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의학계의 영웅도 논문조작해 쫓겨났다

임산부의 입덧 증세에 잘 듣는 특효약으로 서독에서 개발되었던 ‘탈리도마이드’는 약의 안전성이란 관점에서 의학의 역사에 남을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다. 임신 초기에 이 약을 복용한 산모들에서 귀나 손발이 없는 기형아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1957~1961년 시판됐던 이 약으로 인해서 1960년대 초까지 46개 나라의 1만2000명에 이르는 아기들이 각종 기형을 가진 채 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탈리도마이드의 끔찍한 부작용을 최초로 경고한 의학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부인과 의사 윌리엄 맥브라이드였다. 그는 자신이 출산을 도운 세 명의 산모들이 비슷한 기형이 있는 아기를 낳은 것에 의문을 품었고, 연구 끝에 이 약이 신생아 기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1961년 12월 영국의 의학 잡지 ‘란셋’에 보고했다. 결국 탈리도마이드는 판매가 중지되었다.

이 업적으로 의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맥브라이드는 신생아 기형의 원인을 연구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연구소장으로 취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은 자기 나라 의학 연구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이 영웅을 위해 흔쾌히 연구비를 기부했다.

세월이 흐른 1982년의 어느 날, 이 연구소의 연구원 두 명은 ‘오스트레일리아 생명과학잡지’에 맥브라이드가 제출한 논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 틈엔가 자신들이 공동저자로 올라있었을 뿐 아니라 실험 결과마저 엉뚱하게 조작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맥브라이드에게 항의하다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그 후 여러 다른 연구자들도 이런 사실을 연구소 운영위원회에 알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맥브라이드는 이들도 연구소의 재정 상태를 핑계로 해고해버렸다.

잊혀지는 듯 했던 이 사건은 5년 후인 1987년 의사 출신 기자 스완에 의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소아과를 전공한 후 과학전문 기자로 오스트레일리아 방송국에 합류한 스완의 이 기사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여론이 들끓었고, 연구소는 궁지에 몰렸으며,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얼마 후 위원회는 맥브라이드가 논문을 조작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고 의사면허까지 박탈당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의학연구를 이끌던 국민적 영웅은 이렇게 해서 학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편, 수년 동안의 끈질긴 취재 끝에 진실을 밝혀낸 스완 박사는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과학전문 기자에게 수여되는 ‘마이클 댈리 상’을 받았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