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으로 인해 글로벅 빅파마들이 줄줄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선언하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5월 14일까지 총 6개 기업이 수백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첫번째 스타터는 미국 릴리(Eli Lilly and Company)다. 릴리는 올해 2월 26일(현지 시간) 미국에 500억 달러(한화 약 7조 원) 규모의 생산 기지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얀센(Johnson & Johnson)은 3월 21일(현지 시간) 약 4년에 걸쳐 릴리보다 50억 달러 더 많은 550억 달러(한화 약 76조 원)를 미국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빅파마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발표 순으로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 스위스 로슈(Roche), 미국 BMS(Bristol Myers Squibb), 일본 다케다(Takeda)가 차례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6개 기업의 총 투자규모는 2750억 달러, 15일 환율 기준 우리 돈 약 387조 4750억 원 규모다.

기업 투자 규모 발표일 미국 릴리(Eli Lilly and Company) 500억 달러 2025년 2월 26일 미국 얀센(Johnson & Johnson) 550억 달러 2025년 3월 21일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 500억 달러 2025년 4월 11일 스위스 로슈(Roche) 500억 달러 2025년 4월 21일 미국 BMS(Bristol Myers Squibb) 400억 달러 2025년 5월 6일 일본 다케다(Takeda) 300억 달러 2025년 5월 8일

이러한 현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 심하게는 협박 이후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이 일시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에 그칠 뿐,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큰 비판은 미국 내 투자 결정이 주로 대규모 빅파마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미국 투자를 발표한 6개 기업은 모두 2024년 매출 순위 20위권에 드는 거대 기업들이다. 2024년 기준 이들 6개 기업의 매출 순위를 보면 얀센 3위, 로슈 6위, 노바티스 7위, BMS 8위, 릴리 9위, 다케다 16위 등이다. 결과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빅파마들만 미국 내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그 외 중소 규모 기업들은 해외 생산기지 이전으로 인한 매몰비용 때문에 쉽게 미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이다. 미국이 자사 의약품에 대해 관세 폭탄을 적용할 경우, 약값을 올려 공급하거나, 아예 의약품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다.

“트럼프 관세 정책은 멍청한 짓”

이렇게 되면 미국 내 약값도 덩달아 상승하거나, 미국민들의 저가 제네릭 의약품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값싼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대부분 이들 중소규모 제약사들이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대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거나, ‘바보 짓을 하고 있다’는 등의 원색적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관세 정책 설계자를 두고 ‘멍청이(moron)’라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 내 투자 의향을 밝힌 빅파마들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4년 후 대통령이 바뀌면 미국의 관세 정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미국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워 혁신을 가로막고, 차세대 치료제 개발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단순히 기업의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되돌리는 것만으로는 역효과만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크리스토퍼 탕(Christopher Tang)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은 대규모 제조업을 수용할 재정비 기간조차 갖추지 못했다”며 “무리하게 속도를 낼 경우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