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막상 세상을 등지고자 하니 그 동안 내 너희들에게 죄스럽다는 생각이 절실하구나”로 시작하는 유서를 의사에게 전달하고 신발을 벗는다. 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최덕영(71·가명)노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입관을 한다. 장례식장이 숙연해지고 여기저기서 가족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입관한 최덕영씨는 알코올성 간염, 당뇨, 알코올성 만성 췌장염을 앉고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
노년기의 상실감을 술로 푸는 노인들이 많다. 직장을 잃으면서 삶의 의미가 사라지고, 친구나 배우자마저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면서 술이 유일한 낙이 되는 것이다.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신체 기능과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음주로 인한 상처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다. 비록 노인이 젊은 사람에 비해 술을 덜 마시기는 하지만 알코올의 영향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알코올은 노인의 조정, 기억 등의 뇌 기능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감정도 고조시켜 때로는 폭력을 유발하기도 한다. 노화로 인해 뇌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뇌세포 손상 및 알코올성 치매 등을 일으키기 쉽다. 더군다나 알코올로 인한 신체적인 폐해가 노화와 동반되기 때문에 더욱 그 폐해는 커지게 된다.
하지만 노인들은 고집도 세고, 변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단주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노인들의 단주를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관요법’ 이 있다. 유서를 쓰고, 입관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는 요법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과거의 그릇된 삶을 돌아보고 와해되어 있는 가족과의 긴밀한 끈을 회복시키기 위한 게 목적이다. 또한 본인의 알코올의존증에 있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삶의 종점에 다다른 노인들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과 현실감을 가져오게 해 준다.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본인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결심을 하게 하고, 의지를 가지게끔 하기가 힘들지만 일단 변화하기 시작하면 속도가 빠른 것이 노인 알코올의존증의 특징이다. 술로 허비한 세월이 긴 만큼 되돌리려는 노력 또한 크기 때문이다.
죽음을 한번 체험해 보게 하는 것이 가족과 본인에게 끔찍할 수 있다. 하지만 술로 남은 세월을 낭비한 최후가 얼마나 허망하고 쓸쓸한지 미리 겪어 봄으로써 남은 인생이 더 건강해지고 활기차게 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관 요법'도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특효약이 될 수 있다.
/ 신재정·알코올질환전문 다사랑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