하면서 먹었어요. 산은 기온 차가 많이 나고 날씨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체온 유지를 위해 여벌의 겉옷을 갖고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분의 휴대폰 배터리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가을철 긴 코스의 산행을 할 때는 랜턴도 준비합니다. 산행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은 힘들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산행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법은 골고루 잘 먹는 것이다. 편식하지 않고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건강 비결은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오래 고민하지 않습니다. 될 일인지, 안 될 일인지를 신속하게 판단합니다. 된다고 판단되면 무소의 뿔처럼 갑니다. 지난 2005년 '휴먼원정대'를 꾸려 에베레스트 8750m 지점에서 희생된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도해 보고 그때 가서 안 되면 포기하는 것이 덜 후회스러우니 말입니다."
그는 <월간 헬스조선> 독자에게 건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건강해야 의욕도 생기고, 자신감도 있고, 목표를 성취할 힘도 솟아납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인생 2막, 지구를 지켜라!
그 동안 산악인으로서 숨가쁘게 달려온 엄홍길은 현재 인생의 또 다른 기로에 서 있다. 이제부터는 자연의 8000m 산이 아닌 인생의 8000m 산을 올라갈 참이다.
"히말라야에서 살아 내려온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이 살려 보내지 않았으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돼 있는 10명의 동료들처럼 땅 속에 묻혔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산이 베푼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세상에 되 갚을 차례입니다.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그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환경 다큐멘터리를 봐도 보는 것으로 그칠 뿐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히말라야는 지금 만년설이 녹고 산사태가 나고 빙하호가 터져 홍수가 나는 등 하루가 다르게 파괴돼 가고 있다. 단지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태계와 주민의 삶마저도 위협 받는 실정이다. 24년 동안 꾸준히 히말라야를 찾았던 그에게 지금 이 순간 환경운동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연 체험도 강조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은 자연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주일 동안 흙을 밟는 순간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인간의 생명 줄은 자연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자연 속으로 끌어내야 합니다. 학교의 체육시간이나 운동장이 줄어드는 것은 무척 슬픈 현실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연을 체험하면서 자신감, 도전정신, 이해심, 양보심, 희생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밖에도 그가 하는 일은 많다. 세상을 떠난 동료의 자녀와 가족을 위한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사업, 히말라야 산간의 오지마을에 학교를 세우는 일 등이다. 그는 현재 해발 3950m에 자리한 네팔 팡보체 마을에 초등학교를 짓고 있다. 교육 여건이 열악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팡보체 마을은 히말라야에서 희생된 그의 첫 번째 동료의 고향이기도 하다. 올 5월 기공식을 마쳤고 내년 3~4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또한 많은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기술과 노하우를 히말라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달하고픈 바람도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 산악인을 뒤쫓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발이 어찌나 빠른지 평지가 나타나면 뛰고, 가끔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 정도였다. 산 아래 약수터에서 약수 한 바가지를 들이킨 그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엄홍길휴먼재단 정기산행이 있다'면서 '산에서 또 만나자'고 다음을 기약했다. 한참 걸어가다 말고 뒤돌아 서서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