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만성 B형간염 환자의 조기 항바이러스 치료가 간암 및 사망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존 치료 기준보다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합병증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점이 최근 입증됐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팀은 한국과 대만의 병원에서 진행한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팀은 간수치(ALT)가 정상이고 간경화가 없는 만성 B형간염 환자 734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은 그룹과 치료 없이 관찰만 한 그룹을 비교했다.

그 결과, 조기 치료를 받은 환자군은 간암, 간부전, 간이식, 사망 등의 주요 평가 지표 발생률이 연간 100명당 0.33명으로 나타났으며, 치료 없이 관찰만 한 그룹의 1.57명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는 조기 항바이러스 치료가 간 관련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임을 시사하는 결과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란셋 위장병학·간장학(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기존의 치료 기준이 간수치 상승이나 간경화 여부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과 달리,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중등도 이상일 경우 즉시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임 교수팀은 앞선 연구에서도 서울아산병원의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높은 환자에서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보고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이를 확증하는 결과로, 치료 기준을 변경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임영석 교수는 "간암은 국내 중년층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는 암이며, 연간 1만2000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8000명이 사망한다"며 "B형간염이 간암의 주요 원인이지만, 현재 치료 기준이 엄격해 전체 환자의 20%만이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기 치료를 시행하면 향후 15년간 약 4만3000명의 간암 발생과 3만7000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한국과 대만의 22개 센터에서 수행됐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만성 B형간염 치료 지침과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임상 가이드라인 개정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