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이태인 대한내과의사회 공보이사 박앤김내과의원 대표원장지난 2000년에 시작된 의약분업제도는 의약품의 처방과 조제를 분리하여 의료비용 절감을 목표로 한 중요한 개혁이었다. 하지만 그 시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고, 그중 하나가 '대체조제'에 관한 오랜 논란이다. 대체조제는 환자가 처방받은 의약품과 동일한 효능을 가진 약을 약사가 선택하여 조제하는 행위인데, 이를 두고 의료계와 약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 이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의약품 사용과 관련된 다양한 과제가 남아 있으며, 특히 대체조제는 의사의 처방권과 약사의 조제권 사이의 균형, 환자 안전, 의료전문가간 신뢰 구축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문제와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2025년 1월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수급 불안 해소를 명목으로 대체조제를 활성화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일선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일차의료기관의 개원의로서, 이번 개정안과 대체조제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고 이에 대한 합리적 대응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상술한대로 이번에 입법예고된 '약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은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성분명 처방을 유도하는 것으로, 의약분업의 본래 취지를 크게 훼손하고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의료진의 책임과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다.
둘째, 무분별한 대체조제는 환자 안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환자의 개별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진 약사의 임의적인 처방 약제 변경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나 치료 효과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약사가 환자의 병력과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성분만으로 약을 변경하면 이는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의약품 품절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방안으로 대체조제를 확대하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의약품 공급 부족 현상의 주요 원인은 정부의 지속적인 약가 인하 정책으로 약가 현실성이 떨어져 제약회사 입장에서 손해를 볼 수 없어 생산 중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체조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약가의 보전을 통한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체계 확립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대체조제의 현실적 문제점
대체조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환자 안전성의 위협을 들 수 있다. 같은 성분이라도 제조 공정의 차이로 약마다 약효와 부작용이 다를 수 있다. 특히 서방형 제제, 복합제 등 특수 제형의 경우 약물 흡수 속도나 체내 작용 방식에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환자들이 이러한 차이를 알지 못한 채 대체약을 복용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치료 효과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의사의 처방권 침해 가능성 또한 다분하다. 의사는 환자의 병력과 건강 상태, 기존 약물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약물을 선택하지만, 의사의 처방 이후 약사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대체조제로 인해 이러한 처방 의도가 무시될 위험이 있다.
끝으로 약물 관련 정보의 비대칭성 및 의사-약사 간 소통 부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약사들이 환자에게 대체조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동의를 받을 경우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의료계의 합리적 대응방안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계는 아래와 같은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첫째, 환자 교육과 정보 제공을 강화해야 한다. 의료기관과 약국은 환자들이 대체약의 차이점과 특성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자료를 제공하고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 특히 고령층과 만성질환자의 경우는 대체조제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명확하고 충분하게 전달받아야 한다.
둘째, 의사의 처방권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좁은 치료영역(Therapeutic window)을 가진 약물이나 특수 제형에 대해서는 대체조제를 더욱 신중히 허용해야 하며, 대체조제가 이루어진 경우 즉시 처방 의사에게 통보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셋째, 대체조제 규제 및 모니터링 체계를 보다 철저히 구축해야 한다. 약사들이 환자에게 대체조제 이유와 변경된 약물의 특성을 정확히 설명하고, 약물 복용 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부작용 및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과정을 반드시 시행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넷째, 의약품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제네릭 의약품의 제조공정과 품질을 보다 엄격히 관리하고, 투명한 검증 시스템을 통해 의약품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의사-약사 간 협력 체계를 활성화하여 환자 중심의 안전한 약물 사용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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