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이호동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장아이들을 위한 간식 준비를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식품을 발견하고 먹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 망설였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기한 표시 제품은 이제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식품의 유통기한 표시제도가 소비기한으로 변경되어 2023년 시행 이후 1년의 계도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된 지 올해로 2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소비기한 도입은 소비자 정보 제공과 식품 낭비를 줄이기 위해 미국·유럽·일본 등 OECD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제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의약품에도 소비자 편의를 위한 '사용기한'이 운영되는 것처럼 식품의 섭취 가능한 기한을 알려주는 "소비자 중심"의 제도로 변경되었고, 식품의 판매 가능한 기한을 알려주던 영업자 중심의 제도였던 유통기한은 역사 속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냉장 우유류 제품은 냉장 유통 환경 개선 등 낙농·유업계의 충분한 준비를 위해 2031년부터 시행된다.
소비기한은 제품에 표시된 보관방법을 준수하는 경우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한으로 과학적인 설정실험을 통해 품질변화가 없는 최대 기간을 측정하고, 여기에 제품 특성과 유통환경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안전계수를 곱하여 설정하게 된다. 보통 유통기한은 0.6~0.7, 소비기한은 0.8~0.9의 안전계수를 적용하기 때문에 소비기한이 좀 더 길어지는 개념이다.
소비기한 표시로 날짜가 연장되어 오래된 식품을 먹게 되거나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까 우려할 수 있다. 유통기한이 처음 도입되던 1985년과 비교하면 식품의 제조와 유통 환경에서 많은 것이 발전하였다. 제조사에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도입되어 90% 이상이 이를 적용하고 있고, 대형 마트의 등장과 유통단계 콜드체인 시스템의 선진화, 가정마다 냉장고 보급 등 냉장유통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소비기한은 유통·판매단계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서 설정하게 되므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비기한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주무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3가지 주요한 정책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기존 유통기한을 그대로 소비기한으로 표시하고 있어 소비기한 도입 개념에 부합하는 기한 연장이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식품 매출 규모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상위 100개사의 적용 현황과 계획을 집중적으로 점검·협의하고, 제조사에서 소비기한 설정 시 활용할 수 있도록 식품별 소비기한 참고값과 타사의 소비기한 설정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산업계 전반에 소비기한 적용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다.
둘째, 택배 배송, 오픈형 냉장고 등 유통단계에서 냉장 온도 유지가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우려에 대해 유통업체의 콜드체인 자율점검 관리를 독려하는 한편, 지방청·지자체와 협력하여 기온이 상승하는 봄·여름철을 중심으로 유통매장, 보관창고, 배송차량 등 유통단계에서 냉장 온도 유지를 정기적으로 점검·단속할 예정이다.
셋째, 소비기한 표시제도에 대한 인식도가 시행 직전인 2022년 말에 53.4%였던 것에 비해 2024년 말에는 85.4%로 대폭 상승하였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던 유통기한 용어가 더 익숙하고 여전히 15% 정도는 소비기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의견에 대해 새로운 제도에 대한 대국민 인식개선을 위해 교육·홍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소비자·영업자로 대상을 구분하고 기관·업계·협회 등과 협력하여 언론홍보, 영상광고, 순회설명회 등 온·오프라인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활용하여 소비기한 제도에 대한 이해도와 호감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소비기한 제도 정착에 정부와 업계의 노력은 당연하지만, 소비자의 노력과 생활 속에서 슬기로운 실천습관 또한 중요하다. 소비자는 식품을 구매할 때 소비기한 날짜를 꼼꼼히 확인하고 표시된 소비기한 이내에 섭취해야 한다. 또한 장보기·택배받기 등 생활 속에서 제품에 표시된 실온·냉장·냉동 보관방법과 온도를 철저히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봉한 제품은 빨리 섭취하고 남은 제품은 소분하여 밀폐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것도 소비기한 내에 식품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식품을 구매해서 장기간 보관하는 것을 지양하고 적정량의 식품을 구매하여 섭취하는 생활 습관도 필요하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기 마련이고, 과거의 것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 된 것은 우리의 큰 자산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산업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진적, 단계적으로 안전에 기반한 소비기한 적용 품목을 꾸준히 늘려야 하고, 소비자는 슬기로운 소비기한 생활 속 실천을 습관화하여 제도를 활용하고, 정부는 이러한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선도·관리한다면 소비자 정보제공과 식품 낭비 감소의 경제적·환경적 이점을 위한 소비기한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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