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투데이=김미경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산정 특례 재등록 과정에서 골수검사와 복부 CT 검사를 요구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환자에게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주는 이러한 의학적으로도 불필요한 골수검사·복부 CT 검사를 요구하는 재등록 기준을 신속히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환우회에 따르면 6년째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83세 황모씨는 지난해 12월 건보공단 수원 동부지사에 의사 소견서와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토대로 산정 특례 재등록을 신청했으나, 복부 CT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황씨 가족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골수검사로 처음 진단 후 3개월마다 유전자 검사로 잔존암을 확인하는 질병이고, 고령인 환자가 백혈병 유발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방사능 피폭으로 상태가 더 악화할까 두렵다며 유전자 검사만으로도 재등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재차 요청했으나, 공단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는 2005년 9월부터 암 환자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증질환 산정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암 환자가 건강보험 적용 의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설계됐으며, 특례기간은 5년이지만, 치료 중이거나 재발 시 재등록이 가능하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2001년 6월 20일 표적치료제 ‘글리벡’이 식약처 허가를 받아 국내에서 시판되기 전까지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지 못하면 3~5년 사이 대부분 사망했고, 이식을 받더라도 재발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질환이었다.

그러나 ‘글리벡’과 같은 표적치료제 출시 이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10년 생존율이 90%에 육박하고, 부작용도 적어 환자 대부분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환우회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처음 진단 시 골수검사를 통해 병명을 확진한 후 혈액으로 세포유전학 검사인 유전자검사를 3개월마다 실시해 암세포 양을 측정하여 치료 경과를 확인한다”며 “산정 특례 기간이 5년이 경과할 시점에도 재등록을 위해 추가로 골수검사나 복부 CT 검사를 하지 않고, 3개월마다 실시하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해서도 충분히 재등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매일 표적치료제를 꼬박꼬박 복용하고 3개월마다 진행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관찰하는 것이 환자 모두에게 상식적인 치료 과정”이라며 “산정 특례 재등록을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골수검사와 복부 CT 검사를 강요함으로써 환자의 본인 부담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골수검사는 굵은 대바늘을 엉덩이뼈에 꽂아 검체를 채취하는 침습적 검사 행위로, 상당한 수준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따르고, 복부 CT 검사는 의료용 방사선 피폭 위험이 있는 검사 행위이며 피폭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백혈병 유발요인으로써 가급적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를 치료하는 혈액내과 또는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들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해서도 산정 특례 재등록 여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환우회에 따르면 골수검사의 경우 유전자 검사를 포함하면 최대 100만원에 달하고, 복부 CT 검사도 최대 45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산정 특례 재등록 대상 환자 수가 1만5000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검사 요구는 연간 30억원 이상의 불필요한 비용 낭비를 초래할 수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건 병원마다 재등록 기준이 상이하다는 점인데, 환우회 조사 결과,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등에서는 유전자검사와 의사 소견서만으로도 재등록이 이루어지지만, 일부 병원은 반드시 골수검사나 복부 CT 검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환우회는 “건보공단에 만성골수성백혈병 산정 특례 재등록 기준을 환자 중심 관점에서 신속히 검토하고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혈액학회 등의 전문학회를 통해 만성골수성백혈병 산정 특례 재등록 요건으로 골수검사와 복부 CT 검사가 의학적으로 필요한지 검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건보공단 수원 동부지사로부터 산정 특례 재등록을 거부당하고 한 달씩 임시연장을 받고 있는 83세 만성골수성백혈병 황모 환자가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복부 CT 검사 없이 유전자 검사만으로 재등록을 받을 수 있도록 건보공단에 적극 행정을 요구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