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차의과학회가 향후 '성별 특성 연구 활성화'를 위한 용어 등재 및 학문 정체성 확립을 위해 '성차의학'과 '성차의과학'이라는 용어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한성차의과학회(회장 김나영)는 지난 24일 오후 5시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성차의학, 성차의과학: 의학한림원 용어 등재를 위한 원탁토론'을 개최했다. 지난 1월23일 출범 이후 학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첫 공식 행사이다.

이날 김나영 대한성차의과학회 회장(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서울특별시의사회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우리나라에 성차의학 외에 성차약학, 성차과학, 성차간호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면서 "'성차의학', '성차의과학' 용어가 적절한지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학회도 '성차의학' 및 '성차의과학' 용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이르렀다"며 "한국어로 적절한 용어를 선택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신중하게 논의해 연구 혁신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나영 대한성차의과학회 회장

토론회 주제 발표 역시 김 회장이 직접 맡았다. 성차의학의 등장 배경, 중요성 등 전반에 대해 설명한 그는 '성차의학' 용어에 대해 "2023년 의학학술원-젠더혁신센터 학술포럼 참가 당시 '성차의학 단어가 의학용어 사전에 있나?'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생각이 들어 의학한림원 대화창에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안 내용을 살펴보면 김 회장은 "의학용어사전 'sex-influenced, sex-limtied, sex-conditioned' 등이 있으나, 이는 한쪽 성에서만 나타나거나 우성으로 나타나는 상염색체 형질 경우이거나 X 성염색체에 있는 유전인자에 의해 나타나는 형질에 대한 용어여서 한계가 있고, '성차의학'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또 '젠더의학'이라고 규정했을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결국 '성차의학'이란 단어를 '성'뿐만 아니라 '젠더'를 포함한 의학을 연구하는 분야를 집중하는 단어, 즉 성/젠더가 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성차의과학'에 대해서는 "범위를 의학으로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높은 약학·자연과학·간호학·식품영양학·수의학·AI 분야 등 범위를 넓히는 게 우리 사회 발전과 환자의 건강을 위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제안했고, 학회를 창설하게 됐다"고 전했다.

패널토의는 이혜숙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소장을 좌장으로 △박선미 대한성차의과학회 부회장(충북의대 소화기내과 교수) △김영미 대한성차의과학회 이사(경희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은희철 의학한림원 의학용어개발 및 표준화위원회 위원(서울의대 명예교수) △노혜린 의학한림원 의학용어개발 및 표준화위원회 위원장(인제의대 의학교육과학실 교수) △송영빈(이화여대 인문과학대 교수) △최지현 건강한계례 기자 등이 논의를 진행했다.

먼저 박선미 대한성차의과학회 부회장(충북의대 소화기내과 교수)은 '성차의학 관련 국내외 학회 소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 부회장은 "성차 관련 용어에 대해 고민하던 중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학회를 조사했다"고 운을 띄었다.

대표적으로 OSSD(Organization for the Study of Sex Difference, 미국)·IGM(International society for Gender Medicine, 유럽)·The Foundation for Gender Specific Medicine(뉴욕 기반 비영리 단체) 등을 포함해 여러 해외 학회의 사례를 제시했다.

▲박선미 대한성차의과학회 부회장

이후 그는 "'성'과 '젠더'가 다른 의미가 있지만, 각 지역에서는 용어의 간결성을 위해 두 가지를 포괄해 사용하고 있었다"며 "우리 학회에서도 영문에 'sex and gender'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하나로 표시하는 방법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Biomedical Science'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Medicine'을 주로 사용하지만, 의약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며 "다른 부분을 망라하는 경우에도 'Health and Medicine', 'Study'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참고할 때 'Biomedical Science'라는 용어는 간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개인적 의견을 피력했다.

다음으로는 김영미 대한성차의과학회 이사(경희의대 생리학교실 교수)가 '성차과학과 성차약학: 기초생명분야에서 성차연구'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이사는 먼저 "의생명과학자는 연구를 시작할 때 성과 젠더라는 용어를 바르게 이해하고, 연구에서 중요한 생물학적 변수를 인식해 실험의 설계, 방법, 결과 분석, 논문 발표의 전 과정에서 이들을 적절히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기초의학에서 '젠더'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섹스'와 '젠더'는 확실히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남성 세포 자체에서 그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세포 연구에서도 '섹스'를 반드시 표기를 해야 한다"며 "'섹스'와 '젠더'가 상호작용에 의해 변화가 있는 상황이라서 동물 실험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를 반드시 구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영미 대한성차의과학회 이사

계속된 토의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특히 '성차'의 '차'와 '의과학'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먼저 은희철 위원은 "'차'의 경우 '차이'가 바로 연상되지 않는다. '성차의학'은 간결성 면에서는 우월하나, 의미 투명성 면에서는 '성차이의학'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specific'이란 용어의 경우 의학용어집 6판에서 대부분 '특이-'나 '특수-'로 통일돼 있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성특이의학'이나 '성특이의과학'을 추천드린다"고 제언했다.

노혜린 위원장은 "우선 영어 원어와 우리말 용어가 1대1 매칭되는 형태가 나중에 다른 용어가 생겼을 때 훨씬 좋다"며 "되도록 직역의 형태이면서 짧은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송영빈 교수는 '성차의학'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성차'에서 '성차별'이 연상된다는 학생들의 시선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성별로 특이하게 나타나는 증상 등을 연구하고 치료하는'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용어가 있으면 좋겠다"며, 성맞춤의학·성별맞춤의학·성차맞춤의학·성특화의학·성차특화의학·성별특화의학·성특이의학·성특성의학 등을 제안했다.

▲최지현 건강한계례 기자

한편 최지현 기자는 토론회를 준비하며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차의학'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대중적인 단어임을 강조했다.

최 기자는 "대중에서 여성의 특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어 왔고, 커뮤니티 중심의 자조 모임 같은 모임도 활발해져 있다"며 "'성차의학'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꽤 많은 사람에게 자리 잡은 단어"라고 말했다.

또한 "성차의학의 국내 도입 초기에 젠더의학 등과 용어가 혼재돼 사용되면서 혼란이 많았다. 이는 성차의학 자체의 고유성도 희석할 뿐 아니라 향후 더 넓은 다양성을 포괄하기 위한 추가적인 영역을 확보할 때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성차의학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위해서도, 향후 의학계의 다양한 포괄 범위 확대를 위해서도 성차의학과 젠더의학을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논의를 들은 김나영 회장은 현재는 학회의 안정적인 착지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회장은 국가마다 다른 사회문화적 요소가 반영되는 젠더변수 등이 현재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며, "젠더변수도 확립되지 않은 현실에서 연구가 까다로운 '젠더'보다는 명확한 '성차의학'으로 시작해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10년 뒤 젠더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상황에 맞춰 나중에 학회 이름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현재는 확실히 착지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뜻을 밝혔다.

이에 이혜숙 소장은 "미국의 연구 기관인 NIH도 처음 10년간 '성'에 집중해서 연구를 해왔고, 최근 젠더 연구에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젠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아울러 은희철 위원 역시 "1시간 동안 토론해 본 결과 현재는 확실한 연구가 가능한 '성'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