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투데이=이재혁 기자] 정부가 요양병원을 제외하고 전국의 12차 의료급여기관을 노숙인진료시설로 지정하는 고시의 유효기간을 1년 연장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많은 노숙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제도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발표자료에 따르면 전체 거리 노숙인 가운데 아플 시 대처방법으로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고 응답한 인원이 37.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첫 실태조사가 이뤄졌던 2016년에 비해 6.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또한 노숙인 등은 ‘소득보조’, ‘주거’에 이어 ‘의료지원’을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꼽았다.

정부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노숙인의료급여를 제공하는 노숙인 진료시설을 별도로 지정해 노숙인이 지정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에 의료급여를 제공하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해 1월 해당 제도가 노숙인들을 지정 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차별적 제도라며 복지부에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전국 노숙인 진료시설의 약 30% 가량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광주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종합병원, 병원, 의원, 요양병원, 보건의료원이 전무했다.

또한 지정된 노숙인 진료시설 중 많은 의료기관의 경우 정신과, 안과, 피부과 등 전문 진료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해당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지정된 12차 의료기관을 경유해 3차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며, 종합적인 진료가 가능한 367개 종합병원 중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곳은 34개소에 불과하다는 것.

이로 인해 노숙인이 자신의 질병 또는 질환 상태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거리상의 어려움이 발생해 보편적 의료서비스 제공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상황에서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공공병원이 감염병 전담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노숙인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크게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3월 ‘주의’ 이상의 감염병 위기단계 발령 시 의료급여법상 제1차 또는 제2차 의료급여기관을(요양병원 제외) 노숙인진료시설로 지정하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 등에 관한 고시’를 제정발령했다.

당초 해당 고시의 효력은 올해 3월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복지부는 지난 22일 아직 끝나지 않은 감염병 상황을 고려해 유효기간을 1년 더 연장했다.

고시 연장에 대해 복지부는 노숙인 보호 현장에서 노숙인 진료시설 확대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점을 반영했다고 설명하며, 노숙인이 전국의 약 7만4000여개소 12차 의료급여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복지부의 설명과 달리 고시를 통해 자동적으로 모든 12차 의료기관에서 노숙인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실효성이 떨어지는 고시를 연장한 안일한 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우선 의료급여를 적용 받고 있는 노숙인이 200여명에 그치는 점을 지적했다. 복지부에서 너무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는 수급자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

노숙인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되려면 국민건강보험 미가입자 또는 6개월 이상 체납된 사람으로 노숙인 해당 기간이 지속적으로 3개월 이상 유지된 사람이어야 한다. 이때 노숙인은 노숙인일시보호시설 또는 노숙인자활시설 입소자, 또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장이 주 1회 이상 주기적으로 상담을 실시하고 있는 거리 노숙인이다.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200여명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지자체의 의료지원을 받아야 한다. 안 활동가는 비교적 시스템이 잘 구비된 서울시의 지원 규모가 전체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의 진료비보다 크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또한 기존 노숙인진료시설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노숙인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노숙인지원기관이 별도로 의뢰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실제로는 민간의료기관 이용이 거의 안돼 고시의 실효성에 대한 체감이 굉장히 떨어진다는 전언이다.

아울러 정부의 초점이 코로나19에 따른 의료 접근성 저하에 맞춰져 있는 부분도 지적됐다.

안 상임활동가는 “기본적으로 의료급여 수급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노숙인 1종 유형만 특정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낮춰 놓은게 선행변수”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그 문제들이 확산됐던 거지 이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노숙인들이 아플 때 참도록 만드는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노숙인 진료시설이 대부분 공공기관 위주로만 되어 있어서 민간 의료기관들에 의한 노숙인 진료 부분이 거리가 멀었던건 사실”이라며 “필수적인 의료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최소한의 기관들을 지정했던 건데, 그동안 그게 고착이 되면서 선택 범위가 줄어든 효과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노숙인들의 만성질환 치료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기도 하는 만큼 진료시설의 선택권을 늘려주는 건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속적인 인식 개선을 통해 민간 의료기관들이 노숙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현재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의 폐지에 대해서도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포럼도 개최하고 여러 차례 현장 의견 수렴도 진행했었다. 건강보험 데이터 통계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조금 소요돼 지금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