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저를 포기하지 마세요

서울대 어린이병원 5층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면회시간을 맞아 20여명의 산모 틈 속에서 한 중년 남성이 말없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다. 포항에서 석재 설비업을 하는 천춘석(41)씨다. 그는 16일까지 56일째 병원 근처 찜질방에서 지내며 면회시간마다 NICU를 찾고 있다. 임신중독증 후유증을 앓고 있는 아내 대신 아들 명관이를 보기 위해서다. 첫 딸을 낳고 15년 만에 태어난 아들 명관이의 몸무게는 겨우 430ｇ. 웬만한 DMB 폰 정도다. 태어난 지 51일만에 1㎏을 넘겼지만 아직도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도 작은 몸집이다.

천씨는 “지방 대학병원에선 ‘산모까지 위험하니 아기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 서울까지 왔다”며 “태어나자마자 온 몸에 주사 바늘과 대롱, 호흡기를 꼽고 사투를 벌이는 아기를 볼 때마다 긴장되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국내 미숙아 중 최저 체중으로 태어난 명관이는 체중 1㎏을 무사히 넘김으로써 큰 장애 없이 자랄 수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천씨는 “아직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아이지만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임신 24주 만에 681ｇ의 남자 아이를 출산한 김선화(29)씨도 사산(死産)의 위기를 넘겼다. 김씨가 처음 입원했던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선 “가망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혼 5년 만에 얻은 첫 아기를 살리기 위해 서울의 대형병원들에 문의했지만 병상이 없었다. 결국 10일이 지나갔고, 양수가 터진 뒤에야 간신히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입원 통보를 받았다.

입원 다음 날 태어난 아들 은수는 지방층이 생성되지 않아 실핏줄이 보일 정도였다. 양가 친척과 친구 몇몇은 “장애아가 될 가능성이 높고,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으니 차라리 호흡기를 떼자”고 말했다. 실제로 태어난 지 두 달이 됐지만 은수의 상태는 아직 불안하다. 그 동안 폐 동맥 수술을 받았고, 앞으로도 탈장과 미숙아망막증 수술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뇌의 발달상황도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김씨는 “축하보다 염려의 말을 더 많이 듣지만 그래도 낳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며 “내게 맡겨진 생명이니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양육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저 출산율(1.08명)을 끌어 올리려는 정부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출산·양육 보조비 지원, 보육환경 개선 등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대의 다른 쪽 편에선 이미 태어난 아기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미숙아에 대한 잘못된 의학 상식과 집중 치료시설의 부족이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대한신생아학회는 2003년 현재 전국 87개 병원에서 운영중인 신생아집중치료시설이 1393병상으로, 850여 병상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아기를 낳아도 치료를 못 받거나 아예 미리 낙태·사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김한석 교수는 “아직도 개인병원에서는 임신 28주 이전 조산의 경우 ‘아기가 태어나도 사람구실 못한다’며 낙태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뇌성마비 등 장애가 남을 가능성은 극히 적으며 대부분 아무 문제 없이 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숙아(임신주 수 37주 미만, 출생 체중 2.5㎏ 미만)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90% 이상 생존이 가능하다. 뇌성마비 등 장애 발생률도 5~6%에 불과하다. 대한신생아학회에 따르면 출생체중 2.5㎏ 미만의 미숙아는 93.7%, 1.5㎏ 미만은 88.3%의 생존율을 보인다.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이철 교수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미숙아를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병원별로 미숙아 생존율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산모의 상태에 따라 1·2·3차 의료기관에 배정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