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인지행동치료(VR-CBTp)가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 환자의 망상 증상을 표준 치료와 비슷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심리학과(Department of Psychology, University of Copenhagen), 코펜하겐대학교병원 정신건강센터(Mental Health Center Copenhagen, Copenhagen University Hospital – Mental Health Services in the Capital Region of Denmark), 올보르대학교병원(Aalborg University Hospital) 공동 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는 망상과 환각 등으로 인해 사회생활과 직업생활이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특히 망상은 환자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치료를 해도 증상이 다시 나타나거나 치료 반응이 사람마다 달라 오랜 기간 관리가 필요하다. 이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널리 쓰이는 심리치료 중 하나가 ‘인지행동치료(CBTp)’다.

CBTp는 환자가 잘못 믿고 있는 생각을 점검하고, 그것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치료다. 치료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을 안전하게 경험해 보면서 불안을 줄이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이 치료는 실제 위험 상황을 안전하게 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충분한 노출 훈련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VR-CBTp다. 치료 과정을 가상현실 속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환자는 VR 헤드셋을 쓰고 버스, 카페, 쇼핑 거리, 공원, 수퍼마켓 등 실제와 비슷한 가상 공간을 경험한다. 현실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도 반복 연습할 수 있고, 노출 강도와 횟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팀은 2021년 4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덴마크 두 지역 병원에서 ‘Face Your Fears’라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환자 254명이 참여했고, 절반은 VR-CBTp를, 나머지는 표준 CBTp를 10회씩 받았다. 각 세션은 약 60~90분 동안 진행됐으며, 인지 재구성·노출 훈련·세션 간 과제 수행으로 구성됐다. 모든 환자는 기존 약물·상담 치료도 병행했다.

그 결과, 각 군의 망상 감소 효과 크기는 VR-CBTp에서 d=0.97(큰 효과), 표준 CBTp에서 d=0.75(중간~상당한 효과)였다. 집단 간 차이는 d=0.04로 유의하지 않아 두 치료법은 비슷한 수준의 효과를 보였다. 다시말해 VR-CBTp가 표준 치료에 버금가는 성과를 냈다는 뜻이다.

부작용은 사이버멀미가 있었으며, 연구와 관련된 중대한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VR-CBTp는 몰입감 있는 환경과 안전한 노출 기회를 제공하며 기존 CBTp와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며 “현실에서 노출 훈련이 어렵거나 치료 기회가 제한된 환자에게 유용한 보완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임상시험은 치료 종료 후 6개월까지 나타난 효과를 평가했기 때문에, 장기 유지 효과를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Virtual-reality-based versus standard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paranoia in schizophrenia spectrum disorders: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